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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13. 2021

학생 백일장 대회 심사 후기

[탈락된 글, 그것은 실망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일장이나 공모전에서 탈락된 글들, 그 모두가 수준이 낮아서 탈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탈락한 것은 단순히 그날의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탈락을 했다는 것은 절대로 실망이 아니라 또 다른 큼직한 대회에서 우수작으로 선정을 기약하는 또 한 번의 희망을 다지는 계기라 하겠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를 본인이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을 임의 대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를 들어 비유해 보기로 하겠다.      


자메이카 출신인 세계적인 단거리의 황제 볼트’!     


그의 신장은 195cm, 체중 94 키로이며 2009년에 100미터 9초58, 그리고 2백 미터를 19초19의 실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놀랄 만한 신기록을 세우고 그는 마침내 2017년 34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볼트가 은퇴한 후, ‘카타르 도하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미국의 ‘크리스천 콜먼’이 볼트의 기록에 도전해 보았으나 백 미터를 9초 76에 그쳤고, 미국의 ‘노아라일스’가 20미터를 19초50의 기록을 내어 볼트의 기록을 바짝 뒤따르긴 했지만,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볼트의 기록을 갱신할 만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언젠가 ‘박수칠 때 떠나라’란 방화의 제목이 불현듯 떠오른다. 볼트는 그처럼 남달리 뛰어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스스로 영광스럽게 물러난 단거리의 영웅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단거리나 장거리 달리기에서 남달리 뛰어난 실력의 재능을 가진 선수라면 그 어떤 심판이 판정을 해도 우열을 정확하고 명백하게 가려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구태여 비디오 판독을 하지 않고 육안으로 보아도 확실히 다른 선수들보다 앞서 달리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 경기에서는 등위를 판정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경기의 특성상 선수들이 드문드문 결승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마라톤이 아닌 단거리 달리기에서는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어려울 때가 많다. 가령 대여섯 명의 선수가 한 조를 이루어 함께 뛰었을 경우에는 선수들 모두가 거의 똑같은 시각에 0점 몇 초의 차이를 두고 동시에 결승선을 밟게 되기 때문이라 하겠다.      

 

결승선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등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교가 수반되기도 한다.      


가령 예를 들자면,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출발할 수 있는 순발력을 기른다든지, 결승선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뛰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결승 테이프에 가슴이 닿게 하게 하는 일이 그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결승선에 다 가서는 발을 힘껏 내밀어 결승선에 발을 먼저 밟게 하는 등, 갖가지 요령이 모두 총동원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기교들은 선수들 모두가 불과 몇십 분의 1초 차이를 두고 결승선에 도달하여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라 하겠다. 그러기에 결승 테이프나 결승선에 누가 먼저 도착했는가를 육안으로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울 때는 비디오 판독을 통해 우열을 가려내기도 한다.   


결국, 등위는 그렇게 해서 정해지게 마련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는 달리기 실력이나 재능은 선수들 모두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해마다 행사로 치르고 있는 백일장 역시 단거리 달리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로 뽑혀 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직장이나 단체, 그리고 더 크게는 국가 대표로 선발되어 갖은 피나는 노력을 다해 연습을 하고 그중에서 가장 잘 뛰는 선수를 선발하여 대회에 내보내고 있다.   

 학생들이 참가하는 백일장 역시 그들 모두가 운동 선수들과 크게 다를바 없다 하겠다. 그들 모두가 그 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고 연마한 뒤에 글짓기 솜씨를 인정받은 학생이 대표로 참가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것은 일반인들이 참가하는 백일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평소에 글솜씨를 갈고 닦은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참가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운동 선수건, 글솜씨건 남달리 눈에 띄게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의 실력 또한, 그만그만해서 우열을 가려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본인은 지난번 글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앙국립도서관 주최 대통령상 받기 전국 초중고등학교 고전읽기 독후감 공모 심사를 약 10여 년간 해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는  어느 교육청과 문화원 주최로 해마다 열리는 초중고등학교 학생 백일장 대회 때마다 약 10여 년 넘게 심사를 해본 적이 있다.  

    

교육청과 문화원 주최로 백일장 심사위원으로 해마다 고정 위촉을 받게 된 것은 그나마 아동문학가(72년 등단)라는 이름을 얻었기에, 그리고 그 당시 한국글짓기지도회 이사직을 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본인은 계속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곤 했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서너 명의 심사위원은 해마다 바뀌곤 하였다. 어떤 때는 명성이 높은 현직 작가 또는 방송 작가, 그리고 때로는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 특별히 문학에 소질이 있는 사람을 위촉하기도 하였다.   

   

백일장에서는 해마다 시와 산문 두 가지로 나뉘어 쓰게 되는데 한 학교에서 시 부문과 산문 부분으로 참가할 학생이 학교당 두 명씩만 나와도 초중고등학교 참가 학생은 적어도 150여 명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백일장 시간이 다가오면 학부모 또는 인솔 교사들이 참가 학생들을 데리고 하나둘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간혹 해마다 단골로 참가하는 낯익은 학생이나,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 중에 성의가 대단한 분들은 백일장이 개최되기 전에 미리 찾아와서 인사를 하며 어느 학교 누구라며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하는 일도 종종 볼 수 있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령 어느 학생이 백일장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게 되면 그 학교의 명예나 학교 평가 점수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그리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나중에 심사를 할 때 거의 비슷한 수준의 글이라면, 심사위원도 어디까지나 사람인지라 그런 부탁을 듣게 되면 아무리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한다 해도 같은 값이면 미리 인사를 했던 학교의 학생 작품에 더욱 관심이 가고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런 선입견을 가진 심사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어느 해부터는 원고지 첫 장에는 학교 학년 반 이름만 쓰고 본문은 그다음 장부터 쓰게 하였다. 그리고 심사를 할 때 어느 학교 누구인지를 모르게 원고 표지가 없는 본문만 가지고 심사를 하고 난 후에 입상 작품의 경우 또 보관해 두었던 원고지 겉장과 맟주어 보고 시상을 하곤 하였다.

         

글을 쓸 제목이나 주제는 당일 백일장 장소에 모인 학생들 앞에서 바로 발표해 주곤 하였다. 그리고 당일 주어진 주제에 따라 학교별로 참가한 학생들 중에 한 사람은 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산문을 쓰게 하는 것이 상례였다.       


원고지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서 반드시 교육청에서 나누어 준 원고지를 사용하고 개인이 구입한 원고지는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한 학생에게는 항상 넉넉하게 끝까지 쓸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주곤 하였다.      


글을 쓰는 장소 역시 대회 장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택하여 자유대로 쓰게 하되 절대로 학부모나 교사는 같이 앉아 있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여 시간이 다 되면 백일장은 마무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이 쓴 원고지를 취합하여 표지와 속 내용을 분리한 다음 학생들이나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은 모두 학교 또는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심사위원들은 당일 바로 교육청이나 문화원 강당 같은 곳에 가서 그날로 심사를 마치게 된다.    

  

심사는 서너 명의 심사위원이 각각 나누어서 하게 되는데 가령 한 사람은 초중고등학교 시 부문을 모두 맡거나 또 한 사람은 산문 부문을 맡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별로 나누어 맡아보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심사위원 전원이 초중고등학교 작품들을 모두 돌려가며 보며 수준이 미달이라고 생각되는 글을 내려놓는 선별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대충 예심을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심사방법이나 규정은 어찌 됐든 심사를 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안타깝고 무거운 심정이라 하겠다. 그것은 차마 못할 짓이었다.      


맨 처음 서두에 밝혔듯이 ‘볼트’처럼 눈에 띄게 잘 뛰는 선수라면 누구나 아, 저 선수가 정말 잘 뛰는구나, 하고 감탄을 하겠지만, 글이란 그와는 분명히 다르다 할 수 있겠다. 마치 단거리 경주에서 거의 같은 순간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들처럼 거기서 거기이니 1등이나 꼴등이나 실력은 별반 차이가 없는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그토록 모두가 뛰어난 글들을 가지고 함부로 이건 1등이고, 이건 2등이고, 등위를 가려낸다는 것은 역시 큰 죄를 저지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 글을 수작으로 뽑아야 한지 저 글을 수작으로 뽑아야 할지 심사하는 본인도 가늠하기 어려워 혹시 옆에 있는 심사위원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의 생각은 또 나와는 엉뚱한 답변이 나오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개인 취향에 따라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재미없다고 평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정적이고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하는가 하면 그런 것이 영화나며 주로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하는 액션과 스릴이 있는 영화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비단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노래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어떤 사람은 전국노래자랑만 나오면 흥이 나서 같이 춤까지 덩실덩실 추며 미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중가요란 수준이 떨어지는 가치 없는 노래라 여기고 아예 거들떠보려고 하지도 않고 오페라나 성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오페라가 나오면 왜 악을 쓰고 저걸 노래라고 하느냐고 귀를 막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결국, 그 어떤 심사위원이라 해도 사람인 이상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심사위원은 글의 내용보다는 정성껏 쓴 원고지의 글씨와 맞춤법, 문장부호 등을 제대로 사용한 글에 더욱 많은 점수를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되도록 미사여구를 적기 적소에 적절히 사용하여 쓴 글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또한,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한 글을 오히려 감점을 주게 되고 내용만 보고 심사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아무리 뚜럿한 심사 기준과 규정을 정해 놓았다 해도, 그리고 어느 공모전이나 추천작을 뽑을 때 역시 그때그때 심사하는 사람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번에도 잠깐 언급한 바 있듯이 브런치에 올라오는 브런치 작가들이 쓴 글들을 읽다 보면 난 항상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브런치 작가들 모두가 너무나 깊이 있는 글, 그리고 전문 지식을 포함한 글들, 그리고 매끄럽고 성숙된 문장으로 각자의 뜻을 유감없이 잘 드러내고 있는 보석 같은 글들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런 문장력으로 보아 브런치 작가들 중에도 과거에 심사위원과 운만 잘 맞아떨어졌다면 이미 등단을 하고도 남았을 작가들이 기라성처럼 많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미 기성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고도 남음직하다.

다만 그때그때 운이 맞아떨어지지 않았을 뿐임이 분명하다.       


끝으로 다시 말해서 그 어떤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탈락을 했다 해도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 것을 감히 부탁해 보고 싶다. 어찌 그 많은 응모작 중에서 내 작품이 반드시 수상을 하게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억지 같은 비유일는지 모르겠지만, 로또나 복권이 어찌 단번에 당첨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로또나 복권에 당첨되지 못한 것이 나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 아니든가.   

   

탈락이란 결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이다. 탈락은 또 한 번의 다음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계기를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해주기 위한 기틀인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운이 좋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감히 동화작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또한 나의 작품이 뛰어나서 당선되었다고는 절대로 믿고 싶지 않다. 내 글보다 뛰어난 작품들도 수두룩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지금도 운이 좋아 심사위원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마 그때 다른 심사위원이 심사를 했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이 당선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지금도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한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두서없는 글로 마무리를 하면서 브런치 작가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정진을 감히 빌어드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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