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엄마, 오늘이 설날이지?’
민수는 잠자리에서 눈을 뜨기가 무섭게 엄마한테 급히 물었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날이란다. 어서 일어나서 세수하고 큰댁으로 세배하러 가야지.“
”응, 알았어 엄마.“
민수는 벌덕 일어나더니 세수를 하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마냥 늑장을 부리며 있는 대로 게으름을 피웠을 민수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몇 차례 성화를 부리고 재촉을 해야 마지못해 일어났을 민수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영 다릅니다. 하루아침에 아주 딴 사람처럼 변해버린 것입니다.
민수는 그동안 설날이 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지난해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민수는 엄마와 같이 큰댁에 잠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민수야, 넌 내 동생이란 말이야. 난 누나이고. 그러니까 동생이 누나한테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거야. 난 벌써 1학년이거든.“
한동안 같이 잘 어울려 놀던 윤미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마 민수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윤미가 갑자기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치는 바람에 민수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뭐? 네가 누나라고?“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거니?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누나지 그럼 뭐야?“
”아니야. 넌 키도 나보다 작고 기운도 나보다 약하잖아.“
”이런 바보, 넌 키만 크고 기운만 많으면 나이가 많은 줄 아니? 어이구, 이런 멍청이 같으니.“
”…….“
그 말을 들은 민수는 기분이 너무 상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입만 쑥 내밀고 말았습니다.
민수로서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어째서 민수 자신보다 키도 훨씬 작고 힘도 약한 윤미가 누나라고 우기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민수가 이번에는 은근히 억울함을 참다못해 할 수 없이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엄마, 얘한테 정말 누나라고 불러야 되는 거야?“
”얘 좀 봐. 누나를 보고 얘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너는 일곱 살이고, 윤미는 여덟 살이니까 그럼 누나라고 불러야지 뭐라고 불러?“
엄마는 한 수 더 떠서 민수를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엄마는 끝까지 민수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민수는 엄마까지 미워졌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심통이 났습니다.
사이좋게 곧잘 놀아주다가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툭 하면 제가 누나라고 큰소리를 치는 윤미가 더 미웠습니다.
”엄마, 난 그럼 언제 윤미처럼 여덟 살이 되는 거야?"
그 뒤부터 민수는 부쩍 엄마한테 나이에 물어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네가 여덟 살이 되려면 설이 돌아와야 한단다. 그리고 설을 보내고 나면 우리 민수도 곧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된단다.”
엄마의 대답을 들은 민수는 저절로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리고 윤미처럼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아니 학교에 가는 것보다 더 신이 나는 게 있습니다. 민수도 여덟 살이 되어 윤미와 똑같은 나이가 된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그렇게 신바람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툭 하면 한 살 더 먹었다고 건방지게 으스대는 윤미의 꼴이 너무나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설날만 지나면 윤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설날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큰댁에 가면 큰아버지와 큰어머니한테 세배를 드려야 하는데 우리 민수 세배 잘 할 수 있겠지?”
엄마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예쁜 한복을 입혀 주면서 물었습니다.
“응, 그건 문제 없어. 근데 나 오늘부터 정말 여덟 살이지?’
”아암, 그렇고말고. 어이 우리 민수가 이제 다 컸구나!“
엄마는 그런 민수가 몹시 대견스럽다는 듯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아암, 의젓해지고 말고.“
어느새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입은 아빠도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큰댁에서는 벌써 제사상까지 차려놓고 아빠와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성껏 제사가를 지내기가 무섭게 민수는 큰아버지돠 큰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렸습니다.
”어이구, 민수가 그동안 몰라보게 퍽 컸구나. 윤미 누나보다 훨씬 더 커보이는 걸. 하허허…….“
큰아버지가 껄껄 웃으면서 세뱃돈을 주셨습니다.
”윤미야, 너도 어서 세배해야지.“
큰어머니의 말에 윤미도 엄마와 아빠에게 얌전히 세배를 하였습니다.
그때 한동안 아무 말없이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있던 민수가 갑자기 큰아버지를 향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큰아버지, 윤미는 이제 오늘부터는 누나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거죠? 저도 오늘부터는 여덟 살이 됐거든요.“
민수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오자 식구들 모두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한바탕 웃음 바다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그러고 보니 올 설날에는 민수만 한 살 더 먹은 모양이구나, 하하하…….“
민수는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가족들이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윤미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민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이 바보야, 너만 나이를 먹은 줄 아니? 난 올해 아홉 살이 됐단 말이야. 넌 이제 봄이 되면 1학년이 되는 거고, 난 2학년이 되는 거란 말이야. 이제 알아들었어? 민수야, 우리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다가 올까?“
윤미는 말을 끝내자마자 민수의 손을 잡고 이끌었습니다. 민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표정이 되어 윤미가 이끄는 대로 끌려 나갑니다.
”누나! 치마저고리가 정말 곱고 예쁜걸.“
멋쩍은 표정으로 윤미의 손에 이끌려 나가던 민수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얼른 누나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호호호, 그래? 고마워. 나만 그러니? 난 네가 더 늠름하고 멋져보이는 걸.“
아까부터 잿빛으로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는 어느 틈에 목화송이보다 더 크고 탐스럽게 생긴 함박눈이 평펑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