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72)

[주시경. 조선 말기의 한글 학자(1876~1914)]

by 겨울나무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쩌다 다른 사람이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 그것을 내 일처럼 여기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어야 한다. 생각이 깊고 너그러운 사람은 자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게 된다.

옛말에 ‘검소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을 절약하기 때문에 항상 여유가 있어서 남을 도울 수 있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후하기 때문에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에 남한테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란 말이 있다.



조선 말기의 한글 학자인 주시경이 바로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을 절약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 돕기를 몸소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그는 또한 생각이 깊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항상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랐다.


주시경은 황해도 봉산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배고픔 속에서 몹시 어렵게 보냈다.


주시경의 아버지는 늘 과거 준비에 몰두하느라 집안 살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더욱 말이 아니었다.


주시경의 어린 시절, 그는 봄이 되면 날마다 바구니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곤 하였다. 나물이라도 캐서 죽이라도 끓여 연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물을 캐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물이 자라기도 전에 캐가곤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종일 들판을 헤매면서 부지런히 나물을 캐러 다녔지만, 바구니는 늘 반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오늘도 이만하면 몇 끼 양식은 되겠구나!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자 주시경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물 반 바구니를 채운 다음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처럼 냇가에 앉아 나물을 부지런히 씻고 있을 때였다.


웬 남루한 차림의 어른 두 명이 그 옆을 지나가다가 주시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얘야, 그 나물을 좀 얻어먹을 수 없겠니? 배가 고파서 곧 쓰러질 것만 같구나.”


어른들은 정말 몹시 시장해 보였으며 곧 쓰러질 것처럼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 나물을 그냥 잡수시려고요?"


"아암,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주기만 한다면 날것인들 왜 못 먹겠니.”

"예,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주시경은 어른들이 가엾다는 생각에 깨끗이 씻은 나물을 얼른 바구니에 건져 내어 어른들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나물을 받아 든 어른들은 삽시간에 나물을 맛있게 먹어치우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아니, 너 오늘 나물은 어떻게 하고 빈 바구니를 들고 왔니?"


이른 아침에 나갔던 주시경이 덜렁 빈 바구니를 들고 돌아오자 어머니는 놀란 기색으로 아들에게 물었다.

주시경은 조금 전에 냇가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눈을 치켜뜨며 주시경을 나무랐다.


"아니, 너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당장 먹을 양식이 없어 우리 식구가 굶어 죽을 지경인데 하루 종일 어렵게 캔 나물을 남한테 주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그러자 주시경은 조금은 미안한 표정이 되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그 어른들은 그때 나물이라도 잡숫지 않으면 금방 돌아가실 것 같았어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그럼 우린 굶어 죽어도 된단 말이냐?”


“굶어 죽다니요. 우리야 배가 고프면 조금 참았다가 내일 또 캐 오면 굶어 죽을 일은 없지 않겠어요?”


주시경의 따뜻한 인정에 감탄한 어머니는 결국 지고 말았다.


"네가 이렇게 착하고 훌륭한 사람인 줄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구나. 넌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나이가 많은 이 어미보다 생각이 훨씬 깊고 넓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구나. 과연 너는 장차 큰 인물이 될 내 아들이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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