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
비나 눈이 오는 날씨가 아니라면 아침에 일어나 집 앞 하천으로 가서 달리기를 한다. 하천을 기준으로 한 바퀴를 돌면 대략 7킬로 정도가 되는 거리이다. 일주일에 3 ~ 4번이라면 적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불과 3~4년 전에는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 회사에 가기 바빴던 것 치고는 장족의 발전이다.
뭐든지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다.
달리기를 하게 된 것도 하루 종일 사무실 책상에 앉아 운동을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의 권유로 11킬로 달리기 대회를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는 200미터 정도?
참가의 의의를 두고 대회 준비를 했었다.
3개월 동안 매일매일 꾸준히 나가서 무거운 몸뚱이를 움직여 보았다.
조금씩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더니 대회 때 쉬지 않고 완주를 했다.
돌이켜보니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굵어져 해 보기 전에 지레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졌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나이 탓을 참 많이 하는 것 같다.)
달리기 완주는 나에게 신선한 성취감을 안겨주었고,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달리기를 해왔었다.
다만 어느 순간 달리는 것이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고 싶은데 정체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몸은 여전히 뚱뚱하다.)
그래서 거리도 늘려보고 페이스도 빠르게 해 보았다.
그중 거리를 늘리면서 깨달음을 하나 얻었는데, 사실 아는 내용이긴 했지만 체득을 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동네 하천 한 바퀴는 7킬로이다.
한 바퀴라는 만족이라는 선을 그어놓으면 그것이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이 굳어지면 그걸 깨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5킬로만 뛰고 들어오는데 "만족" 하지 못했다. 컨디션 핑계를 해 보아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순 없었다.
그렇다면 한 바퀴라는 만족의 선을 어떻게 올리는 것인가 하는 시험을 조금 해봐야 했다.
그래서 하루는 한 바퀴를 뛰고 1킬로를 더 뛰었다.
말 그대로 "더" 뛴 것이다.
다음 날에도 "더" 뛰려고 노력은 했지만 한 바퀴가 다가오면 해방감 같은 것이 오면서 나 스스로 마무리 하길 바랐다. 한 바퀴의 만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칭찬을 할 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바퀴의 선을 넘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번을 시도했지만 한 바퀴가 되는 공간이 눈에 보이면 저기가 끝이다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잠시 포기를 했던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시도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3번까지는 1킬로가 "더" 늘려 뛰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5번이 넘어가면서 나의 데드라인은 한 바퀴가 아니게 되었다.
최소 5번, 내 것이 되는 시도.
더 이상 "더"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데드라인
주식을 하다 보면 내가 수익을 얻은 것보다 손해를 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기준을 잘 세워두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절대적 양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고만 할 뿐 정작 중요한 건 "내가"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터무니없다 해도 나의 기준이 올랐다면 그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