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바람은 불어도(4)

[중편 창작동화 4회 중 마지막 회]

by 겨울나무

할아버지와 성구, 그리고 수미 이렇게 세 사람은 언덕길 위에 목마를 잠깐 세워 놓고 나란히 앉았습니다. 세 사람의 이마와 등은 모두 땀이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어지간히 덥구나! 여기 그늘진 곳으로 바짝 다가와서 같이 앉으렴.”


할아버지는 목마로 인해 손바닥만한 그늘이 만들어진 곳으로 수미와 성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마와 목에 흘러내리고 있는 땀을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연신 닦아 내면서 숨이 찬 목소리로 수미에게 물었습니다.


“수미야, 넌 지금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그랬지?”

“네.”


“내가 생각하기엔 넌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사람 같아서 물어보는 거란다.”


수미가 뜻밖이라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할아버지에게 되물었습니다.


“네에?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미가 되묻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매우 대견스럽다는 듯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이 할애비가 알기로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목적은 살아있는 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하다가 결국은 천당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겠니?”

“호호호……. 저도 잘 모르긴 하지만 아마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너는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되겠다 이 말이지.”


“왜요, 할아버지?”


“넌 지금도 이렇게 천사처럼 남을 위해 착한 일을 몇 달째나 계속해 주고 있지 않니? 그런 네가 천당엘 못 가면 누가 가겠니? 그러니까 내 말은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이다음에 틀림없이 천당에 갈 거라 이 말이란다. 허허허……."


“그럼 만일 제가 천당에 못 가면 할아버지께서 책임 져 주실래요?”


“아암, 이 할애비가 다른 건 몰라도 수미만은 꼭 천당에 보내 주기로 약속하마. 아암, 약속하고말고. 허허허……."

“푸후훗……,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럼 꼭 보내 주셔야 해요. 아셨죠?”


“허허허, 아암, 보내 주고말고…….”


지금까지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성구도 기분이 좋은지 덩달아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수미 아빠는 수미가 밖으로 뛰쳐나가자 약국 출입문을 열어젖힌 채 자꾸만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목마를 밀고 가다가 쉬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 애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 뒤로도 수미의 그 이해할 수 없는 수상한 행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서는 여전히 전처럼 전혀 아무 말도 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좀처럼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물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수미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아빠가 문득 그동안 궁금했던 일을 조심스럽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참, 그동안 아빠가 수미한테 무척 궁금한 게 있었는데 좀 물어봐도 되겠니?”


“……?”


아빠의 물음에 수미는 여전히 입을 꼭 다문 채 아빠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아빠가 보니까 할아버지의 목마를 열심히 밀어 드리고 있던데 그 할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분이니?“


“…….”


수미는 지금까지 혼자만 몰래 간직하고 있던 큰 비밀이 들통이 나고 말았다는 듯 대답 대신 얼른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넌 벌써 몇 달째나 그 할아버지를 열심히 돕고 있다던데 …….”


수미는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심을 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KakaoTalk_20210608_211123445.jpg

“그 할아버지는 집도 없는 불쌍한 할아버지야. 그래서 아주 좁은 움막 속에서 목마를 끌어서 번 돈으로 생활하면서 아주 가난하게 살아가는 분이거든.”

"그건 이미 아빠도 소문을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어. 그런데?“

”성구도 정말 외롭고 불쌍한 아이이고.”


“성구라니? 그때 목마를 같이 밀던 그 아이 말이니?”


"응, 그 애가 바로 할아버지의 아들인데 목마로는 너무 벌이가 안 좋아서 가끔 끼니를 거르고 굶을 때도 많다는 거야.”

“그래서?”


“그리고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도 못 다니고 있고.”

“그래서 그 할아버지를 도와드리기 위해 목마를 밀어 드리고 있단 말이니?”


“…….”

수미는 말없이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럼 네가 가끔 밖으로 나갈 때마다 그 할아버지 댁엘 갔었던 거란 말이니?”


“…….”


아빠의 물음에 수미는 이번에도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으응, 그랬구나. 아빠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제 보니까 우리 수미는 그동안 정말 착한 일을 많이 했구나. 그런데 아빠나 엄마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아빠는 그런 수미가 새삼 너무나 귀엽고 대견스럽다는 듯 수미의 양쪽 어깨를 힘을 주어 꼬옥 껴안아 주었습니다. 뜻밖에 아빠의 따뜻하고도 다정한 말에 용기가 생겼는지 한동안 머뭇거리고 있던 수미가 다시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응?”


“만일 내가 그동안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야단치지 않을 거지?”


수미의 엉뚱한 물음에 아빠가 몹시 궁금한 얼굴이 되어 되물었습니다.


“우리 수미가 잘못을 하다니? 아빠는 언제나 수미 편이니까 무슨 말이든지 서슴지 말고 어서 말해 보렴.”


"나 요즈음 아빠가 보기에 전보다 군것질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아니면 덜 하는 것 같아?“


"글쎄, 잘 모르긴 해도 요즈음 우리 수미가 밥도 덜 먹고 군것질도 덜 하는 것 같던데,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걸 묻지?“


“으음, 사실은 나 요즈음 말이지…….”


수미는 차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몹시 망설이는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몹시 궁금한 듯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래, 괜찮으니까 어서 걱정 말고 말해 보렴. 사실은 뭐지?”

“요즈음 엄마나 아빠가 가끔 주는 용돈 있지?”


“음, 그래서?”


"그거 모두 군것질하지 않고 저금통에 넣었다가 돈이 어느 정도 모일 때마다 할아버지한테 갖다 드리곤 했거든.”

“……!”

아빠는 너무나 뜻밖의 수미의 말에 한동안 어리둥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수미가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스러움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KakaoTalk_20210608_211023864.jpg

“으응, 그랬었구나!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시든?”


“물론 그때마다 눈물까지 흘리시면서 안 받으시겠다고 펄쩍 뛰시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난 그때마다 할 수 없이 돈을 놓고 그 집에서 도망치듯 뛰어나오곤 했어. 그런데 요즈음은 더구나 할아버지가 전보다 더 아프셔서 가끔 일도 나가지 못하신다는 거야.”


“아하, 그거 정말 안 됐구나. 그럼 우리 집에 있는 약이라도 좀 갖다 드리지 그랬니?”


"아빠, 미안해.”


“뭐가?”


"그렇지 않아도 벌써 아빠 몰래 우리 가게에서 가끔 약을 갖다 드리곤 했거든. 아빤 전혀 그런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빠는 다시 수미의 어깨를 힘주어 껴안았습니다. 수미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 아빠한테 부탁 한 가지만 더 해도 될까?”


“부탁이라니? 어서 말해 보렴.”


“우리 집은 그래도 성구네 집에 비하면 그래도 좀 넉넉한 편이잖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런데 그건 왜?”


“내 생각으로는 아빠가 그 집에 다달이 생활비를 좀 보태 주었으면 좋겠어. 아주 적어도 좋으니까 할아버지 약값과 끼니만큼은 거르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얼마 더 살지 못하고 곧 돌아가실 것 같아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 거야.”


"그런 것까지 네가 어떻게 알지?“


"할아버지께서는 가끔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어.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성구 걱정을 많이 하시곤 하셨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성구는 별도리 없이 다시 불쌍한 고아가 될 거라고 말이야.”


"아하! 그거참 정말 안됐구나!“

수미의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빠가 마침내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우린 경수가 사고를 당했을 때 받은 보상금도 좀 남아 있으니 네 말대로 그 할아버지를 돕기로 하자꾸나. 아마 모르긴 해도 엄마도 아주 좋아하며 찬성할 거야.”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수미의 입가에는 오랜만에 밝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아빠, 그리고 말이지.”


"응, 그리고?”


“성구 말이야. 그 애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 지내보니까 참 착하더라고. 생김새도 제법 괜찮고.”

"그, 그런데?“


수미는 약간 쑥스러운 듯 한동안 망설이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음, 그 애 우리 집으로 데려다가 같이 살면 어떨까 해서 말이야.”


"아니 뭐, 뭐라구? 어제서 우리 수미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


수미의 말에 아빠는 그건 아니라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습니다.


“만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그 애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리고 그 앤 원래 고아였대.”


"그럼 할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었단 말이니?“

“응, 그렇대. 할아버지도 고아였고,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옛날에 할아버지가 신기료장수를 할 때 우연히 만나 지금까지 아들 삼아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살게 된 거래.”

"으음,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도 참 좋은 일을 하셨구나!”


아빠는 그제야 모든 걸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만 끄덕거리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손님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려왔습니다.


“수미야, 손님이 오신 모양이다. 아빠가 다시 들어올 테니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렴.“


아빠는 급히 가게로 나갔습니다. 어느 틈에 가게 안에는 몹시 야위고 초라한 차림의 소년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습니다.


아빠가 의아해진 눈빛이 되어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KakaoTalk_20210608_211010514.jpg

“혹시 약을 사러 온 거 아니니? 어떤 약을 줄까?”


“저어, 그게 아니고요. 저어…….”


소년은 우물쭈물하면서 얼른 입을 열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죄, 죄송하지만 돈이 없어서 약을 좀 그냥 주시면 안 될까 해서요. 아버지께서 지금 몹시 위독하시거든요.”

"아하, 그렇구나. 그럼 어디가 그렇게 편찮으신데 그러지?”

그때, 방에 있던 수미가 소년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수미가 급히 뛰어나오며 반갑게 소리쳤습니다.


"어머, 성구가 우리 집엘 다 오다니? 지금 할아버지가 몹시 편찮으시다고? 아빠, 얘가 바로 내가 말하던 성구란 말이야. 어서 약을 지어 주세요.“


"얘가 바로 네가 말하던 성구라고? 그래, 알겠다.”


성구에게 할아버지의 병 증세를 자세히 듣고 난 아빠의 안색이 안됐다는 듯 갑자기 짙은 그늘로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가만히 듣고 보니 그건 약만 가지고는 어려울 것 같구나.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자, 어서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우리 다 같이 나가보자.”


밖으로 나온 아빠는 급히 성구와 수미를 차에 태웠습니다. 그리고는 곧 할아버지 댁을 향해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수미가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왜 그래? 할아버지가 위독하신 거야?”


"으응,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할아버지를 빨리 병원으로 모시지 않으면 큰일이 날 거 같아서 그러는 거란다.“


아빠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이번에는 성구를 향해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성구라고 그랬지? 당분간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셔야 할 것 같구나. 그러니 넌 오늘부터 아버지가 퇴원하실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사는 게 어떻겠니?”


“……?”


아빠의 의외의 말에 성구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몹시 얼떨떨한 표정이 된 채 아빠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수미는 지금 동생을 잃은 뒤부터 몹시 쓸쓸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단다. 그러니까 너만 괜찮다면 잠깐만이라도 오늘부터 수미의 동생이 되는 게 어떨까 해서 그러는 거란다. 우리 수미도 너를 몹시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던데……?”


“……!”


성구는 여전히 어리둥절해진 표정이 되어 쑥스러운 듯 싱글싱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수미가 얼른 성구의 손을 꼭 잡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아빠 말대로 그렇게 하자. 응? 나하고 학교도 같이 다니고 말이야, 응? 그렇게 해, 응?"


“…….”


성구는 더욱 민망하고도 수줍어진 표정으로 얼굴이 벌개진 채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답 대신 활짝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호호호…….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넌 이제부터는 내 동생이 되는 거다. 알겠지?


”…….“


성구는 여전히 수줍은 얼굴로 연신 고개만 끄덕이며 웃고만 있었습니다.


세 사람을 태운 자동차는 무서운 속력을 내며 할아버지 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 * )


- 4회중 마직회 (완)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