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왔어!”
학교에서 돌아온 영민이가 오늘따라 엄마를 대하는 목소리가 퉁명스럽기만 합니다.
지금 한창 바쁘게 재봉질을 하고 있던 엄마가 반색을 하면서 아는 체를 했습니다.
"어이구, 우리 영민이가 왔구나! 그래 오늘도 공부는 잘 했고?“
”…….“
영민이가 그다음에는 아무 대꾸가 없습니다. 대구만 없는 게 아니라 엄마를 본체만체 무뚝뚝한 얼굴입니다. 잔뜩 찌푸린 우거지상에 입까지 쑥 내밀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진 게 틀림없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엄마한테 귀찮게 매달리며 응석을 부렸을 영민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영 그게 아닙니다.
"영민아, 너 왜 그러니? 너 어디 아픈 거니?”
엄마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일손을 멈추면서 물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거 몰라도 된단 말이야!“
영민이가 이번에는 화가 난 목소리로 아까보다 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더이상 말도 하기 싫다는 듯 제 방으로 들어가면서 꽝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에구머니나! 살살 좀 닫지 않고선……. 엄마 간 떨어지겠다. 오늘은 저 녀석이 왜 저 모양이지!“
엄마는 지금 너무 바빠서 영민이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밤 안으로 마쳐야할 바느질감이 많이 밀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감을 어지간히 마무리한 후에 달래주기로 하고 잠시 멈추었던 바느질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영민이가 이토록 심술이 크게 나게 된 것은 바로 아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솔직하게 속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영민아, 니네 아빤 뭘 하시는 분이니?“
느닷없이 윤희가 묻는 말에 영민이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윤희에게만은 결코 아빠가 하는 일을 그대로 가르쳐주기가 싫었습니다. 아니 가르쳐주기가 싫은 게 아니라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가르쳐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윤희는 영민이와 같은 반입니다. 남달리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아주 잘해서 반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인기가 말 그대로 짱이었습니다.
"응, 우리 아빤 말이지 아주 굉장히 큰 회사에 다니셔.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우리 아빠 밑에서 일을 하는 부하 직원들만 해도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래.”
영민이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슴치 않고 아빠의 자랑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갑자기 그런 거짓말이 술술 나왔는지 영민이가 생각해도 정말 놀랄 정도였습니다.
“우와~~~, 그래? 이제 보니까 니네 아빠 정말 대단한 분이시구나!”
윤희는 그런 아빠를 둔 영민이가 몹시 부럽다는 듯 두 눈이 금방 토끼 눈처럼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영민이는 순간 겁이 더럭 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윤희의 모습이 그토록 귀엽고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민이가 어깨까지 으쓱해 보이며 물었습니다.
"대단하기는……. 그럼 니네 아빤 무얼 하시는데?“
”으음, 우리 아빠도 회사에 다니셔. 그런데 너네 아빠보다는 별로야. 아주 조그만 회사에 다니셔. 게다가 우리 아빤 회사에 들어간 지가 얼마 안 돼서 아주 쫄짜래.“
윤희는 금방 힘이 빠진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영민이 아빠가 큰 회사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 금방 주눅이 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영민이 아빠는 오래전부터 도배장이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도배장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솜씨를 가진 아빠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 아빠의 솜씨는 동네에서는 물론이지만, 멀리까지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하지만 영민이는 왠지 그게 오히려 창피하고 싫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솜씨가 뛰어난다고는 하지만 남들이 모두 우습게 여기는 도배장이었으니까요.
그러기에 영민이는 회사에서 비록 쫄짜로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아빠를 둔 윤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영민이는 학교길에서 우연히 만난 윤희에게서 뜻밖에도 가슴 뜨끔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영민이가 한 거짓말이 그만 며칠만에 들통이 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영민아, 너 지난번에 말한 거 순 뻥이었지?“
”……?!“
윤희의 물음에 영민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지난번에 거짓말을 한 것이 기어이 들통이 나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금방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윤희가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이야. 나 어제 니네 아빠 만나봤단 말이야.”
윤희의 말에 영민이는 또 다시 가슴이 철렁하면서 되물었습니다.
"우리 아빨 봤다구? 어, 어디서?"
"어제 우리 집에 도배를 하러 오셨거든. 히야! 그런데 말이지, 니네 아빠 도배 솜씨 정말 끝내주시더라. 아주 짱이시던데! 호호호……."
“……."
순간, 영민이는 몹시 창피한 생각에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무슨 큰 죄를 저지른 듯 윤희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던 영민이가 갑자기 벌겋게 된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윤희를 향해 갑자기 화가 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네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거란 말이야!!“
“……?"
영민이가 갑자기 화를 내는 바람에 윤희는 기겁을 하며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겁이 난 얼구로 영민이를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기분 나빠서 이제 너하구 같이 안 갈래.”
한동안 심통이 난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던 영민이가 갑자기 핵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도망이라도 치듯 학교를 향해 혼자 급히 달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영민아, 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같이 가잔 말이야!“
윤희는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그제야 영민이를 향해 소리치며 쫓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까보다 더 힘껏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영민이는 오늘 하루 종일 공부가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공부 같은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윤희한테 거짓말을 한 것만이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거짓말 한번 한 것이 이렇게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윤희의 눈치만을 몰래 살피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이, 쪽팔려. 아빠가 하필이면 윤희네 집에 가서 이렇게 내 속을 썩게 할 게 뭐람!“
방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방으로 들어온 영민이는 모든 게 다 귀찮다는 듯 울상이 된 얼굴로 방바닥에 푹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빠가 도배장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창피하고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루에서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더 시끄럽게 들려오는 것만 같아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으이구, 저눔의 재봉틀 소리 시끄러워 못 살겠네!“
영민이는 오늘따라 재봉틀 소리에도 공연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는 그나마 그럭저럭 넘기기는 했지만 내일부터 당장 어떻게 고개를 들고 학교에 가야 할지 그게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별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시간만 자꾸 흐릅니다. 그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보, 영민이는 왜 안 보이지? 오늘은 벌써 잠이 들었나?“
밖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에 영민이는 퍼뜩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건 오늘따라 다른 때보다 저녁 늦게 돌아온 아빠가 영민이부터 찾는 목소리였습니다.
"그 애가 벌써 잠을 자다뇨. 오늘은 무슨 일인지 화가 잔뜩 나서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통 나오지를 않네요.“
아빠가 묻는 말에 엄마가 재봉질 하던 손을 잠간 멈추고 대답하였습니다.
”영민이가 화가 나다니? 아니 왜?“
”입을 꾹 다문 채 화만 내고 있으니 글쎄 그 속을 누가 알겠어요. 그건 그렇고 오늘 가신 일은 어떻게 잘 됐어요?"
“으음. 아주 잘 되고말고. 그래서 볼 일을 모두 끝내고 그 사람들하고 같이 술 한 잔 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지 뭐야. 그리고 다음 달부터 당장 나와달라고 하지 않겠어.”
"그래요? 당신 축하드려요. 그거 정말 아주 잘 됐네요.”
너무나 좋아서 이렇게 펄쩍 뛰며 대답하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새 떨리고 있었습니다.
"아암. 잘 되고말고.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나처럼 하찮은 사람이 대학 강단에 서게 되다니 말이야, 당신은 이제부터 어엿한 교수의 사모님이 된 거라구. 허허허…….“
"어머, 그래요? 요즈음은 기술만 있으면 학벌 같은 건 문제가 아니라더니 그게 정말인가 봐요. 당신 도배 솜씨가 그렇게 남다르다 보니 결국은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나 봐요. 정말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영민이는 아까부터 엄마와 아빠가 하는 말을 숨을 죽이며 엿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얼른 뛰어나가서 나가서 물어보기도 쑥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다시 밖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대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마 우리 영민이도 펄쩍 뛰며 몹시 좋아할 거야, 그 녀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부터 내가 도배장이라는 것을 은근히 부끄러워하는 눈치였거든. 여보, 안 그래?“
”그건 그래요. 영민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나도 좀 느꼈거든요.“
영민이는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순간, 이게 꿈이 아닌가 하고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지금까지 우거지상이 되어 잔뜩 찌푸렸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활짝 펴지면서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아, 이제부터는 윤희가 도배장이라고 놀려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 우리 아빠는 이제 쫄짜로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윤희 아빠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분이거든, 푸후훗…….‘
영민이는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가서 아빠의 자랑을 늘어놓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고 설렙니다. 아빠가 오늘처럼 그렇게 자랑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빠가 하는 일이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 오히려 몹시 부끄럽기만 하였습니다.
'아빠,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아빠를 사랑할게요! 사랑해요, 우리 아빠!’
영민이는 마음속으로 연신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영민이는 아빠가 지금처럼 그렇게 훌륭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