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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14. 2021

차라리 몰랐더라면

[두통으로 인한 명의와 명약 찾아 삼만리]

난 가끔 차라리 남의 눈에 띄는 큰 병에 걸려 입원을 하게 되면 그나마 위안이 되겠다는 극히 어리석은 망상에 잡혀보곤 한다.


때는 어쩌면 들여다보는 문병객이라도 좀 있을 것이 아닌가!   

 

표면상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 질환, 그리고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괴롭고 고통스러운 질환을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평생 두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기에 가족들조차도 서운할 정도로 알아주지 않는 그놈의 두통, 그래서 지푸라기도 잡아보겠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그 어떤 짓도 다 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한 두통과 몸살 기운을 매단 채 그렇게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80년대 말이었다. 아마 끔찍한 축농증 수술로 고통을 받은 지 얼마 뒤의 일로 기억하고 있다.       

 

우연히 어느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눈이 번쩍 띄게 되었다. 신문에는 어느 병원의 소개와 함께 나처럼 두통과 몸살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그리고 자신 있게 치료할 수 있다는 광고 기사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나의 증세와 똑같을 수가 있을까. 이제야말로 병을 고칠 수 있겠다는 기쁨에 들떠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병원은 경남 마산역 인근에 있는 어느 병원이었다. 난 들뜬 마음에 당장 그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서울에서 직접 차를 몰고 마산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80년대 말경만 해도 그때는 네비게이션도 없었고 과속단속 카메라도 없었던 때여서 경찰의 단속만 피하면 무조건 마음껏 달릴 수 있던 때였다.    

   

그렇게 큰마음 먹고 마산역 앞에 다다르니 이미 저녁때가 되어 아쉽게도 그 병원의 진료시간이 끝난 시각이었다.      


겉에서 보기에 병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크지 않은 그저 그런 작은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병원 위치만 찾아낸 다음 마산역 부근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날 그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접수를 하고 진료를 받게 되었다.      

 

병원 직원이 우선 한적한 방으로 안내하더니 팬티만 남기고 나머지 옷은 모두 벗으라고 하더니 난생처음 보는 기기로 내 온몸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마 그 기기가 지금은 공항 등에서 열을 체크하기 위해 널리 이용되고 있는 열 화상 카메라였던 것 같다.     

   

촬영이 끝나자 바로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조금 전에 내 몸을 촬영한 화면을 보여 주며 열이 너무 많다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펄쩍 뛰며 내 몸 상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길 좀 보세요. 이거 몸이 온통 엉망이 되고 말았군요.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몹시 고통스러웠을 텐데 그동안 어떻게 참고 견디셨어요? 이 정도면 누구나 참을 수 없어요. 그리고 특히 목덜미와 머리에 열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자주 두통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거고요.”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화면을 바라보니 의사의 말대로 내 몸은 온통 녹색보다는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시급하고 궁금했던 것을 묻게 되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고질적인 두통도 치료가 가능한지요?”      


“으음, 좀 오래된 병이어서 치료 시일이 좀 길어질 수 있어요. 조금 더 일찍 오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분명히 치료가 가능한 병이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자신있게 대답하는 의사의 설명을 들은 나는 뛸 듯이 반갑고 기뻤다. 이제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두통 없이 밝고 명랑한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벅찬 기쁨과 환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병원을 왜 진즉에 모르고 있었나 하는 마음에 몹시 아쉽기도 하였다. 그리고 멀리 달려온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다.       


치료 방법도 아주 간단했다. 그 병원에서 특별히 개발했다는, 그래서 그 병원만이 제조하여 처방하고 있다는 그 신비한 약을 우선 한 재만 지어서 집에 가지고 와서 다려 먹어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경과에 따라 더 복용하는 것은 그다음에 다시 보자고 하였다.      


그런데 내 형편으로는 좀 난처하고 벅찬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약 한 재 값이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고가였던 것이다. 웬만한 값진 보약의 열 배 이상 비싼 값이었다. 그러나 지금 약값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두통이 낫기만 하면 집을 파는 한이 있더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약을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약을 지어달라고 하였더니 모레쯤 다시 와달라고 하였다. 내 체질에 맞게 조제를 하는데 이틀 정도는 걸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집이 멀다고 하니 소포로 부쳐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때만 해도 소포로 오려면 며칠 걸리기 때문에, 그리고 약을 하루라도 빨리 먹어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얼마간의 가지고 간 돈으로 선금만 맡겨놓고 이틀 후에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일단 서울로 되돌아왔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병원임에도 한약처럼 생긴 약을 지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병만 고칠 수 있다면 내겐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틀이 지나기가 바쁘게 다시 차를 몰고 급히 마산으로 달려갔다. 약속대로 이미 약은 준비되어 있었다. 나머지 잔금을 지불하고 약 한 재를 받아들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 저 약만 먹고 나면 나도 남들처럼 평온한 일상생활을 되찾을 수 있게 되리라는 부푼 기대에 얼마나 마음이 들뜨고 가벼웠던지!      


약을 가지고 오자마자 정성껏 다려서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토록 기대했던 일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아니 별로가 아니라 전혀였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난 마산 병원으로 바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내 병이 워낙 오래된 깊은 병이어서 앞으로 한 재만 더 먹어보면 차도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 번 더 먹어보기에는 너무나 벅찬 금액이었다. 이 모두가 아픈 게 죄였다. 난 한동안 생각 끝에 큰마음 먹고 다시 한재를 지어서 이번에는 소포로 부쳐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그 약을 정성껏 다려 복용하면서 한 달이 지났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도 실망스럽고 안타깝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거액만 날리고 만 셈이 되고 말았다. 닭쫓던 개의 표정이 된 채 맥이 빠지고 허탈했다.      


그러나 그 일 역시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선택하고 저지른 일이어서 얻다 대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몹쓸 두통을 앓고 있는 나 자신이 바보요, 죄인일 뿐이었다. 아는 게 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그런 신문 기사를 보게 된 나 스스로가 바보였다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그 신문 기사가 눈에 띄지나 말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 * )         

    

* 말 그대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저 혼자만의 과거를 회상해 보는 넋두리에 불과한 글, 그저 부끄러울 뿐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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