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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 도시 - 멜버른

가장 밑바닥까지

by 대석 Dec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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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케언즈를 떠나 멜버른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버스 정류장은 시내와 가까워 모든 것들이 편했다. 이렇게 배워나가는 것이겠지.


어느 도시로 가든 무거운 배낭을 벗어던지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도록 숙소를 잡아야 한다.

책을 펼쳐 점지해 뒀던 숙소로 이동하고 리셉션에서 힘겹게 방을 잡는다. 시드니의 두리 하우스는 한국적인 마인드가 있어서 최대한 여자와 남자는 다른 방으로 배정했다. 케언즈는 나만 썼으니 몰랐고 멜버른에 와서야 여긴 그냥 방을 내어주는구나 했다. 여성분들은 그냥 들어와서 누가 있던 기본적인 겉옷은 그냥 갈아입는다.

처음엔 내가 너무 조용히 있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런가 싶어서 숨죽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신경을 안 쓴다.


멜버른은 트램을 이용해봐야 해서 시드니와 캔버라는 걸어 다녔지만 여기서는 트램을 타고 이동을 하니 훨씬 더 재미난 여행이 된 것 같고 이동에 자신감(?)이 붙었다. 첫날을 도시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둘째 날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계획은 없었기에 스킵하고 동쪽 최북부의 케언즈라는 도시로 바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멜버른에서 3일 정도 있을 예정이니 비행기 표를 미리 구해놓았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호주 최남단에서 펭귄을 볼 수 있다는 내용에 가보기로 한다. 멜버른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적혀있었다.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필립 아일랜드라는 곳을 가려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 버스가 완행버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3번의 정차가 있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의 발음은 어느 지역인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그냥 물어보면 될 것을 사람 많이 내리는데서 내리면 되겠지 하고 소심하게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1차에서 내리는데 너무 조금 내리기에 여긴 아닌갑다하고 기다렸다. 두 번째 정류장에서는 애매하게 반쯤 내렸는데 이 때도 주변을 둘러보니 허허벌판만 있어 아닌 것 같았다. 또 한 번의 정차에서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이미 늦은 오후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선 손님 모두가 내리는 것이었다.

도착한 곳이 바다이긴 했으나 펭귄 따윈 보이지 않을뿐더러 당장 내일 예약해 둔 비행기 때문에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다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동은 걸어서 돌아가는 것이다.

어딘지 몰랐던 그곳..

왜 그랬을까..

방향도 길도 모르면서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길은 왠지 하나뿐이었던 것 같은데 길게 뻗은 도로와 나무 그리고 끝없는 넓은 평야뿐이었다.


3시간쯤 걸었을까?

나는 휴게소 같은 것이라도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젠 도저히 안 되겠다. 차를 세워서 얻어 타고 가야 한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도 드문 드문 차들이 이동했다.


첫 번째는 할아버지께서 자기 농장으로 가는 길에 내가 손을 흔드니 세워서 왜 그러냐 한다.

나는 대뜸

"아이 햅투 고 멜번( I have to go melbourne)" 했다. 할아버지는 눈이 땡그래지더니 거긴 너무 멀다. 너 어디서 온 놈이냐 하는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할아버지가 갈 수 있는 최대한 가주겠다 하고 나를 태워주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 나에게 수첩을 건내 사진을 보라하며 아들 자랑을 하더라. 어느 나라든 다 똑같다. 시골에서 자주 못 보는 자식을 그리워하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와 차에서 내리기 전에도 자식 자랑에 갈길이 멀어 보였지만 여기까지 태워주셨으니 마저 듣고 내린후 다시 걸었다. 이제 들고 있던 물도 다 마셔서 입이 바짝 말라왔다. 차를 잡으려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다. 그것도 그런 것이 정말 도로와 허허벌판의 길에서 동양인이 세워달라고 하니 이상했겠지. 차를 세우다 이런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들고 있던 다 먹은 페트병을 지나간 차를 향해 던졌다. 그런데 가던 차가 갑자기 정차를 하는 것이다. 앗차 패트 던지는 걸 본 걸까..? 그래도 일단 차가 섰으니 다가가서 또 왜 쳤다. 

"아이 햅투 고 멜번(I have to go melbourne)"

그때 그 사람의 놀란 표정도 기억이 날 듯하다. 자신은 서핑을 하러 가는데 멜버른 방향으로 또 가다가 세워주겠다고 했다. 어찌 되었건 차를 타고 한참을 또 갔다. 조금 아쉽게도 얼마가지 못해서 갈림길이 나왔는데 자신은 다른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멜버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온 걸까..

내려서 걷는데 어둑어둑해진다. 이젠 차도 얼마 안 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여태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본 것도 같다.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뭘 하더라고 그때그때 맞춰 준비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잘 이야기하지도 못하는 나다. 혼자 할 거면 철저함을 갖춰야 하지 않았을까..


이젠 정말 깜깜해졌다. 차도 없다. 여긴 정말 어딘지도 모를 끝없는 어둠으로 계속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나 많이 걸었는데 도로에 휴게소 따위도 없었다. 정말 드넓은 평야와 나무만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었다. 이젠 내 눈앞 몇 발자국 앞만 보이는 정도의 어둠이 깔린 무렵, 저 멀리 밝은 인공의 불빛이 보였다.

이미 지쳐버린 몸이었지만 걸음이 빨라졌다. 가서 여기가 어디였던 건 간에 돈이 얼마가 들건 간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야겠다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멀리서도 보였던 불빛이 가까워진다. 이젠 눈물이 다 날지경이다. 규모가 있던 주유소였다. 편의점 같은 것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차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사람이 가게로 들어오니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나는 주인장에게 대뜸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택시를 불러달라 나는 멜벌에 가야 한다고 외쳤다. 지친 몸과 마음에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았다. 가게 주인은 정말 택시 부를 거냐는 말에 나는 물론이다. 바로 불러달라고 얘길 하는 와중에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지쳐 보이는 아저씨 하나가 무심하게 자신이 멜버른을 가니까 타고 가라 했다. 어디에서 오시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무조건 오케이다. 차를 타고 가며 영어를 잘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가는 길에 차에서 연기가 났는데, 아저씬 괜찮다면서 길에서 잠시 쉬었다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다 잠시 이야기가 끊겼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깨우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여기 멜버른 근처니까 저쪽 주유소에 가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두 번째 주유소에 들어가서 혹시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하니, 가게 주인은 그걸 나한테 시키냐는 표정으로 저기 공중전화가 있으니 전화하랜다.

그래서 전화를 하려 하면서 혹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사장님은 한숨을 쉬며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으로 자기가 불러주겠다 하며 어딘가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불러주었다. 그리곤 얼마 되지 않아 택시가 왔고 그 택시를 타고 다시 숙소로 올 수 있었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 트럭 아저씨가 데려다준 것이다.

숙소 침대를 보자마자 바로 누웠고 한참을 잤다. 일어났을 땐, 몸 마디마디가 부서질 듯 아팠다. 아마 8시간 가량 걷고 차를 2시간 정도 얻어 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어두워진 도로와 내가 걸어가던 길이 기억난다. 그렇게 길 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도착한 마을에서 충분히 물어보고 이동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그냥 그 동네에서 하루를 보냈어도 충분했었을 텐데 말이다.


그 뒤의 여행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여행에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무섭게 생기고 어떤 부탁도 안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라도 여행객이 길을 못 찾거나 어려움에 봉착하면 모두들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 사람을 판단했고 나를 스스로 어려움에 빠뜨렸었다는 생각을 했던 날이었다.


이 뒤로의 여행은 더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 여행 초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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