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화 모두 시그널 음악만큼이나 상징적인 장면을 무수히 많이 탄생시킨 인기작이다. 그런데 두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 있다. 007 주인공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이름은 대부분 곧바로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것.
007의 제임스 본드를 떠올리면 핏 좋은 맞춤형 수트에 명품 시계를 차고 온갖 전투 기능을 탑재한 애스터마틴으로 시내 한복판을 누비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심지어 우리는 그의 술 취향마저 기억한다.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
제임스 본드의 클래식한 패션 센스와 한결같은 취향은 비단 이름뿐만 아니라 그의 모습 자체를 우리에게각인시킨다.
아직까지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 얘기하자면, 영화 속 그의 이름은 '이던 헌트'다.
이름을 들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비행기에 맨 몸으로 올라타거나 물속에서도 물고기마냥 자유로이 잠수하는 초인적인 모습은 떠오를지언정그가 어떤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며 술은 어떻게 마시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그저 톰 크루즈의 잘생긴 얼굴만 떠올릴 뿐이다.
문득 대학교 때 어떤 선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기억시키는 비법이라며 이야기해 준 것이 기억난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킬 때 매 번 똑같은 메뉴만 시키되, 흔하지 않은 메뉴를 고를 것. (늘 같은 메뉴여도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면 효과 없다)그러면 언제 어디서든 그 메뉴를 보면 자신이 떠오를 거라는 이야기였다.
보드카 마티니만 보면 제임스 본드가 떠오르니, 그 선배의 이야기는 꽤나 정확했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두기로 인해 부서 이동한 지 1년 여만에 가진 회식 자리에서 부장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댕굴씨는 즐기는 술 취향이 어떻게 돼?
전배 온 사람에 대한 관심의 취지로 하이트냐 카스냐, 참이슬이냐 처음처럼이냐를 물어봐줘도 감개무량했을 텐데, 심지어 브랜드 양자택일이 아닌 열린 질문이라니.
마침 맥주, 소주, 와인 모두 취급하는 고깃집이었던 터라주종을 고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이렇게 답했다.
"소주는 안좋아하고 맥주나 와인 좋아합니다"
"맥주는 어떤거 좋아하는데?"
왠지 여기서는 '테라'라고 답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짜 '취향'을 묻는 질문이구나 싶어서 "밀맥주나 라거류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성의 있게 답하는 것처럼 보이려 조금 더 살을 붙였다. "탄산 없는 기네스나 향이 강한 블랑은 저랑 안 맞더라구요.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자신들의 취향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A - "어머, 나는 기네스랑 블랑 좋아하는데. 댕굴씨 나랑 취향이 완전 정반대네"
그 옆에 있던 B - "난 IPA가 좋은데, 요새 편의점에 국산 수제 맥주 나오는 거 다 먹어보고 있는 중인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맥주라는 화두 하나 던졌을 뿐인데도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 이 회식 자리에서처럼, 다양한 브랜드 경험과 그를 통해 찾은 자신들만의 세밀한 취향을 공유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맥주뿐만 아니라 와인, 막걸리, 위스키, 심지어는 소주까지 그 종류가 끊임없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 취향을 골라내려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위한 경험'도 계속되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 각자의 취향을 공유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라고 답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에는 정답이 없지만 오답은 있다.'아무거나'는귀찮은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 때 쓰기 좋은 편리한 단어일 뿐, 취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퇴근할 때마다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고르며 발휘한 호기심과 그 덕에 발견한 맥주 취향 덕분에, 그 회식 자리에서 나는 '맥주 좀 마셔 본 사람', '취향이 분명한 사람', '그래서 아무거나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비단 술뿐만이 아니다. 높아지는 미식 문화의 수준과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소비 트렌드로 인해 우리 주변에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갈수록 많아진다.
그만큼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다는 것은 곧, 다양한 경험의 증명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충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안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해 보인다.
흔히들 자기 PR 시대라고 말한다. PR의 방법으로는 대체로 이력서에 넣을 자격증이나 경력, 그 내용을 잘 포장해내는 셀프 브랜딩과 화려한 말재주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제품 홍보 방법도 티비 광고에서 PPL이 대세가 되어가는 마당에, 나 자신을 홍보하고 각인시킬 방법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갖는 것
취향은, 나라는 사람을 은근하고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자기 PPL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