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히야! 엄마, 저 눈 내리는 것 좀 봐!”
조금 전까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던 동현이가 갑자기 창밖을 내다보고는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엄마도 급히 동현이 곁으로 다가와서 기쁜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이구, 정말 눈이 오는구나! 그런데 어느 틈에 저렇게 많이 내렸지? 벌써 무릎까지 자겠는걸!”
어느새 밖에서는 아기의 주먹만큼이나 큰 함박눈 송이가 소록소록 소리 없이 내리며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쌓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동현인 저절로 신바람이 납니다. 마음까지 한껏 부풀고 들떴습니다.
한동안 넋을 잃은 채 눈이 내리고 있는 광경을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동현이가 이번엔 문득 생각이 난 듯 엄마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눈이 저렇게 많이 쌓이고 있으니까 이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오실 수 있는 거지, 응?”
“그러엄, 아마 이번 크리스마스엔 아마 다른 해보다 더 많은 선물을 잔뜩 싣고 오실 것 같은걸.”
엄마도 여전히 흐뭇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우와아, 신난다! 엄마, 그런데 산타 할아버진 왜 눈썰매만 타고 오시는 거야?”
“호호호……. 그럼 넌 자가용이나 택시라도 타고 오시면 좋겠니?”
“아니 그게 아니라 눈이 안 올 땐 그렇게라도 오셔야 할 거 아니야?”
“그건 안돼.”
“왜 안 되는 건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을 골고루 다니시려면 아무래도 자동차나 택시보다 썰매가 빠르거든.”
엄마의 대답에 동현이의 눈이 금방 둥그렇게 됩니다.
“어휴, 하루 저녁에 그렇게 많이 다니셔?”
“그렇다니까.”
“그럼 썰매를 끄는 꽃사슴 다리가 몹시 아프겠는걸. 엄마, 그리고 산타할아버지가 가지고 다니는 선물들 중에 하모니카도 있을까?“
동현이의 물음에 엄마의 가슴이 뜨끔합니다. 저토록 자나깨나 하모니카 타령을 하는 동현이와의 약속을 번번이 미루었기 때문입니다.
“아암, 가지고 다니시고말고. 자, 이제 그런 걱정을 그만두고 아까 그리던 그림이나 마저 그려 보렴.”
“응, 알았어.”
동현인 기쁨에 들뜬 표정이 되어 방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아랫목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는 동생 경애가 쌔근쌔근 꿈나라 여행길에 한창입니다.
“헤헤, 에이, 바보 같으니, 얘는 눈이 오는 것도 모르고 세상 모르게 잠만 자고 있다니까.”
동현인 동생이 몹시 귀엽다는 듯 손가락으로 잠든 아가의 볼을 조심스럽게 눌러봅니다. 그러자 엄마가 질겁을 하며 입에 손가락을 대며 조심스럽게 소리칩니다.
"얘, 잠 좀 푹 자게 그냥 둬! 그러다 아기가 잠이 깨면 어쩌려고 그러니?”
“응, 알았어. 엄마.”
동현이가 이번에는 그림 동화책을 한 권 꺼내서 방바닥에 엎드린 채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화책을 읽는 동안 생각은 어느 틈에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 버리고 맙니다.
동화책에 있는 글자들이 갑자기 아물거리며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 글자들이 모두 신기하게도 조금 전에 본 하얀 눈송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참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눈만 펄펄 내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눈송이를 헤치며 빨간 옷에 하얀 수염이 길게 달린 산타 할아버지가 저 멀리서 꽃사슴이 끄는 눈썰매를 타고 신나게 달려오는 모습도 보입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탄 썰매에는 동현이가 좋아하는 갖가지 예쁜 선물들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저 선물들 중에 내가 가장 갖고 싶은 하모니카도 들어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동현인 이번엔 문득 상분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상분이와 동현이는 같은 2학년입니다. 학년만 같은 게 아니라, 반도 같고 동현이와는 둘도 없이 친한 짝꿍입니다.
상분이는 공부를 아주 잘 합니다. 공부뿐만이 아닙니다. 예쁘게 생긴 얼굴에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 마음씨까지 착해서 마음에 쏙 듭니다. 게다가 길고 곱게 땋아 늘인 가랑머리엔 언제나 빨강 리본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상분이는 노래도 아주 잘합니다. 꾀꼬리처럼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한번에 반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상분였기에 선생님도 몹시 귀여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상분이도 그렇지만 동현이 역시 상분이 못지 않습니다. 동현인 1학년 때부터 줄곧 반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분인 고작 줄반장인 분단장 밖에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1학년 2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막 교실로 들어서려던 동현이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뜻밖에도 교실에서 난데없는 하모니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 하모니카 소리지?”
동현인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급히 교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하모니카를 신나게 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상분이였습니다. 동현이는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상분이가 하모니카를 그렇게 잘 불 줄은 미처 몰랐던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상분이 곁에 빙 둘러서서 몹시 부러운 듯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상분이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저마다 박수를 쳐 줍니다.
상분이는 무슨 노래든지 척척 잘 불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동요는 물론이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의 유행가도 너무나 잘 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잘 불게 되었는지는 동현이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동현이는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렇게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모니카를 잘 분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상분이가 은근히 밉기도 하였습니다.
동현이가 슬그머니 상분이 곁으로 다가가며 부러운 말을 걸었습니다.
“히야, 정말 잘 부는구나! 언제 그렇게 배웠니, 응?”
“…….”
그러나 상분이는 동현이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여전히 하모니카만 신나게 불어대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동현이가 서운한 마음을 억누르고 상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 하모니카네 네 거니?”
“…….”
이번에도 상분이는 동현이가 묻는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기분이 상한 듯 교실 밖으로 휙 나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쟤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동현이는 너무 서운했습니다. 지금까지 마음씨가 곱고 착하기만 했던 상분이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던 상분이가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야속하고 서운했습니다. 상분이가 밖으로 나가버리자 지금까지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던 아이들도 아쉬운 듯 각기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갑자기 마음이 변한 상분이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동현이를 멀리 하고 틈만 나면 하모니카를 불어대곤 하였습니다.
“아니 그렇게 착했던 상분이가 왜 저 모양이지? 치이, 그리고 그까짓 하모니카만 있으면 단가? 그리고 얼굴만 예쁘면 단가? 치이, 누군 그까짓 하모니카 못 살 줄 알고?”
그 뒤부터 동현인 어떻게 해서라도 상분이보다 더 고급스러운 하모니카를 꼭 갖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모니카를 열심히 불어서 상분이보다 더 잘 불고 싶었습니다.
그런 뒤부터 동현인 늘 엄마나 아빠에게 틈만 있으면 하모니카를 사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그거 어떻게 됐어?”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뭔데?”
“뭐긴 뭐야. 하모니카 말이지.”
“어이구, 또 하모니카 타령이구나. 다음 달에 아빠가 월급 받아 오시면 꼭 사준다고 했잖니?”
“월급만 받으면 사준다면서 벌써 월급이 몇 번이나 지나갔잖아!”
“그땐 집에서 쓸 곳이 많아서 그랬지만 이번엔 어떻게 해서라도 아빠가 사준다고 그랬다니까.”
“엄마, 이번엔 그 말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
“글쎄, 그렇다니까.”
그러나 아빠의 월급날은 그동안 여러 차례나 지나갔지만, 하모니카를 사주기는커 번번이 딴소리만 하는 엄마였습니다.
“얘 동현아, 미안하게 됐다. 어쩌면 좋지? 오늘은 꼭 사 오려고 했는데 어디 가게에 네가 좋아할 만한 하모니카가 아직 나오지를 않았다는구나.”
“그래서 오늘도 못 사 왔단 말야? 그럼 아무거라도 사 오지 그랬어?”
동현인 입을 쑥 내밀고 아빠한테 화가 나서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글쎄,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다음번에는 꼭 사줄 테니까 아무 걱정말고 좀 더 기다려 주렴, 좋은 하모니카가 나오는 대로 꼭 사다 줄 테니, 알았지?”
“싫어, 다 그만두란 말이야. 가게에 좋은 하모니카가 안 나왔다는 건 순 거짓말이란 말이야. 이제 보니까 아빠도 순 거짓말쟁이란 말이야!”
“아니야,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아빠와 엄만 동현이에게 할 말이 없었습니다. 번번이 약속을 어긴 것이 마음에 걸리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동안 살림살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동현이가 그처럼 원하는 하모니카를 번번이 사다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아빠가 동현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동현아, 오늘은 틀림없이 네가 원하던 하모니카를 사다 줄 테니 속는 셈 치고 이번에는 꼭 믿어 보렴, 알겠지?”
아침에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아빠가 미안하다는 듯 동현이에게 불쑥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아빠, 오늘은 정말 약속할 수 있어? 그럼 이거.“
동현인 쑥 내민 입으로 새끼손가락을 펴더니 아빠를 향해 불쑥 내밀었습니다.
”아암, 사다주고 말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꼭 사다가 줄게. 자, 약속한다. 이제 됐지?”
아빠는 동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힘껏 흔들었습니다. 동현인 그제야 직성이 조금 풀린 듯 아빠의 뒤를 따라 나가며 인사까지 하였습니다.
“아빠, 그럼 안녕히 다녀오세요!”
“그래, 알았다. 저녁때 다시 보자. 아빠가 오늘은 꼭 좋은 하모니카를 사다 줄 테니, 알았지?”
동현인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가는 아빠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득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봅니다.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은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동현인 방바닥에 엎드린 채 동화책을 뒤적거려 보고 있지만 여전히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그 대신 머릿속은 온통 하모니카, 산타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의 얼굴만 자꾸 어른거립니다.
참다 못한 동현이는 다시 엄마를 향해 입을 열었었습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진 몇 시쯤 돼야 오시는 거야?”
“글쎄,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겠니?”
“그런데 아빤 왜 여태 안 오시지?”
“그러게나 말이다. 곧 오시겠지 뭐. 조금만 더 기다려 보렴.”
동현이의 표정이 다시 즐거움으로 가득해집니다. 오늘 운이 좋으면 아빠가 사 오신 선물도 받고, 또 산타할아버지의 선물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동현인 다시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봅니다.
“히야아~~~ 엄마, 저 눈 온 것좀 봐!”
“어이구, 눈이 정말 점점 더 많이 내리고 있구나!”
엄마의 눈도 보름달처럼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눈은 아까보다 더 펑펑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저렇게 많이 내려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수 있을까?”
“아암, 눈이 많이 올수록 산타할아버진 더 빨리 잘 다니실 수 있다던 걸.”
엄마의 말에 안심이 된 듯 동현인 다시 아랫목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서 눕고 말았습니다.
“이제 너도 고단할 텐데 어서 잠이나 자렴. 산타할아버진 사람들이 잠잘 때 몰래 다니면서 선물을 놓고 가신다거든.”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선물을 받은 사람은 많아도 싼타 할아버질 직접 만나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지 않니?“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얼른 오시게 엄마도 얼른 자, 응?”
“그래, 난 아빠가 오시는 걸 보고 그때 잘 테니까 너나 어서 먼저 자렴.”
“응, 알았어.”
동현인 눈을 깜빡거리면서 다시 복잡한 표정이 됩니다. 아무리 자려고 애를 써도 오늘따라 잠이 얼른 오지 않고 오히려 눈망울만 초롱초롱해집니다.
그때 멀리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잠을 못 이루던 동현인 종소리를 자장가 삼아 어느새 곤한 잠에 빠져들고야 말았습니다.
그때 마침 아빠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에 엄마가 재빨리 나가면서 아빠를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네 나가요!”
문을 열자 눈을 함빡 뒤집어쓴 아빠의 손엔 큰 선물 상자가 들려 있습니다.
“아니, 이게 다 뭐예요?” ]
엄마가 아빠가 들고 있는 선물들을 받아 들면서 둥그런 눈으로 물어봅니다.
"그동안 약속을 어긴 대신 그 녀석이 먹고 싶어 하던 케익도 사 왔지. 오늘이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하모니카는요?”
“그것도 사 왔지. 오늘도 안 사 오면 정말 거짓말쟁이가 되게? 큰마음 먹고 아주 좋은 것으로 하나 사 왔거든.”
“그래요? 아주 잘하셨어요. 그러지 않아도 동현이가 오늘 종일 하모니카 타령을 하다가 조금 전에야 겨우 잠이 들었거든요."
엄마의 웃는 표정이 함박꽃처럼 활짝 피어납니다. 아빠는 머리와 어깨에 내려 덮인 눈을 툭툭 털더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랫목 따뜻한 이불 속에는 동현이와 경애가 지금 한창 달콤한 단잠이 든 채 곤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허헛, 고 녀석들 차암!”
아빠는 몹시 귀엽고 대견스럽다는 듯 두 아이의 볼에 번갈아 입을 뽀뽀를 해줍니다. 엄마의 입에서는 연신 웃음꽃이 떠날 줄을 모르고 싱글벙글입니다. 동현이가 하모니카를 보고 기뻐서 좋아할 생각을 해보니 엄마가 오히려 덩달아 더 신바람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멀리 어디선가 다시 여전히 성탄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옵니다. 종소리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와 함께 하모니를 이루며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성스러운 축제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동현인 마침내 코까지 골아가면서 꿈나라 여행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마 지금쯤 동현인 꿈속에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하모니카를 신바람이 나게 불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상분이와 반 아이들 앞에서 마음껏 자랑하며 뽐내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성탄의 밤은 그렇게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