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아기 흑염소

by 겨울나무


”음메에~~~ 음메에~~~“


까만 털 빛깔의 염소 다섯 마리가 연신 귀여운 목소리로 울어대며 아저씨의 뒤꽁무니를 졸졸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무직장 그저 끌려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염소 사려! 염소 사려어! 보약으로는 그만인 까만 흑염소 사려어--!“


아저씨의 목소리는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들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님은 서산으로 넘어가고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터벅, 터어벅--“


아저씨의 걸음걸이는 지칠 대로 지쳐 이제 더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지쳐 있기는 염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아저씨는 염소들을 이끌고 여기저기 안 다녀본 곳이 없습니다. 좀 잘 살고 있다고 보이는 동네란 동네는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이 잡듯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침 어느 공원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이러언 제기랄, 염소를 사는 사람이 이렇게 드물어서야 어디 장사가 돼야지.“


아저씨는 마치 무거운 쌀가마라도 내동댕이치듯 천 근이나 되는 몸을 긴 의자에 맡기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뻐근하고 아픈 다리를 연신 주무르기도 하고 두드리기에 바빴습니다.


그 바람에 다섯 마리의 염소들도 아저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지쳐서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긴 의자에 몸을 맡긴 아저씨는 갑자기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밀려옵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잠시라도 달래다 보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집니다. 몹시 추운 날씨인데도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피곤하고 졸린 건 아저씨만 그런 게 아닙니다. 염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마디로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가며 살아가는 불쌍한 신세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때, 염소들 중에 한 마리가 기운을 내서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얘들아, 난 여기서 이대로 잠이나 실컷 잘 수 있다면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러자 다른 염소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지껄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만날 이렇게 고생을 하며 끌려다니고 있는 거니.“

”맞아.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운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이게 무슨 고생이라니.“


그러자 이번에는 그 중에서 가장 어린 아기염소가 울먹이는 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난 뭐니뭐니 해도 우선 배가 고파 견디겠어. 엄마도 보고 싶고, 흘쩍, 훌쩍…….“


아기염소의 그만 흐느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아기염소는 태어난 지 이제 겨우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걸음마도 채 배우기가 무섭게 밧줄에 목이 매달린 채 날마다 끌려다니자니 이만저만 힘이 든 게 아닙니다.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다리가 퉁퉁 붓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생겼지만, 아저씨는 그런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인정머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보였습니다.


며칠 전, 아저씨는 일곱 마리의 염소와 같이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헤맨 끝에 겨우 두 마리를 팔아버리고 이제 다섯 마리만 남게 된 것입니다.


염소들은 먼저 팔려나간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그 친구들처럼 얼른 팔려나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날만 새면 하루종일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기가 너무나 힘겨웠기 때문입니다.


염소 한 마리가 궁금하다는 듯 친구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팔리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니? 그리고 우릴 어떤 사람들이 사 가는 거니?“


”글쎄에?“


사실 염소들은 지금까지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무작정 끌려다니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잠시 뒤에 나이가 좀 든 염소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너희들은 여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니? 우린 팔렸다 하면 그날로 당장 이맇게 ‘끽’이란 말이야.“


염소는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뭐어? 끽이 뭔데?‘

“이런 숙맥 좀 봤나. 아직도 못 알아들겠니? 그날도 당장 죽게 된단 말이야.”

“뭐어? 죽게 된다고?’


죽게 된다는 말에 더럭 겁이 난 염소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난 사람들이 우리들을 잘 길러주려고 사가는 줄로만 알았거든…….“


그러자 나이가 좀 많은 염소가 여전히 맥이 다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러면야 얼마나 좋겠니.“

”아니 그럼 우리들은 지금까지 죽기 위해 죽을 기를 쓰고 따라다닌 거 아니야?“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


그 말을 듣자 이번에는 아기 염소가 아저씨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아저씨는 염소들과는 달리 아무 걱정 없는 사람처럼 태연스럽게 누워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놓칠세라 염소들을 잡아 맨 끈만큼은 여전히 꼭 쥐고 있었습니다.


아기염소는 아저씨가 그토록 밉고 무섭다고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남의 귀중한 생명을 팔아서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는 아저씨가 그렇게 무섭고 잔인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녁때가 지나고 서서히 밤이 가까워지면서 찬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오고 있습니다.


염소들은 꽁꽁 얼어붙고 있는 몸을 녹이기 위해 서로 바짝 붙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꽁꽁 얼어붙고 있어서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돈이나 벌 욕심에 이런 고생을 참고 견딘다지만 우린 이게 뭐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누가 아니라니.“


그러나 아저씨는 염소들의 이런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자, 이녀석들아, 이제 그만큼 쉬었으니 더 어둡기 전에 좀 더 다녀보자꾸나.“


아저씨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염소들의 목에 걸린 밧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염소들의 목에 걸린 밧줄이 길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염소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힘껏 버티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아저씨는 끌려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염소들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 도리없이 아저씨가 밧줄을 당기는 대로 다시 마지못해 한 발 두 발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었습니다.


”자아, 염소가 왔습니다. 흑염소가 왔어요. 만병통치에 아주 좋은 흑염소가 왔어요!“


날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똑같은 소리만 외친 탓에 아저씨의 목에서는 여전히 쉰 소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흑염소 사려! 흑염소가 왔어요!“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면서 어둠이 차츰 짙어지기 시작합니다.


”음메에~~ 음메에~~~.“


아저씨를 따라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고 있는 염소들의 지치고 지친 울음소리가 아까보다 더 불쌍하고 처량하게 온 거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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