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국수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75]

by 겨울나무

저녁 늦게까지 TV를 보고 있던 성길 씨가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여보, ①차달피달하다 보니 새해도 벌써 6일도 다 갔네. 그런 걸 보면 세월이 참 빠르단 말이야“


”누가 아니래요. 그래서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나 봐요.“


”그러게나 말이지. 어느 새 신축년 소의 해도 가고 벌써 임인년 호랑이 해도 엿새가 지나가고 있단 말이야.“

”소의 해가 다 가다뇨? 그건 아니죠. 아직도 호랑이 해인 임인년이 되려면 한달이나 남았잖아요.“


”아참, 따지고 보니 그렇군! 그런데 사람들 모두가 이미 호랑이 해가 왔다고 야단들이니까 나도 그런가 보다 했지.“


성길 씨가 이렇게 대꾸하고는 미안한 듯 아내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는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여보, 그건 그렇고 왠지 또 입이 출출해지는데 혹시 사다 놓은 ②꼬부랑국수 좀 없을까?“

”으이그, 사다 놓은 게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저녁 먹은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출출하다니요? 그거 습관이라니까요. 야식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잖아요.“

”허허허, 그건 나도 알아. 아마 내 뱃속에는 아마 거지가 들어있나 봐. 그나저나 당장 배가 고프고 출출한데 건강이 문제야? 여러 소리 말고 꼬부랑국수가 있으면 좀 끓여 봐요.“


성길 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③려과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아내가 펄쩍 뛰면서 소리쳤다.


”아니 당신 집 안에서 또 담배를 피우려고요?“


”아참, 내 정신 좀 봐. 허허허……, 이거 습관이 돼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거 집에도 이젠 ④담배칸이라도 하나 마련해 놓든지 해야지 ⑤담배질꾼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밖으로 나가야 하니 귀찮아서 살 수가 있나.“


성길 씨는 매우 불만스러운 듯 이렇게 투덜거리며 담배를 들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조금 뒤 아내가 라면을 먹음직스럽게 끓여 식탁 위에 차려 놓았다. 성길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 안에 고인 침을 한번 꿀떡 삼키고 나서 식탁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우와아~~ 꼬부랑국수 냄새 정말 죽여주는데……, 자, 어서 같이 먹어보자구.“


성길 씨가 이렇게 말하고는 그 뜨거운 꼬부랑국수를 후루륵 후르륵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내가 또 한마디 했다.


”여보, 좀 천천히 먹어요. 그러다 입이라도 데면 어쩌려고 그래요?“


”걱정 말아. ⑥쩡한 맛이 그거 아주 일품인걸. 그리고 난 아무리 뜨거운 걸 먹어도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까지 ⑦하느라지를 데워본 적이 없거든. 허허허,“


성길 씨는 아내도 같이 먹자고 하더니 순식간에 혼자 꼬부랑국수를 모두 먹어치우고 말았다. 그렇게 오늘 하루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






< 북한말 풀이 >


① 이달 저달 ② 라면 ③ 필터담배 ④ 흡연실 ⑤ 애연가

⑥ 톡 쏘는 맛 ⑦ 입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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