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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n 14. 2021

백주(白晝)의 가정 침입 강도
사건 (2)

[우리 집 대낮 강도 사건 사례 ②]

그때 내가 거래하고 있는 국민은행은 우리 집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은행에서 겨우 아내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실신한 사람처럼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도 오늘 낮에 벌어졌던 강도 사건에 대한 대충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건의 전말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요즈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아내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는 지금까지 평생을 직장에 한 번 나가본 경험이 없이 집에서 살림만 하며 지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여느 때처럼 아무 생각없이 집에서 쉬고 있던 중, 느닷없이 현관문이 슬그머니 열리더니 웬 낯선 젊은이 세 명이 들어섰다. 그때가 정확히 오후 2시경이었다.      


낮에는 바깥에 가끔 드나드는 관계로 거실 앞 현관문은 잠그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바깥 대문은 굳게 잠가놓은 상태였는데 아마 강도들이 담을 넘어 들어온 것 같다고 하였다       


그 시간에 거실에는 아랫집에서 마실 온 아주머니, 그리고 우리 막내아들(4~5살)과 세 사람이 있었다. 아주머니와 아내는 한가롭게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슬그머니 현관문이 열리면서 웬 낯선 젊은이 셋이 아무 말도 없이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처음에는 아마 출판사에서 그동안 내가 쓴 원고를 수거하러 온 사람들이려니 생각하게 되었단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어서 일단 글을 쓴 원고 뭉치를 봉투에 싸서 등기 우편으로 부치든지, 시간이 날 때는 출판사로 직접 갖다가 주곤 했었다. 그러나 우편으로 원고를 우송하게 되면 시일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내가 원고를 쓰는 대로 단 열 장이든, 스무 장이든 출판사 직원들이 직접 우리 집으로 수시로 와서 수거해가곤 하였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들이 들어서자 아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현관문 쪽으로 나가면서 묻게 되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혹시 원고를 가지러 온 분들이 아니신지요?" 


아내가 이렇게 묻자, 그들 중의 하나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품에 있던 칼을 뽑아 들더니 다짜고짜 거친 목소리로 상스러운 욕설부터 하며 아내를 집 안으로 거칠게 들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년아, 개소리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란 말이야!“     


”허거걱!!“     


아내는 그 상스럽고도 거친 욕설을 듣는 순간, 그리고 하나같이 스타킹으로 머리를 뒤집어 쓴 복면만 보아도 이 사람들이 출판사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강도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에 자지러질 듯이 놀란 아내는 온몸이 석고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소문을 들어보니 그 당시의 강도들의 대부분은 여성용 스타킹으로 눈만 남기고 머리를 뒤집어쓴 복면을 하고, 주로 칼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아내를 안으로 밀고 들어온 그들은 맨 먼저 그들이 준비해 온 펜치로 전화기에 매달려 있는 전화선을 모두 끊어버렸다. 그리고 끊어 낸 전화선으로 어린 아들만 남겨놓고 아내와 아주머니의 두 손을 뒤로 꽁꽁 묶어버리고 말았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 앞에서는 편히 앉지 못하고 무릎부터 꿇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아내와 아주머니 역시 겁에 질린 채 벌벌 떨며 두 사람 모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그들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주머니가 꽁꽁 묶이게 되자 철모르는 아들 역시 무슨 영문인 줄을 모르고 겁에 질린 채 울먹이며 그들을 향해 욕설을 퍼무었다고 한다.        


”이 새끼들아, 우리 엄마 왜 묶은 거야? 빨리 풀어놓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야!“      


그러자 그놈들 중의 하나가 어린아이 목에 칼을 들이대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야, 이놈 봐라. 너 입 다물지 못하겠어? 또 그렇게 떠들면 너부터 죽여버릴 거야. 알아들었어?“     


그러자 이에 깜짝 놀란 아내가 급히 아이를 타이르며 말렸다.     

 

”너 저 아저씨들한테 그러면 안 돼! 그러니까 잠자코 엄마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어.“   

  

아내가 이렇게 말리자 그제야 겁을 먹은 아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아내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푹 파묻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한 녀석이 아내에게 협박 조로 묻고 있었다.     

  

”바른대로 말하라구. 만일 우물쭈물하고 허튼 생각을 하거나 시간을 끌게 되면 그땐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러니까 저금통장과 도장을 어디 두었는지 말해 보란 말이야. 그리고 비밀번호도…….“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키는 대로 다 하겠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통장과 도장이 있는 곳을 자세히 알려 주게 되었다. 통장과 도장은 안방 장롱 서랍에 보관해 두고 있었다.  

    

그러자 한 녀석은 여전히 칼을 들이대고 있고, 두 녀석이 안방으로 들어가서 삽시간에 통장과 도장을 찾아가지고 나오더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비밀번호를 솔직하게 순순히 알려주었더니 이 비밀번호가 확실히 맞는 것이냐고 다짐하듯 되물었다.  

    

그리고 만일 은행에 가서 돈을 찾다가 비밀번호가 맞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고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만 해도 신용카드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어서 통장과 도장, 그리고 비밀번호로만 출금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한 녀석은 집에 남은 채 여전히 칼을 들고 세 사람을 위협하고 있었고, 두 녀석은 급히 은행으로 돈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10분, 20분을 기다리는 동안 돈을 찾으러 간 녀석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시간이 아내에게는 피를 말리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행으로 간 녀석들이 얼른 돌아오지 않자, 칼을 들고 집에 남아있는 녀석이 매우 불안하고 초조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투덜거리면서 만일 앞으로 10분 뒤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모두 이 칼로 쑤셔버리고 가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늦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비밀번호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녀석이 계속 거칠게 투덜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잠시 뒤, 은행에 갔던 두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돌아왔다. 아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반가운 기색으로 그들을 향해 얼른 묻게 되었다.      


”돈은 제대로 찾아오신 거죠? 그리고 비밀번호도 맞죠?“     


”…….“     


그러나 그들은 아내의 물음에는 아무 대꾸도 없이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옷걸이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내가 매고 다니던 넥타이를 두어 개를 들고 휙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허거걱……!“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내는 그만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이 일단 목적 달성을 했으니 이제는 그 넥타이로 목을 졸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잠깐 기절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행히도 목은 조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넥타이로 손과 발목을 더욱 단단하게 묶은 다음 다시 한번 협박 조로 겁을 준 다음 유유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만일 나중에 신고라도 하면 너희 가족들 모두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지?“     


”…….“     


아내와 아주머니는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여전히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내가 직장에서 신고를 하자, 그제야 경찰들이 달려와서 강도들이 묶었던 줄을 풀어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그 길로 바로 은행으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형사들의 잠복      


은행에서 아내를 데리고 온 뒤부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귀찮고 난감한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강도를 맞은 그날부터 사복 형사 두세 명이 우리 집 거실 현관 앞 바닥에 앉아 잠복 근무를 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너무 피곤하면 번갈아 눕거나 앉아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우리 집 거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채 잠복하고 있었다.   

    

아내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여전히 자리에 누워있는 상태였고, 낮에는 막내와 단둘이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위로 두 아이는 낮에는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오후에만 집에 있었다. 


그런 가정에 경찰들이 집 안에 상주하고 있다는 게 여간 거북하고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 내가 직장에 나갔다가 저녁때 집으로 돌아오면 밥을 짓는 일이며 반찬거리들을 내가 챙겨 놓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생활, 그리고 우리 식구들의 일거일동을 형사들에게 감시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여간 불편하고 고역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침과 저녁에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번갈아 나가서 먹으면 된다며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바로 식탁 가까운 곳에 죽치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형사들을 두고 우리 식구끼리 밥을 먹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끼기 때마다 같이 먹자고 할 수도 없어서 어정쩡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형사들을 대접할만한 여유와 형편도 아니었지만…….

어느 날 궁금함을 견디다 못한 내가 묻게 되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잠복하고 있어야 하느냐고? 


그러자 그들의 대답은 범인이 잡힐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이제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숨막히도록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귀찮고 어렵고 짜증이 나는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는 기삿거리가 그렇게 없는지 그 뒤로도 기자들이 자주 찾아오거나 전화가 오기도 하는 바람에 전화통은 항상 불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이 일일이 자초지종을 묻는 바람에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며 설명을 해야 하는 우리 가족들의 입장으로는 몹시 짜증이 나다 못해 진이 빠지고 짜증이 날 일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그것은 매일 그곳 담당(불광 2동) 파출소장이 성질이 잔뜩 난 얼굴로 집으로 한 차례씩 찾아와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가곤 하기때문이었다.   

   

파출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방송국이나 신문기자가 우리 집 강도 사건이 방송에 나가거나 신문에 기사화할 때마다 파출소장이 상급기관에 호출 명령을 받고 끌려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사에게 문책을 받으며 시달리는 바람에 죽을 맛이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앞으로는 그 누가 전화를 걸어도 모른다고 하며 끊어버리라고 하였다. 또 그 누가 방문을 해도 절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위압적으로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파출소장의 말대로 그렇게 따르게 되자, 그 뒤부터는 방송국 기자들이 우리 집 밖에 와서 우리 집의 겉모습만 촬영한 다음 재차 방송에 내보내곤 하였다. 강도를 맞은 덕분에 우리 집은 그 부근에서는 졸지에 아주 유명(?)한 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파출소장은 여전히 방송이나 신문에 기사가 나갈 때마다 찾아와서 어쩌다 또 방송에 나가게 했느냐고 벌컥 화를 내며 나를 괴롭히곤 하였다. 난 그때마다 고양이 앞의 쥐의 신세가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잘못했다고 빌기만 할 뿐 별도리가 없었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때 파출소장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그의 입장으로서는 이해가 갈만도 하였다.    

  

파출소장의 집은 불광 1동이라고 하였다. 우리 집이 불광 2동이니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하루가 멀다 하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낮 강도 사건으로 인해 철야 근무를 하느라고 가정을 가까운 지척에 두고도 벌써 두 달째 집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신문이나 방송에 이 구역에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상급기관에 끌려가서 호통과 꾸지람을 듣곤 하니 그의  심정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잃어버린 사람이 죄가 많다더니 그야말로 난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정말로 나는 나대로 속이 상하고 죽을 맛이었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제대로 받고 있는 셈이었다. 이래저래 그저 애꿎은 속만 태우며 그렇게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을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내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파출소장이 집으로 찾아왔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욱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한테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그가 들고 온 신문(중앙일보)을 불쑥 내밀며 분풀이를 하듯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신문 기사로 인해 오늘은 서울시 경찰국까지 불려가서 있는 대로 호통을 당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난 몹시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이 졸지에 죄인이 된 심정이 되어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신문기사 내용을 대강 훑어볼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 실린 내용은 간단하게 실린 ‘가십’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번에 강도를 맞은 집에서 아주 가까운 지척에 순찰함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건 대낮에 강도를 맞게 하였으니 경찰들은 도대체 낮잠을 자고 있거나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인이래서야 어떻게 국민들이 경찰을 믿고 편히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난 그날 파출소장과 헤어진 뒤에 밤에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들볶일 일을 생각하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어디에, 그리고 누구에게 마땅히 하소연할 만한 곳도 없었다.  

    

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궁리 끝에 궁여지책으로 한 가지 대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현재 가장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문제는 파출소장이 매일 찾아와서 들볶아대는 일이었다.    

  

강도를 맞은 것만 해도 억울한데 게다가 무슨 죄인 취급을 하며 매일 집으로 찾아와서 괴롭히며 들볶고 있는 파출소장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과 같이 화를 내며 싸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파출소장을 달래주며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겨우 어설프고 미약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파출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는지 는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일단 좋은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 )       

     

     -우리 집 대낮 강도 사건 사례 2회 끝. 3회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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