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며칠 있다가 거리가 익숙해질 무렵, 다른 지역으로도 가봐야 여행이지 하고 책을 펼쳤다. 시드니도 사실 무서워서 잘 못 다녔는데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니 그것 또한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 이동을 해야 할지 숙소는 어디로 해야 할지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걱정을 하루 이틀 정도 한 것 같다. 문제는 예약 시스템이 전화뿐이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영어가 서툰데 전화를 하면 잘 될 리가 있나..
몇 번 예약을 시도했으나 상대가 잘 알아먹지 못해서 헤매다 보니 자꾸 기다리라 하고 전화를 돌려버린다. 클래식 음악만 수화기로 들려왔다. 그래서 모든 숙소 및 관람 예약은 직접 가서 했다. 가서 가이드나 팸플릿을 보고서 얘기하면 수월했기 때문이다.
먼저 시드니에서 다음 목적지로 정한 캔버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기로 했다. 호주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탄 기차여행이다. 이후에 들은 정보는 버스를 타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터미널이 도심지와 가까워서 여행하기가 더 편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후로는 버스를 이용했다. 시드니에서 어떻게 기차를 탔는지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탔던 것 같다.
땅 덩어리가 크다 보니 시드니와 캔버라는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아도 8시간이 걸린다. 한국에서는 명절 휴가철에 길이 막혀서 10시간 동안 버스에 갇힌 적은 있지만 막히지도 않는 기차를 8시간 타고 간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열차 내에서 가져온 여행 책자를 보며 캔버라는 어디가 좋을까 하고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딱히 매력적인 곳이 없네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옆 좌석에 앉은 젊은 흑인 여성과 눈이 마주쳤고 그분은 갑자기 나에게 사탕을 하나 건넸다. 뭔가 줘야 할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나.. 그런 뒤로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그분은 영어로 힘겹게 얘기하는 나를 여유 있게 듣고 천천히 답해 주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이야기했고, 도착하면 늦은 시간일 텐데 숙소는 찾아놨냐는 질문에 가서 찾을 거다 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럼 자기네 집에서 머물다가라 했다. 몇 시간 이야기를 해봤을 땐 좋으신 분인 것 같고 민폐이긴 하지만 밤늦게 도착하는 경우에 숙소 찾기가 쉽지 않으니 그래주면 고맙겠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도착하니 그 여성의 친구 혹은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저를 소개하고 데려가도 되냐고 얘기를 했다. 그 친구 분은 약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잠시 자리를 옮기자 했다. 예상컨대 모르는 여행객을 집에 데려가는 건 안된다고 혼내는 것 같았다. 돌아와서는 밤늦게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전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 같으니 택시를 불러 괜찮은 숙소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근처 택시 쪽으로 가서 택시 기사와 한참을 뭔가 이야기를 했다. 숙소 근처로 내려달라는 게 뭐 그렇게 오래 할 이야긴가 싶었지만, 택시에 내리고 나서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도착하는 시간도 고려하지 않았고, 기차역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준비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들게 하는 날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좋은 분을 만나 택시도 잡고 택시 기사님께 목적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조용한 펍이 있는 곳이었는데 택시 기사님이 계산이 끝나고 차에서 내려 나를 데리고 리셉션까지 가서는 비서처럼 방을 잡아줬다. 기차역에서 뭘 그리 오래 얘기하나 했더니 숙소까지 잡아주라는 것이었다보다. 방 숙소에는 3개의 2층 침대가 있었고 아무도 없이 나만 쓰게 되었다. 애초 이 동네에 여행온 사람이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거리가 너무 조용했다. 마치 무서운 영화의 배경지로 사용되는 고립된 조용한 시골 마을과 같이 고요했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은 이곳이 너무도 무서웠다. 시드니에서 머물 때는 밤새 너무 시끄러웠지만 그 소리 덕에 겁이 많던 나는 사람이 사는 동네구 나하고 안심하며 잠에 들었는데, 여긴 정말 바람소리 하나 나지 않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숙소에 사람도 없는지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약간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해가 뜨려고 하는 새벽쯤에 살짝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갑자기 몰아서 잔 잠에서 깬 후로 바로 멜버른으로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곤 무식하게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선택을 했다. 가는 길에 캔버라의 곳곳을 구경하며 여행을 왔다는 느낌 정도만 내려고 했던 것 같다.
캔버라?어떻게 길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여행 책자의 조각조각의 지도를 이어보며 길을 찾았고 결국 버스 정류장에 도착을 했다. 예약이고 뭐고 가장 빠른 멜버른으로 가는 버스의 티켓을 구했다.
그리곤 미련 없이 캔버라를 떠난다.
여긴 정말 걸었던 기억뿐이다.
호주는 버스를 이용할 것, 버스 터미널 주변이 시내니까.
기차역은 시내와 멀어
걷지 말고 버스를 타자.
1주일 지난 나의 여행에 체크리스트가 하나씩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