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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Jun 23. 2022

엄마의 부재

#21.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나는 동요 '섬집 아기'를 싫어한다. 노랫말을 듣고 있으면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세상에, 아기 혼자 집을 본단다. 업고서라도 가야지, 엄마라는 사람이 제정신인가? 아기가 자다 깨서 엄마 찾으러 방에서 나왔다가 툇마루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기가 목놓아 울어도 바닷소리에 묻혀 들을 수도 없을 텐데...


그런 경우의 수까지 생각 안 한 엄마가 미웠고, 집에 아기 혼자 두고 굴 따러 가야 할 만큼 가난한 엄마가 싫었다.

굴 따다 지친 엄마가 종내엔 아기 혼자 버려두고 뭍으로 도망칠 것만 같았다.

아기는 그것도 모르고 빽빽 울다가 지쳐 잠이 들겠지. 울다 지쳐 자고 울다 지쳐 자고...

섬집 아기가 아니라 버려진 아기 같았다.


예전엔 나도 조카 재울 때 이 노래를 종종 불렀었다. 멜로디가 잔잔해선지 이 노랠  불러주면 조카가 금방 잠이 들었다. 하지만 노랫말이 싫어서 나중엔 허밍으로만 불렀다. 엄마도  조카 재울 때 이 노래를 자주 부르곤 했다. 내가 애 자다  악몽 꾼다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노랫말이 어때서 그러냐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가 일하러 갔는데 안 울고 곤히 자는 아기가 얼마나 예쁘냐면서 말이다.

전지적 엄마 시점이다. 아기 심정은 아랑곳 않는...


그런데 요즘, 엄마가 이 노래를 자꾸 부른다. 깔깔깔, 소리 나는 TV 켜놓고 자기만의 방에 들어앉아 혼자 응얼거린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이젠 재워줄 손자도, 옆에서 들어줄 자식도 없는데 넋두리인지, 협박인지 모를 노래를 부른다.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무섭다. 엄마가 날 혼자 내버려 두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까 봐...

두렵다. 진즉에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도 남았을 내가 어느 순간 엄마 없는 존재가 될까 봐...


난 매일 밤 잠들기 전 엄마 방을 들여다본다.

살아 계시라, 살아 계시라, 계속 살아 계시라...

내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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