불타는 애국심(70)

[안창호. 독립운동가(1878~1938)]

by 겨울나무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안창호는 소년 시절부터 남달리 애국심이 강했다.


17세 때 상경하여 구세 학당을 졸업하고, 1898년에는 이상재, 윤치호, 이승만 등과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을 정부에 촉구하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1932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복역 후, 가 출옥하였으나,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복역을 하던 중, 이듬해 병으로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일본에게 우리나라를 빼앗기기 바로 전의 일이다.


그때 이미 우리나라에 나와 있던 일본의 총독 이등박문이 우리나라의 형편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속셈으로 순종을 앞세워 전국을 순시하게 되었다.


그러자 통감부에서는 곧 전국에 명을 내리게 되었다. 학생들로 하여금 태극기와 일장기를 하나씩 양손에 들고 이등박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라는 엄명이었다.


여러 날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순시하던 순종과 이등박문이 마침내 평양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마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거리에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이등박문이 갑자기 불쾌한 얼굴로 순종을 항햐여 다급하게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됐다는 말씀입니니까?"

"지금 저 학생들이 흔들고 있는 태극기가 안 보이십니까? 일장기는 아무리 보아도 없지 않습니까?“


과연 학생들이 흔들고 있는 국기는 그 모두가 태극기만 보일 뿐 일장기라고는 두 눈을 비비고 보아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학생들은 다름 아닌 안창호가 경영하는 대성학교의 학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본 다른 학교 학생들도 덩달아 손에 들고 있던 일장기를 모두 찢어 버리고 태극기만 흔들게 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건은 곧 일본으로 전해졌고, 일본과 이등박문의 체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이에 분통이 터질 대로 터진 이등박문은 당장 안창호를 잡아다가 문초를 하도록 명하기에 이르렀다.

"어째서 네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 학생들은 대일본제국의 일장기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느냐?“


하지만 안창호는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서슬이 시퍼렇게 되어 사납게 윽박지르는 일본 관헌에게 조금도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당당하게 맞섰다.


"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던 말이더냐?"


"아니 뭐야? 너희 학교 학생들 때문에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금방 물이 들어서 일장기를 찢어 버리지 않았느냐? 이 불미스러운 책임은 모두 너에게 있는 게 아니겠느냐. 그런데 어떤 마음에서 겁도 없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게 되었느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국기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책임은 분명히 당신들에게 있다는 걸 왜 모르느냐?”


"아니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럼 내 말이 틀렸단 말이더냐? 우리 황제께서 순시하시는데 우리나라 태극기를 들고 환영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어찌하여 일장기를 들고 나오라고 했는지 난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건 우리 대일본의 이등 총독께서 같이 동행을 하셨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이등박문이 수행원의 자격이었느냐, 아니면 일본 대표로 와서 우리 황제와 동일한 지위로 행동을 했던 것이더냐?”

"그야 물론 수행원의 자격이었다.“


"그렇다면 일개 다른 나라의 수행원을 맞기 위해 그 나라 국기를 가지고 나가서 흔드는 나라를 너희들은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더냐?“


”…….“


안창호의 말은 너무나 이치에 맞는 당당한 말이었다. 이에 일본 관헌은 더 이상 문초를 못하고 한동안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문초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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