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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Mar 02. 2023

김치는 살 수 있어도 엄마는 살 수 없다

#25.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지난겨울, 김장을 한 다음 날이었다. 새벽 1시쯤 엄마가 팔에 마비가 온 것 같다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당신 나이 생각은 않고 아침 7시부터 무채를 썰더니 기어이 사달이 났구나, 싶었다. 배추 절이는 시간을 잘못 계산해 새벽 3시에 배추를 씻고 6시가 돼서야 잠을 잔 내 탓이기도 했다.


방에 가보니 엄마가  왼손으로 오른팔을 주물러대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보더니 바늘로 오른쪽 어깨를 찔러달라고 했다. 이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 민간요법인가. 체한 것도 아닌데 어깨를 따 달라니. 어제 김장하느라 팔에 무리가 와서 저린 거라고, 파스나 붙이라고 하려다 그냥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콕콕콕. 바늘에 찔린 살갗에 피가 몽글몽글 맺혔다. 엄마의 얼굴이 그나마 편안해 보였다. 옆에서 같이 잘까 하다가 그냥 내 방으로 와 버렸다. 막상 자려고 누우니 심란했다. 설마 밤 새 무슨 일이 있겠나 싶다가도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 근육통이 아니면 어쩌나 싶었다. 엄마 없는 내 삶이 상상이 안 됐다. 화분에 물 주는 것 가지고도 싸우지만 그게 엄마와 나의 소통방식이었다. 남들 눈엔 어찌 보일지 몰라도.


다음 날 아침 일찍 한의원에 갔다. 혈압을 재니 수치가 150이 나왔다. 한의사가 맥을 짚더니 '풍기'가 있다고 했다. 그의 한마디에 엄마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난 어이가 없었다. '풍'이면 '풍'이지 '풍기'는 또 뭐람.

한의원 진료 후 바로 내과로 달려갔다. 혈압이 높으니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다. 내과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정도 수치론 약을 먹기가 애매해요."

"엄마 나이가 팔십인데도요?"

내 반문에 의사가 "네." 하더니 한 달 동안 혈압체크를 해보고 그때 가서 고민해 보자고 했다. 답답했다. 그 사이 갑자기 혈압이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한의사나 내과의사나 마음에 안 들었다.


한 달 후 혈압수첩을 가지고 다시 내과에  갔다. 최고혈압이 140~150을 넘나드는데도 의사는 또 고민을 했다.

"수치가 대개 애매한데..."

"그냥 처방해 주세요."

우유부단한 그를 대신해 내가 진단을 해버렸다.


하루아침에 '풍 보균자'가 된 엄마는 마치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굴었다. 평소 하던 점심모임도 안 나가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여기저기 전화를 해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나, 풍기 있대!"


그런 엄마를 보는 게 싫었다. 아버지 간병을 해본 경험상 절대 풍이 아니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정확한 검사결과를 제시해야 엄마가 '풍'의 공포에서 벗어날 것 같았다.  급히 신경과 예약을 했다. 한 달 후에나 진료가 가능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지만 진료시간은 딸랑 5분, 그마저도 검사를 해봐야 팔이 저린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사도 한 달 보름 후에나 가능했다. 차라리 동네 영상의학과나 갈걸. 뒤늦은 후회였다.  


엄마는 총 4가지의 검사를 받았다. MRI, MRA 혈액검사 상하전지검사. 처음 듣는 검사도 있었다. 2시간 넘게 검사를 받으면서 엄마가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원래 병원에 가면 더 아픈 법이다. 일주일 후 검사결과를 들으러 갔다. 신경과의사는 검사순서대로 결과를 알려주었다.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혈액검사, 어쩌고저쩌고 이상 없음. MRI, MRA 어쩌고저쩌고 이상 없음. 상하전지 검사, 어쩌고저쩌고 이상 없음.

"검사상으론 아무 이상 없으시네요."

의사의 말에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한편으론 뭔가 아쉬운 듯  "아직도 손, 발끝은 저린데요."라고 했다. 의사가 "아직도 불편하세요?" 라며 '왜 저리지?'하는 얼굴로 엄마를 봤다. 엄마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네."라고 했다.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어도 난 아직도 아프니 의사인 니가 해결하라는 투였다. 신경과의사는 신경 쪽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처방해 줄 것도 없다고 했다. 끝까지 사무적이었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노인네가 아프다 하면 '스트레칭이나 걷기 운동하시면 괜찮아지실 거예요.'라고 말해주면 좀 좋아. 뇌졸중 환자는 재활운동이 최고의 처방약이란 걸 신경과의사인 지가 더 잘 알 거면서!  


지난달, 안과 정기검진 때가 생각났다. 의사가 검안경으로 엄마 눈을 들여다보더니 망막 상태도 좋고 검사결과도 좋다고, 백내장 수술 후 유지가 잘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눈이 뿌옇고 침침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의사가 다시 검안경으로 엄마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엄마 무릎에 손을 얹고는 "어머니,  어머니 연세에 시력이 0.8 이면 엄청 좋은 거예요, 어머니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정 불편하시면 제가 레이저 한번 쏴 드릴게요"라고 했다. 츤데레였다. 엄마는 그 후로 더 이상 눈이 불편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병원을 나오는데 엄마가 계속 궁시렁댔다.

"손, 발끝 저린 건 어떻게 하라고 약도 안 준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이 뭔지 싶었다. 신경과의사가 '풍이 맞네요.'였을까? 그럼 '거봐, 풍이 맞다잖아!' 하며 자신의 몸상태가 풍이였음을 인정받고 싶은 걸까?


지금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이걸 것이다. "엄마, 김장하느라 무리해서 그래. 침 맞고 한약 먹고 해서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잖아. 완전히 다 나을 때까지 한의원 계속 다니자. "

그런데, 난 그런 다정한 딸이 못 된다. 숱한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다정함은 약에 쓸래도 없다. 난 까칠하다. 난 내 방식대로 엄마를 대한다.

"나도 아파. 나도 물건 들고 하면 팔다리가 저려! 그럼 나이는 먹는데 몸은 안 닳아? 그러니까 누가 엄마더러 무채를 썰라 했냐고? 왜 본인 나이 생각은 안 하냐고!"

"그럼 어떻게 안 해? 너 혼자 할 게 뻔한데!"

"그게 도와주는 거야? 봐, 결국엔 더 신경 쓰게 만들었잖아."

내 핀잔에 엄마가 도망치듯 앞서가며 중얼거렸다.

"아무 이상 없으면 다행이지, 뭐."  


더 화가 나는 건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김장이 맛대가리가 없다는 거다. 이번 김장은 '김장'이 아니라 '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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