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Feb 28. 2021

사또의 재판

[사고력 신장 창작동화]

아주 오랜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젊은이 한 사람이 사또 앞으로 끌려 나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리쌀 두 말을 훔쳤다가 들켜 그만 잡혀온 것이었습니다.     

 

“네 이놈! 보아하니 사지가 멀쩡하게 생긴 놈이 일은 하지 않고 어찌하여 도둑질을 하게 되었는고?”     


“…….”     


사또는 끌려 나온 도둑의 형색을 천천히 살펴본 뒤에 무서운 목소리로 크게 호령을 하였습니다. 도둑의 얼굴이나 건강하게 생긴 몸으로 보아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건실한 체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둑이 입을 꾹 다문 채 입을 열지 않자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호령을 하였습니다.       


“네 이놈! 어서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꼬!”     


사또가 무서운 호령에 도둑은 그제야 고개를 숙인 채 그제야 입을 열었습니다.     


“예, 그저 죽여 주십시오. 사정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니 저, 저놈이……. 그럼 네가 말하는 사정이라는 게 뭐였더란 말이냐? 어디 네 얘기부터 들어보기나 하자꾸나.”     


사또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누그러뜨리면서 도둑의 설명을 기다렸습니다.     

 

“예, 다른 사정이 있겠습니까? 그저 가난이 죄였습니다.”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그럼 가난하다고 해서 너처럼 모두 도둑질을 하게 된다면 과연 이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 어디 말을 좀 대보렸다!”


“예, 그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저놈이 제대로 불지 않고……. 내가 지금 묻고 있는 건 왜 도둑질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시원하게 설명을 하라 이 말이렷다!”     


사또가 노발대발하며 무섭게 소리치자 도둑은 벌벌 떨며 마침내 눈물까지 흘리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끄럽사오나 저는 워낙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 자식이 열 명이나 되옵니다."      

"허어, 가난한 녀석이 자식을 열 명씩이나? 그래, 그래서?”     


"그런데 아룁기가 좀 쑥스러운 일입니다만 저의 아내가 며칠 전에 다시 해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허어, 그래? 가난하다면서 자식 농사만큼은 정말 풍년이로구나. 그, 그래서?“     


사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가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물론 자식들까지 죽은커녕 식구들 모두가 사흘 동안 꼬박 물만 마시면서 굶고 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허어, 일이 그 지경이라면 하다 못해 품팔이를 해서라도 식구들을 굶기지 않을 각오로 품팔이라고 했어야 할 게 아니었더냐?“   

 

"그렇지 않아도, 일을 찾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도 해보았지만, 때가 엄동설한인지라 그런 일거리도 없었습니다.”     


“그럼 일거리를 찾아보려고 정말 노력은 해보았다 이 말이더냐?”     


"예, 그렇습니다.”     


사또는 도둑의 사정이 좀 딱하게 여겨졌는지 한동안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형편이 좀 나은 집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양식을 미리 꾸어달라고 사정을 했으면 되었을 게 아니겠느냐?”     


“예, 그렇지 않아도 사또 나으리 말씀대로 우리 마을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까지 모조리 쏘다니며 며칠 동안 사정을 해보았지만 모두가 소용이 없었습니다.”     


“허어, 그래? 그거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아주 고약했던 모양이구나!”     


처음에는 그토록 서릿발 같던 사또의 목소리는 한층 누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도둑의 처지가 너무나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또가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도둑이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사또 나으리! 전 결코 처음부터 훔쳐온 보리쌀 두 말을 그냥 먹기만 하고 끝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소인은 보리쌀을 훔쳐온 김 대감 댁의 광에 쪽지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쪽지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제가 언젠가 형편이 좋아지면 꼭 갚겠다고 굳게 약속을 한 쪽지였습니다.”     


“뭐, 뭐라고? 여봐라, 형방! 그게 사실이더냐?     


사또는 금방 눈이 둥그렇게 되어 형방을 향해 물었습니다.   

  

“예, 그렇사옵니다. 바로 이것이옵니다.”     


형방은 손에 들고 있던 쪽지를 사또 앞에 공손히 내밀었습니다. 쪽지를 받아 읽어 본 사또가 다시 도둑에게 물었습니다.     


"허어, 그거 정말 딱하면서도 가상한 일이로다. 그럼 김 대감 집에 가서 양식을 좀 달라고 사정을 해 본 적은 있었더냐?”     


“물론입니다. 이다음에 제가 좀 여유가 생기면 꼭 갚겠노라고 여러 차례 찾아가서 사정을 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만…….”     


도둑은 거기까지 대답하고는 어깨까지 들먹이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쯧쯧쯧, 저런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노발대발하며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재판을 하려던 사또의 눈에서도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도둑을 재판을 하려다가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오히려 도둑에 대해 깊은 동정심이 우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도둑에게 벌을 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한 양식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 대신 양식을 빌려주지 않은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 옥에 가두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씨가 어질고 착한 사또는 가슴이 몹시 아팠습니다. 도둑에게 벌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풀어 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괴로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사또가 이번에는 형방을 엄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여봐라, 형방!”     


“예에잇!”     


“난 저렇게 딱하고 불쌍하며 착한 도둑을 재판할 자격이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구나. 이렇게 사또 노릇하기가 어려워서야 어디 원……. 나도 모르겠다. 내 대신 너희들끼리 재판을 하든지 말든지 너희들이 알아서 하려무나.”     


사또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대로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     


“……?”     


형방과 이방, 그리고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어찌 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채 안으로 사라지고 있는 사또의 뒷모습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 )





             

< 더 생각해 보기 >          



1. 만일 여러분이 이 글에 나오는 사또였다면 어떤 판결을 하였겠습니까? 또, 그렇게 판결을 한 까닭은 무엇

    입니까?     


2. 만일 여러분이 이 글에 나오는 도둑의 처지였다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3. 잘못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저지른 죄와 모르고 저지른 죄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한 대로 말해 봅시다.   

  

4. 만일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은 경험이 있다면 그때의 느낌에 대해 말해 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동차가 없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