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옥수수 밭의 하나 뿐인 나의 옥수수
어릴 적부터 업어 키웠다는 소리를 하는 6살 터울의 사촌 누나가 있다.
(진짜 포대기에 나를 싸서 업고 있는 사진이 있더라 ㅎㅎ)
서울의 좋은 대학에서 공부 중인 누나가 방학 때는 과외도 해주고 수능 후에는 진로 상담도 해주었다.
자신의 일처럼 고민해 주고 나의 미래를 위한 대학을 결정했다.
그땐 인터넷이니 뭐니 그런 건 없고 지난해 대학 입시 요강과 학과별 경쟁률, 올해 입시 관련 정보가 수록된 두꺼운 책이 전부다.
몇 년간 학생들을 과외하며 숙련된 학원 입시 강사처럼 빼곡히 적힌 학교 정보들 속에서 내가 갈만한 곳을 몇 개 찍어줬다.
모두 서울권으로 3군데를 선정했다.
내 점수로 괜찮을까?
오롯이 한해 지난 정보를 가지고 올해의 점괘를 맞추듯 가능성은 낮지만 해볼 만하다고 했다.
추운 겨울 반지하 단칸방에 같이 머물면서 발표날까지 기다렸다.
아직도 그날의 반지하 단칸방, 내가 합격자 발표를 들었던 <라바>에 나온 보라색 외계 생물체처럼 생긴 빨간색 유선 전화기, 그날의 추위와 누나도 믿기 어렵다는 표정까지 기억이 난다.
"나 합격했다는데?!"하고 어벙벙한 목소리로 누나한테 얘기했다.
믿기 어렵다는 듯 누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합격 축하 팡파레 소리를 듣고 나서야 환호하며 늦은 밤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합격을 알렸었다.
그 뒤로 먹여주고 재워주며 엄마처럼 키워줬다.
뭐 방황이야 했겠냐만은 누나가 있어서 서울 생활을 무난히 했었던 것 같다.
누나는 누우면 바로 잠이 들어 이야기할 경우가 거의 없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라며 해주었다.
사람마다 하나의 하우스가 있고 그 속엔 옥수수 밭이 있데.
길은 하나뿐이고 앞으로 나가가면 뒤로 돌아갈 수도 없어.
그리고 딱 한번 옥수수를 따서 내가 가질 수 있어.
길을 따라서 가다가 큰 옥수수를 찾았다면 그걸 따서 가질 수도 있고 조금 더 길을 따라가 더 큰 걸 찾아볼 수 있기도 해.
근데 단 한번뿐이라고 더 큰 것에 욕심내지 마.
지금 본 옥수수가 네가 본 것 중에 그리고 앞으로 볼 것 중에 제일 큰 것일지도 몰라.
그리고 만족하면 돼.
그러면 그게 제일 좋은 것이야.
조금은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 이긴 했고 그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말을 이해한다.
건강하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