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오싹 귀신 이야기]
옛날 어느 시골에 있는 작은 면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때는 어느 관공서나 다 그랬겠지만 이 면사무소 역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매일 저녁마다 한 사람의 직원이 돌아가며 숙직을 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면사무소 숙직실에는 매일 저녁때가 되기가 무섭게 면사무소 인근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 사랑방 삼아 심심치 않게 찾아오곤 하였다. 그리고는 숙직을 하고 있는 면사무소 직원과 함께 어울려 밤 늦게까지 시간가는 줄 모루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 일이 잦았다.
그 한 가지만 보더라도 면사무소 직원들과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는 마치 한 가족처럼 정이 두터웠으며 흉허물이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시골다운 푸근하면서도 정겨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 저녁에는 마침 이 면사무소 직원들 중에서 가장 건장한 체격에 힘깨나 쓰게 생긴 김 주사가 숙직을 하는 날이었다.
그는 남달리 우람한 체격에 어울리게 평소에도 배짱이 두둑하고 성격 또한 사나이답게 괄괄하면서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그 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이 마을의 이장과 몇몇 사람들이 찾아와서 바둑과 장기, 그리고 그 시절에 널리 유행을 하던 소위 '나이롱뽕' 이라고 하는 화투 놀이를 하면서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밤은 깊어지고 마침내 헤어질 시간이 되자 마을 이장이 김 주사를 향해 은근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 주사, 오늘 밤에도 덕분에 재미있게 잘 놀았네. 그런데 지금부터는 자네 혼자 숙식을 해야 할 텐데 어쩌면 좋지?“
"어떻게 하다니요? 이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 말은 이 넓은 숙직실에 혼자 남아 숙직을 하기가 무서울 것 같아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라구.”
“원, 이장님도 별말씀을 다 하세요. 그럼 혹시 이 멀쩡한 면사무소에 귀신이라도 나타날까 봐 하시는 말씀이세요?”
김 주사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듯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장의 말을 우습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아암, 그럴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자네 아주 옛날에 이 면사무소 자리가 어떤 자리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
"알다마다요. 이 면사무소가 들어서기 전에는 아주 큰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들어서 잘 알고 있죠. 그런데 그게 어째서요?“
"그래, 맞았어. 그런 걸 아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해? 벌써 수십 년이 지나간 옛날의 일이기는 하지만 이 면사무소를 처음 지었을 때는 바로 이 면사무소에서 가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는 거야.“
"그래요? 이상한 일들이라니요?”
김 주사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되묻게 되었다.
"나도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글쎄 밤 12시가 지나면 가끔 원한을 품은 귀신들이 흉칙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별짓을 다했다고 하더라고.”
"하하하. 그래요? 귀신들이 나타나서 어떤 짓들을 했다는데요?”
김 주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너털웃음까지 웃어가며 되묻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기는……. 귀신들이 하는 짓들이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닌가. 사람을 홀려서 정신을 잃게 하거나 끔찍하게 잡아먹기도 했다더군.”
“허허, 그래요? 그럼 그때 귀신한테 잡아먹힌 사람이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암, 그렇구말구.”
"그래요? 그럼 그때 죽은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요?“
김 주사가 다그치며 묻는 바람에 이장의 입장이 금세 난처해지고 말았다. 이장 역시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정작 누가 죽었는지는 이상 자신도 분명히 모르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자넨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모두 믿어지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고말고요. 요즘 세상에 그런 말을 믿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저 역시 믿을만한 말씀을 하셔야 믿을 게 아닙니까?“
"이 사람아, 난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내 얘기는 자네처럼 그렇게 믿지 않고 마음을 놓고 있다간 정말 큰 코 다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을 하라 이 말일세.“
"하하하, 이장님, 그이제 그런 농담 좀 그만두십시오. 그리고 제가 그런 걸 믿게 하시려면 제발 제 앞에 그런 귀신이 실제로 나타나게 좀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제가 이장님께서 원하시는 거라면 뭐든지 다 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원 사람두, 정말 막무가내로군, 그럼 난 이제 자네를 귀신이 잡아가든 말든 모르겠네.“
"하하하, 네, 제가 잡혀가든 말든 그런 걱정은 이제 그만두시고 오늘은 피곤하실 텐데 어서 댁으로 돌아가서 푹 쉬기나 하십시오.“
끝까지 여유있는 표정으로 배짱 껏 나가는 김 주사를 보자, 이장은 속으로 은근히 못마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문득 저렇게 배짱으로 나오는 김 주사가 매워서라도 한 번 골려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날 밤에도 자정이 넘어서야 다 돌아가고 숙식실에는 이제 김 주사 한 사람만 혼자 남게 되었다. 사람들이 돌아가자 김 주사는 갑자기 하루종일 쌓였던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오늘따라 업무량이 다른 날보다 많아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김 주사는 곧 잠을 청하기 위해 석유램프의 심지를 바짝 줄여놓고는 잠자리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머리를 대기가 무섭게 김 주사가 심하게 코를 고는 소리는 어찌나 요란스러운지 밖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들어도 시끄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곤한 첫잠이 든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때 밖에서 갑자기 숙직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두두리는 소리였지만, 단잠에 골아떨어진 김 주사의 귓결에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문이 잠깐 흔들리는 소리려니 하고 그냥 못 들은 체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 전보다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노크 소리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확하게 세 번을 울렸다.
김 주사는 귀찮고 짜증스러운 생각에 자리에 누운 채, 퉁명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묻게 되었다.
"누구욧! 도대체 이 늦은 밤중에 누구냐구요!“
”…….”
그러나 밖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대답 대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김 주사가 이번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벌컥 화가 난 목소리로 문을 우악스럽게 열어젖히면서 밖을 향해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아니, 아닌 밤중에 누가 귀찮게 이 이단이야!"
그러나 그다음 순간, 잠이 덜 깬 눈으로 아무 생각없이 밖을 내다보던 김 주사는 저도 모르게 그만 방바닥에 나자빠지면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악~~~ 사, 사람 살려요!“
지금 숙직실 바로 문 앞에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선채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두루마기만 보였지 두 개의 다리도 목도 모두 잘려나간 끔찍하기가 이를 데 없는 끔찍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두루마기 옷섶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목이 금방 잘려나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루마기 옷섶에서는 지금도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머리와 발목이 모두 싹둑 잘려나간 모습이 보기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끔찍스런 모습의 귀신이 있다는 것을 김 주사는 일찍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사,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김 주사는 목청껏 소리소리 지르면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맨발에 펜티 바람으로 뛰어나온 김 주사는 두루마기 귀신을 힘껏 밀어젖뜨렸다. 그러나 두루마기는 잠깐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도 않고 다시 흔들거리고 있었다.
넋을 잃은 채 그렇게 숙직실을 뛰쳐나온 김 주사는 방향 감각조차 잃은 채 무작정 어디론가 미친 사람처럼 허둥지둥 멀리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김 주사! 이 사람아, 나야 나라구!“
이번에는 김 주사가 금방 뛰쳐나온 숙직실 쪽에서 이장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에 숙직실에서 헤어졌던 바로 그 이장의 목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어엉? 이장님은 아까 분명히 집으로 돌아간다며 헤어졌는데?“
허둥지둥 도망을 치던 김 주사는 어리둥절하면서 숙직실 쪽을 힐곳 바라보게 되었다. 그 순간, 김 주사의 입에서는 다시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다시 미친 듯이 허겁지겁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으아악! 귀신이다! 사람 살려요, 사람!“
지금 숙직실 앞에서는 아까 그 목과 발목이 잘린 끔찍스러운 모습의 두루마기 귀신이 공중에서 가볍게 흔들리면서 지붕 위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장의 모습이었다. 얼른 보기에도 아까 집으로 돌아간 지가 한참 된 이장이 엉뚱하게도 숙직실 지붕 위에 올라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이장은 긴 장대 막대기 끝에 끈을 매달고 그 끝에 두루마기 매단 채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여보게! 나야, 나! 이장이라구, 자네 이장도 몰라보겠어?”
지붕 위에서는 여전히 이장이 김 주사를 향해 안심을 시키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주사는 지금 이장도 귀신으로 보였던 것이다. 김주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둥지둥 숙직실 주변을 이리 저리 뛰면서 미친 사람처럼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 사람 살려요! 귀신이 나타났어요!”
그때 숙직실 지붕 위에서는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듯 이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허어, 이거 참 큰일 났네. 내가 장난이 너무 심했던 거 아니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