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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떠 받치는 힘

그랑죠 38화 힘을 잃은 거인

어린 시절 울산에 계신 외삼촌 댁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엔 내 또래의 사촌이 두 명 있었는데 죽이 잘 맞아서 잘 놀곤 했다. 도착한 날에 나를 데리고 동네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산 뒤 비디오 가게를 찾아갔다. 거기서 신나게 소개받은 <그랑죠> 애니메이션.

이게 엄청 재밌단다.


그날 이후 엄마를 쫄라 한 편씩 빌려보기 시작했다.

배경은 대충 달에 갑작스러운 공기가 생기고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어 관광지로 지구인이 방문을 한다.

그리곤 주인공이 선택받아 땅 속에서 로봇을 소환하여 싸우는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만화

땅에 특수한 총으로 문양을 세기면 대형 얼굴모양의 로봇이 나오는데 조건이 아주 빠르게 로봇으로 접근해야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땅이 울퉁불퉁하면 문양 세기기가 어려워서 소환이 어렵다.


암튼.


굉장히 오래전에 본 만화이고 기억나는 건 로봇의 이름인 그랑죠, 포세이돈, 피닉스 정도였다. 그리고 잊히지 않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힘을 잃은 거인"

하늘이 곧 무너질 것 같은 마을에 주인공 무리들이 진입을 하는데, 거인 하나가 하늘을 힘겹게 떠 받치고 있다. 그 거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음악을 연주해 주는 것을 듣고 힘을 얻었는데, 마을이 공격받아 이젠 연주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어린 시절에 땅, 하늘, 물에서 로봇이 올라와 악당들과 싸우는 재미로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다시 생각이 났다. 거인이 힘에 겨워 쓰러지면 자신이 죽는 것은 물론 자신을 위해 연주해 주었던 사람들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회사 생활을 오랜 시간동안 해왔다.

당연하게도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무너지는 하늘을 떠 받치고 있던 그 거인의 모습이 과거의 힘든 순간과 겹쳐 보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곧 하늘이 나를 짓누를 텐데..


그런 힘듦 속에서 진심을 담은 음악의 연주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늘을 내가 떠 받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 준다면 힘이 나는 거인.

그 감사라는 것이 단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안다"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이기적일 수 있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니..


<힘을 잃은 거인> 편에서 거인은 사람들의 음악으로 다시금 힘을 냈고 그 하늘아래 사는 사람들도 행복했다.

그거면 될 것 같다.


서로가 필요한 건 높고 푸른 하늘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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