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구순의 친척 할머니는 부자다. 건물이 여럿 챈데 다 자식들 나눠주고 지금은 하나 남은 본인 명의의 건물 2층에서 혼자 사신다. 식사는 그 건물 주인층에 사는 큰딸이 해다 주는데 할머니가 직접 챙겨 드신다. 생활비는 할머니 집 근처에서 내연녀와 사는 큰아들이 월 오백씩 주는데 정작 쓸데가 없으시단다. 그래서인지 가끔 엄마가 놀러 가면 차비하라고 오 만원씩 주신다. 나도 가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 큰딸이 할머니에게 요양원에 가라고 했단다. 할머니는 그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셨단다.
“내가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엄마 혼자 집에 있다가 쓰러졌는데 아무도 모르면 어떡해. 요양원에 가면 친구도 많고, 같이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좋잖아!”
남일 같지 않아서였을까, 엄마는 내 앞에서 큰딸 욕을 막 해댔다.
“나쁜 년, 한 지붕 살면서도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보이는 년이 엄마 생각하는 척은. 뻔하지 뭐, 지 엄마 요양원 보내 놓고 그 집 월세 받으려는 거.”
오지랖 넓은 엄마는 큰아들까지 찾아가 잔소리를 했다.
“너 왜 엄마 요양원 보내려고 하니? 너희 엄마 거기 가면 병 나!”
“누가 그래, 엄마 요양원 보낸다고? 엄마 요양원 안 보내. 엄마가 거길 왜 가!”
큰아들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펄쩍 뛰었단다. 참내, 돈으로 효도하는 자식은 안 보낸다 하고 지극히 소극적이지만 몸으로 효도하는 자식은 보낸다 하고. 무슨 핑퐁 게임도 아니고. 다들 모시긴 싫어도 불효자 소리는 듣기 싫은 모양이다.
지난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 자격증이 있으면 치매에 걸렸거나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집에서 간병할 때 가족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다. 수강생 대부분이 그런 이유로 자격증을 따러 왔다. 그런데 딱 한 분만 자기는 부모님이 아프면 바로 요양원에 보낼 거라고 했다. 내가 가시려고 할까요, 했더니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이 어딨냐며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총대 메고 앞장서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노인네 간병하다 가족들 다 죽는다면서 말이다.
사실 나도 자신은 없다. 지금이야 엄마가 아프면 내가 돌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막상 닥치면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15년 전, 아버지 간병할 때도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을 정도로 엄청 힘들었다. 그나마 그 고통이 2년여 만에 끝나서 다행이었지만. 그런데 그 일을 다시 하게 된다? 글쎄다... 그래도 그때는 팔팔한 30대였다. 이젠 나도 늙었다. 걸레 짜다 손가락이 꺾여도, 넘어져 무릎에 멍이 들어도 퇴행성이란다. 그냥 관절염이 아닌 퇴행성 관절염!
지금의 4,50대는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는 최초의 세대라고 한다. 부모를 봉양하면서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자식에겐 짐이 되선 안 된다는 절박함을 갖고 살아가는 일명 ‘끼인 세대’라는 것이다. 나야 자식이 없어 부담감은 덜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나야말로 내 발로 요양원에 걸어 들어가야 할 판이다.
며칠 전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얘, 나 너희 집에 며칠 가 있으면 안 되니?”
“??...”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식겁했는지, 고령화 시대 참으로 웃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