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신돌이 Oct 21. 2021

엄마만의 방

#19.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나는 여태껏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우리 집은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재래식 원룸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방 두 칸으로 이사를 간 건 내가 스물두 살 때였다. 말이 두 개지 방 하나는 성인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작아서 그 방은  아버지 혼자 써야 했다. 엄마랑 우리 세 자매는 큰 방에서 같이 지냈다. 내가 서른 살 때 비로소 방 세 개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는 아버지와 언니가 각자 방을 썼고 엄마와 나 동생 셋이서 큰 방을 썼다. 우리 세 사람은 언니가 결혼한 후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한방에서  지냈다.  몸에 가난이 배어서 그런지 내 방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후에도 우리의 원룸생활은 계속되었다. 명목상 방은 세 갠데 방 하나가 미닫이문이라 아예 떼 버리고  거실로 썼다. 작은 방엔 책장과 서랍장만 넣어두었다.


우리 세 사람은 나란히 이불을 펴고 누워 잠들 때까지 TV 보면서 끊임없이 떠들고, 누가 방귀라도 뀌면 나가서 자라고 구박을 했다.  엄마가 자다가 잠꼬대를 하면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우고  누가 다리에 쥐라도 나면 벌떡 일어나 주물러댔다.


가끔 동생이나 내가 한두 번씩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어느 날 난데없이 이불과 베개를 들고 작은 방으로 가버렸다. 답답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좀 황당했다. 그 숫한 세월을 같이 지내고도 이제와 답답하다니 . . .동생은  자기만 좋은 거 아니냐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 한편으론 이해가 갔다. 엄만 우리랑 같이 방을 쓰는 게 불편했을 것이다. TV도 동생과 내가 보는 걸 같이 보느라 재미가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남지친구와 통화하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우리 중에 남자 친구가 있는 사람은 엄마가 유일했으니 엄마가 '자기만의 방'을 갖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방을 따로 쓰다 보니 성가신 일이 생겼다. 엄마가 잠꼬대를 하면 깨우러 가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엄만 혼자 자는 게  무서운지 수시로 악몽을  꿨다. 처음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깨우러 갔는데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동생과 서로 니가 가라, 네가 가라 떠밀기 일쑤였고 나중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깨우거나 그도 귀찮으면 곧 끝나겠거니, 하고 버텼다. 그래도 잠꼬대가 계속되면 깨우러 가서 한마디 했다.

 "원룸으로  돌아와!!!"


가장 큰 문제는 엄마 혼자 TV를 보게 된 것이다. 엄마는 원래 TV 출연자보다 말을 더 많이 해 같이 보는 사람이 짜증 날 정도다. 그런 사람이 혼자 TV를 보려니  얼마나 심심할지 안 봐도 뻔하다. 엄만 동생과 내가 거실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방에서 나와 물 마시는 척하며  쟤, 뭐냐며 말을 시켰다. 그래서  우리가 머라 머라 답하면 몇 마디 하고는 이내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우리가 거실에서 같이 보자고 해도 못 들은 척했다.  자기가 먼저 독립 선언했는데 다시 돌아오기 민망스러운 모양이다.


엄만 혼자 '대한 외국인'을 보면서 답을 외쳤고 뉴스를 보면서 혼자 욕을 했다. 그런 엄마가 걱정스러웠다. '저러다 치매라도 걸리면 어쩌지? 옆에 앉아 같이 봐야 되는데...' 그러는 한편으론 '내가 왜?' 하는 반발심이 생겼다.


엄마는 항상 부재중이었었다. 일을 나가지 않는 일요일에도 엄마는 집에 있지 않았다. 답답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실 엄마는 집에 있어도 내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았다.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한 것도, 손톱이 길어 선생님한테 혼난 것도 말이다. 그때 난 구구단을 외워야 한다는 것도, 내 손톱이 그렇게 긴 줄도 몰랐다. 난 몰랐지만 엄마는 알아챘어야하지 않을까? 난 자식이고 당신은 엄마 아니던가.


지금 난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고 엄마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엄마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는 한다. 그래서 머리로는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조잘거려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잘 안된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어도 어린 나를 혼자 내버려 둔 엄마가 밉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가

 '정서적 밥'이란 말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내가 여지껏 엄마가 미운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엄만 내게 '정서적인 밥'을 주지 않았다. '그냥 밥'만 줬다. 누구나 먹는 밥을 말이다.

 

난 요즘 매일 엄마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그냥 밥'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정서적인 밥'일 게다.


이젠 내 차례다. 이젠 내가 엄마에게 '정서적인 밥'을 차려주어야 한다. 어떤 재료를 넣고 밥을 지을지는 모르겠으나, 밥이 설익든 새까맣게 타 버리든 이젠 취사 버튼을 눌러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이전 15화 엄마 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