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67)]
오늘도 밖에는 비가 쉬지 않고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한동안 밖을 내다보고 있던 성길 씨가 입을 열었다.
“금년에는 웬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지? 아마 여름이 되면서 하루 걸러 한 번씩은 온 것 같아.”
성길 씨의 말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비 덕분에 우리 같은 서민들은 그래서 덕을 좀 보고 있는 거 아녜요?”
“덕이라니? 무슨 덕?”
“비가 자주 오니까 시원해서 에어컨을 덜 돌리고 있잖아요.”
“아하, 그렇군! 역시 우리 마누라가 최고야.”
“최고라니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당신이 그동안 살림을 ① 더튼하게 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집 살림살이는 이미 거덜이 나고 말았을 거야 안 그래?”
“더튼하게 하기는요. 가진 게 뭐가 있어야 더튼하고 말고 할 게 아니에요?”
“아니야. 어쨌든 당신이 아니었다면 없는 살림에 벌써 거덜이 나고말고. 그나저나 장마가 시작하기가 무섭게 저 남쪽에서는 ②무더기비가 내려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더군.”
“그러게 말이에요. 해마다 남쪽 지방에서는 몹시 가물지 않으면 그런 비로 피해가 많이 나곤 하니 세상은 참 고르지도 못한 것 같아요.”
“맞아요. 누가 아니래.”
성길 씨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참! 우리 집에 밀가루 사온 게 좀 남아 있나?”
“밀가루요? 그건 갑자기 뭘 하게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북한에서는 ③ 뜨더국을 만들어 먹곤 했거든. 뜨더국에 막걸리 한잔이면 그만인데 말이야.”
“그래요? 밀가루는 있으니까 그까짓 막걸리는 얼마 안하니까 좀 사 오면 되죠 뭐.”
그러자 성길 씨가 매우 반가운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그래? 역시 당신은 성격이 ④ 더펄이여서 내 맘에 쏙 든단 말이야. 하하하…….”
“으이그, 비행기 좀 그만 태워요. 어지러워요. 호호호…….”
아내는 싫지 않은 듯 이렇게 대꾸하고는 더펄이를 만들기 위해 곧 주방으로 걸어갔다. 아내가 주방으로 가자, 성길 씨는 벽에 걸린 ⑤ 력서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 이제 보니까 하지도 한참 지나갔고, 돌아오는 일요일은 벌써 초복인걸.”
“그걸 이제야 알았어요? 그날은 어떻게 그냥 지나갈 거에요?”
“코로나도 그렇고, 별수 없지 않아? 그러니까 그날은 내가 특별히 한 턱 쏠게.”
“어떻게 쏠 건데요?”
“돈도 없지만, 코로나고 위험하니까 당신이나 혜영이가 좋아하는 ⑥ 발족이나 사다가 실컷 먹어보지 뭐. 그렇게 하는 게 어때요?”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야 더 바랄 게 없이 좋지요.”
“좋았어. 그럼 그날은 우리 발족이나 원 없이 실컷 뜯어봅시다. 참 지금 밀가루 반죽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요?”
“그거 반죽할 때 소금만 조금 넣고 ⑦분당은 넣지 마라. 알았지?”
“으이그, 밀가루 반죽에 분당을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알았어. 그러니까 넣지 말라고. ⑧꾸미만 조금 넣고 말이야.”
“알았어요. 이제 잔소리 좀 그만해요.‘
”하하하, 그래, 알았어.“
아내의 손놀림이 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입에서도 어느 새 미소가 가득 번져나가고 있었다. ( * )
① 깔끔하고 알뜰하다 ② 집중호후 ③ 수제비 ④ 성격이 좋고 마음이 털털함
⑤ 달력 ⑥ 족발 ⑦ 설탕 ⑧ 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