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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Feb 09. 2023

엄마는 외출 중

#24.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엄마는 늘 집에 없었다. 일을 나가지 않는 일요일에도 한 솥 가득 밥을 해놓고 집을 나갔다. 엄마의 외출은 쉬기 위함이었다. 일을 나가야 하는 6일을 위해 밖에서라도 쉬어야 했다. 다섯 식구가 누우면 꽉 차는 지하 단칸방은 쉴 공간이 되지 못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나가줘야 숨이 덜 막혔다.  


나는 엄마가 해놓은 밥을 챙겨 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아침에 나간 엄마는 밤이 되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왔다. 간혹 엄마가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기도 했지만 난 엄마를 믿었다. 열네 살의 나는 엄마가 날 버리지 않을 거란 믿음 하나로 지독했던 가난을 견뎠다.


그런 나의 믿음이 깨진 건 내 나이 서른네 살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졌다. 뇌경색이었다. 처음엔 왼쪽 편마비였는데 중환자실과 입원실을 오가면서 식물인간이 되었다. 식물인간인 환자를 돌보는 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180센티의 거구였다. 간병 초기여서 요령도 없었다. 변을 본 기저귀를 갈거나 환자복을 갈아입힐 때는 엄마가 옆에서 도와줘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병실에 있는 걸 답답해했다. 내 옆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난 그런 엄마가 불편했다. 본래 밖으로 돌아다녀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맘 같아선 집에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혼자서 기저귀를 갈 자신이 없었다.      


엄마의 한숨이 유독 심한 어느 날이었다. 난 엄마에게 바람 좀 쐬고 오라고 했다. 이제 막 기저귀를 갈고 난 후였다. 엄마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실을 빠져나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엄마가 야속했다. 나도 숨 막혀 미치겠는데...     


엄마가 나간 지 20분도 안 됐을 때쯤 아버지가 설사를 해버렸다. 당황스러웠다.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엄마 올 때까지 놔뒀다가 욕창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엄마 없이 혼자서 갈아보기로 했다. 기저귀 하나 갈겠다고 엄마를 계속 병원에 붙잡아 둘 순 없었다.


아버지를 모로 뉘인 후 머리로 몸을 받쳤다. 의식이 없어서인지 몸의 무게가 상당했다. 몸 밑에 깔린 기저귀를 빼내려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몸이 자꾸 머리를 눌렀다. 까딱하다가는 똥기저귀에 얼굴을 박을 것만 같았다. 급히 엄마를 찾아 나섰다. 병원에서 바람을 쐴 만한 곳은 1층 뒤뜰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엄마는 같은 층의 다른 병실에 있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알게 된 당진아저씨의 병실이었다. 아줌마가 아저씨의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엄마는 모로 뉘인 아저씨가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아, 이게 뭔가...'

기가 막혔다. 꼭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어쩌다 상황이 그리 됐겠지만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와 병실로 돌아왔다. 같이 기저귀를 가는데 분노가 솟구쳐 참을 수가 없었다. "딸년은 혼자 기저귀 갈아보겠다고 낑낑대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다른 환자 기저귀를 갈고 있어!" 내 말에 엄마가 억울해했다. "니가 나가도 된다고 했잖아!"

맞다. 내가 그러라 했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했어도 엄마라면 난 괜찮으니 너나 쉬다 오라고 말할 순 없었을까? 아니면 딸 혼자 고생할지도 모르니 괜찮다고 안 나가도 된다고 말할 순 없었을까?


엄마는 항상 내 옆에 없었다. 내가 열네 살 때도, 내가 서른네 살 때도.

상처받은 나의 내면 아이는 아직도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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