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경계

by 댑댑

실체가 있는 현실과, 의미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는 융합되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가, 돈, 신념, 사회 등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잠이 오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나'의 감각만이 세상을 이룬다.


눈꺼풀은 감겨오고. 몸은 나른해진다.

그러나 의식만은 뚜렷한 이성을 유지해야겠다는 각오로 저항한다.

잠과 현실의 경계.

이때의, 감각들은 둔하면서도, 날이 서있다.

정신은 뚜렷한가? 모르겠다.

이성을 기준으론, 아니다.

다만, 감각을 기준으론, 맞다.


단어가, 평소의 의미를 지니지 않은 채

그저 도형의 나열로 다가온다.

컴퓨터의 불빛은, 눈을 날카롭게 베는 것과 동시에

빛의 잔흔을 남긴다.


오로지 '나'밖에 없다.

나를 비추는 것은 여러 모양의 글자를 나열하고 있는

모니터 하나.


나는 누구인가. 모르겠다.

머리가 무겁다.

나는 여기에 존재하는가?

지구, 그리고 우주.

의 광활함을 느낀다,라고 믿는다.


육체에 갇혀있는 느낌이 든다.

아 신은 존재하는가,

자고 싶다.


잘 때, 우리는

죽어있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나.

지금의 나는

잠 앞에서, 의식을 잃겠지.

내 몸은 여기에 있지만,

나는 어디에?


듣고 있던 노래는, 점점 귓바퀴를 벗어나,

가사는 없어지고, 멜로디의 향연으로 바뀐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울린다.

내 육체가 느끼는 것인가, 영혼이 느끼는 것인가.

경이롭다.

아름답다.


글은

의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아니면, 의식 안 수많은 생각들의 정제된 결과물일까.


미술은, 모방인가. 창조인가.

모방도 창조인가,

무의식의 반영이라 믿고 싶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이든

단순히 감각기관의 전기적 신호의 집합으로 뇌에는 다가오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영혼이 있다 믿고 싶다.

그 전율울, 단순하게 과학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이데아가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아름다운 지도 정의 할 수 없지만

그걸 느끼는 '나'라는 존재만은,

그리고 그것을 아름다움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나'만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행복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본다.

누가,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단어를 정의했을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일까.

육체에서 부여하는 쾌락을 온전히 만끽하며 사는 것이 행복일까.

최소한의 고통이 행복일까.


애초에, 행복을

몸에서 느껴지는 안정적인 충만함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감정이고, 영원할 수 없다.


행복해지려고 산다는 말은, 그 뒤의 필연적인 불행을 경험하고 싶어요랑 같은 말 아닌가.


고통에 대해서도 그렇다.

행복과, 고통의 중도를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 아닌가 감히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고통은 삶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정말 모순덩어리다.

삶은.

그러나, 그 모순마저도 정해진 안배라 믿고 싶다.

그만큼 경이로우니.

모순이 오히려 삶을 빛나게 한다면

그것 또한 모순이니까 말이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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