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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Sep 24. 2020

내가 맨 처음 울던 날

#9.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태풍 마이삭이 휘몰아치던 날 엄마가 아침부터 나물을 볶아댔다. 콩나물을 무치고 시금치를 데치고 고사리를 볶고……. 유리창 깨질까 봐 창문도 꼭꼭 닫아둔 터라 집안이 기름내로 가득 찼다. 머리가 아팠다.  

“누구 제사야?”

“오늘 큰 이모 생일이잖아.”

헐, 제사가 아니라 생일이라고? 큰 이모한테 조금 미안했다.       


큰 이모는 올해 칠십 둘이다. 40대부터 파킨슨병을 앓았고 5,6년 전부턴 치매까지 앓기 시작했다. 치매도 중증이어서 손자 손녀도 못 알아보고 뺨까지 때렸단다. 그런 사람이 자기 생일을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케이크 먹는 날’이라고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쳐놨다고 한다.      


난 엄마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 이런 궂은 날씨에 지하철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곳을 꼭 가야겠냐고, 엄마도 낼모레 팔십이라고 했다. 내 말에 엄마는 케이크 사간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어떻게 안 가냐고, 그러다 얼굴도 못 보고 갑자기 죽어버리면 어쩌냐고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이모는 원래 아프기 전부터 식탐이 많았다, 이모가 기다리는 건 엄마가 아니라 케이크다,라고.     


친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큰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큰아버지는 이혼 두 번, 사별 한번, 동거 3번의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였다. 그렇다 보니 할머니는 평생 제대로 된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유일한 며느리인 엄마가 생일날 아침에 음식을 만들어 갔다. 버스가 큰집 앞을 지나갈 때면 폐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무표정이던 할머니는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에서 엄마가 내리면 얼굴이 환해졌다. 처음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짠했지만 나중에는 엄마를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엄마가 차 다니는데 위험하다고 집에 계시라고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생일날 할머니는 그렇게 엄마를 기다렸다. 미역국을 기다린 게 아니라.     


엄마는 생일 달이 되면 몸을 엄청 사린다. 생일 달에 병 걸리면 반드시 죽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가 쓰러졌거나 암에 걸렸다고 하면 그 사람의 안부보다 생일 달인 지를 먼저 묻는다. 그래서 생일달이 맞다고 하면 “거봐, 내 말이 맞지!” 하며 흥분을 한다. 아버지가 생일 달에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고모할머니도 생일 달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시자 그 믿음은 더 확고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칠십 넘어서 생일날 미역국 먹으면 풍 맞는다고 소고기 뭇국을 먹는다. 그런 미신들은 어디서 듣고 오는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렇게 미신을 믿으면서 정작 악몽을 꾼 다음 날엔 머리맡에 성경책과 십자가를 두고 잔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믿는 종교가 달라지는 셈이다.      


조카가 맨 처음 울던 날 가장 행복해한 사람은 조카가 아니라 언니였다. 언니는 막 태어난 조카를 안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조카의 돌잔치 때도 주인공인 조카보다 언니가 더 행복해했다. 조카는 얼굴도 모르는 어른들이 ‘돈 집어라’, ‘청진기 들어라’ 하는 성화에 짜증이 나서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조카는 자의식이 생긴 네 살이 돼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일을 기뻐했다. 가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자기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넘쳐흘렀다. 난 그 날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았다. 그렇게 가족의 사랑만으로도 행복해했던 조카는 이제는 사춘기여서 그런지 ‘사랑’보다 ‘돈’이나 ‘아이돌 포토앨범’ 같은 물질적 선물을 더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 처음 울던 날 아버지는 또 딸이냐며 못마땅해했다. 그리고는 우는 나를 내버려 둔 채 나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난 남자아기를 보러 옆집으로 가 버렸다. 태어나자마자 받은 푸대접 때문인지 생일날 기뻤던 기억이 없다. 초등학생 땐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자기 방이 있었고 침대와 피아노가 있었다. 단칸방에 살던 나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매년 의미 없이 돌아오는 생일. 몇 해 전부턴 미역국도 먹지 않고 있다. 이제 나에게 생일이란 한 살 더 먹었다고 알려주는 ‘알람’ 일 뿐이다. 그래도 생일날만큼은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내년 생일은 다른 모습으로 맞이할 거라고 굳게 다짐해보지만 아무 소용없다. 그다음 해도 난 같은 모습으로 생일을 맞는다. 그저 나이만 먹는 생일을……     


언제쯤이면 의미 있는 생일을 맞을 수 있을까? 내 년? 내 후년? 물론 살아있음에 감사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왜 태어났는지, 뭘 위해 살았는지 그 이유를 찾고 싶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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