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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Oct 20. 2022

엄마라서 더 아프다

#22.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2주 후면 팔순 생일을 맞는 엄마는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칠십 생일 때부터 그랬다. 나이 칠십 넘어서 생일날 미역국을 먹으면 풍을 맞는다나 뭐라나. 그뿐만이 아니다. 생일 달엔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다고 그 달이 되면 쌍화탕을 물처럼 마시고, 행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세라 조심, 또 조심한다.

   

 그런 엄마가 며칠 전 새벽에 침대에서 떨어졌다.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나는 엄마가 떨어지는 과정을 소리로 다 보았다. 엄마는 떨어지기 직전 잠에서 깼고 떨어지면서 다리가 선풍기에 걸려 오른쪽 상채만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방에 갔을 때는 엄마 스스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은 후였다. 우당탕, 소리가 요란하게 나서 크게 다쳤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 소리는 선풍기 목이 부러지면서 난 소리였다. 다행히 엄마는 괜찮아 보였다. 안심이 돼서인지 살짝 짜증이 났다. 애들도 아닌데 잠을 얼마나 험하게 자면 침대에서 떨어지나, 침대가 좁은 것도 아닌데.


 “왜 떨어진 건데?”


말해 놓고 후회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먼전데...


 “나도 몰라.”


 엄마가 자기도 모르겠다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얼굴 표정을 보니 몹시 심란해 보였다. 저승사자라도 만나고 온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데 없냐고 물어보자 괜찮다고 해서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자고 한 후 방을 나왔다.

다시 책을 보려고 했지만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란했다. 진짜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항상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나? 밤새 안녕이라고 이젠 한 방에서 같이 자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나를 다급히 불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리나케 가보니 엄마가 오른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팔에 마비가 올 것 같다고 바늘로 어깨를 찔러 달라고 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팔에 마비가 오는데 어깨를  왜 찌르나? 체한 것도 아닌데... 맨 날 TV 건강 프로 보면서 뭔가를 적더니 이상한 민간요법이라도 들었나 싶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았다.


 바늘을 물로 대충 헹군 후 엄마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금방 빨간 핏방울이 솟아올랐다. 엄마의 굳었던 얼굴이 살짝 펴졌다. ‘이젠 살았다.’라는 표정이었다. 가끔 나랑 다툴 때 입버릇처럼 ‘내가 빨리 죽어야지,’하더니 진심이 아니었다. 믿지도 않았지만...


40여 년 전, 점심에 짙은 화장을 하고 나갔던 엄마가 밤늦은 시간에 이마에 커다란 거즈를 붙이고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육교 계단을 내려오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에 가서 열 바늘 넘게 꿰맸다는 것이다.

그런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엄마는 가족이 아닌 친구에게 연락해 병원에 갔다. 가족이 있어도 의지가 안됐던 것이다. 엄마는 아픈 것보다 죽지 못해 억울한 것 같았다.

집안의 실질적 가장으로서 ‘짐’스러운 남편과 자식새끼들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다. 그다음 날도 아픈 몸으로 일을 하러 갔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단 생각에 밤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가 죽으면 학교를 그만두고 신문배달을 하거나 공장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나마 엄마로 인해 보호받았던 삶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거였다.  


침대에서 떨어진 다음 날  엄마는 여기저기 전화해 간밤에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다며  깔깔깔 웃어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그런 사고를 당해도 바로 죽으면 되는데 어디 하나 부러져 자리보전하고 누웠으면 어쩔뻔했냐며  하마터면 자식새끼들 고생시킬 뻔했다고 했다. 자신의 죽음보다 자식새끼들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과거엔 자식새끼들이 ‘짐’이었는데 지금은 당신 스스로를 ‘짐’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 참 안됐다.

젊어서는 자식새끼 힘들어 할까 봐 아프다 말 못 하고, 늙어서는 자식새끼 힘들게 할까 봐 아프다 말 못 하고...

그래서 더 아프다.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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