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전등 신세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63)]

by 겨울나무

성길 씨가 답답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


“허어, 코로나가 좀 진정되는가 했더니 어젠 확진가 다시 730명 대가 넘었더군. 이렇게 나가다가는 금년 여름에는 ① 바다물미역 한번 못해보고 여름이 가겠어.”


성길 씨의 말에 아내가 응수했다.


“언젠 우리가 그런 데 가보면서 살았어요? 가까운 계곡 한번 제대로 가보지도 못했구먼.”


“허허, 하긴 그랬지. 이렇게 집구석에서만 지내다 보니 나도 언젠가는 벌써부터 ② 낮전등 신세가 될까 봐 그게 더 걱정이란 말이야.”


“별 걱정을 다하고 있네요. 당신 놀고 먹는 게 아니라 재택근무 중이잖아요. 그런 소릴 들으니까 내가 오히려 찔리는걸요.”


“어이구, 무슨 소리. 당신은 집에서 ③ 거둠새를 열심히 하고 있잖아. 그만큼 했으면 됐지 거기서 또 뭘 바라는 거야? 난 당신이 있어서 늘 든든하거든. 아참, 그건 그렇고 우리 집에서 조금 나가면 ④ 건늠길 있지?"


”그래서요?“


”그 건늠길을 건너가면 바로 길가에 온갖 ⑤ 보숭이들을 잔뜩 쌓아놓고 폐지 줍는 할머니 있잖아?“


”네, 알고말고요. 허리가 완전히 기역 자로 굽은 할머니 말이죠?“


”그 할머니 정말 대단하시더군. 추우나 더우나 하루도 쉬지 않고 그 무거운 ⑥타이어구루마를 끌고 다니시니까 말이야.“


”맞아요. 그분 허리는 그렇게 심하게 굽었어도 건강한 모양이에요.“


”그렇지 건강하지 않으면 그런 힘든 일을 할 수 있겠어? 그리고 그 할머니 얘길 들어보니까 저 건너 고급 ⑦ 고층살림집에 산더던데. 돈도 많고 말이야.“


”맞아요. 나도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옷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초라하고 허술한데 그런 사람을 보고 누가 부자로 잘 사는 사람이라고 보겠어요?“


”맞아.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그렇게 천 원 이천 원 힘들게 버는 대로 꼬박꼬박 은행에 가서 저축을 하며 돈 버는 재미로 사신다니 그런 분이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마음 대로 사겠어? 아마 그런 분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⑧ 증기빵 하나 사 드시지 않고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그 흔한 ⑨ 얼음보숭이 하나 안 사드실 거야. 그러니까 우리들처럼 돈 걱정도 없으실 거고.“


”그건 그래요. 하지만 난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요. 사람이 먹고 살자고 나온 건데 돈이 있으면서도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아꼈다가 그냥 죽으면 얼마나 불쌍해요.“


”맞아. 그 할머닌 내가 보기에도 너무 ⑩ 말째더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돈이 좀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살진 말자구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알았어. 당신을 꼭 호강시켜주려고 했는데 그게 얼른 잘 안 되는군.“


”으이구, 난 그런 말을 해주는 당신이 곁에 있어서 이만하면 됐네요. 더 바랄 게 없다니까요.“


”그래? 나도 당신만 옆에 있으면 아무 것도 더 바랄 게 없다니까. 허허허…….“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이 오늘따라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 * )






※ 참고


① 해수욕 ② 삼시세끼 놀고 먹는 남편 ③ 살림살이 ④ 횡단보도 ⑤ 고물

⑥ 손수레 ⑦ 아파트 ⑧ 찐빵 ⑨ 아이스크림 ⑩ 거북하고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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