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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Oct 07. 2021

엄마 손

#18,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몰라봤다. 울 엄마가 할머니인 줄...     

조카가 “할머니”하고 부를 땐 단순한 호칭에 불과하다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완전 할머니였다. 

입가의 짜글짜글한 주름이, 검버섯이 잔뜩 핀 손등이 영락없는 노인네였다.            


울 엄만 얼굴보다 손이 먼저 늙었다. 핏줄과 힘줄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인생의 굴곡이 그대로 보인다. 

인형에 눈알 달고 모피코트에 단추 다느라 열 손가락은 갈퀴처럼 휘어졌다. 엄만 늘 그런 손을 부끄러워했다.     

‘난 손이 안 예뻐.’     

엄만 못 생겼다 안 하고 안 예쁘다 했다. 그리 말하면 덜 속상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안 예쁜 손을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게 하려고 일 년 열두 달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했다. 칠이 벗겨질세라 지우고 칠하고 지우고 또 칠고... 손톱도 숨을 쉬어야 하는데 엄마 손톱은 늘 질식 상태였다.     


울 엄마는 배우 김혜자를 닮았다. 아니 김혜자가 울 엄마를 닮았다. 울 엄마가 김혜자보다 춤도 더 잘 추고 노래도  훨씬 더  잘한다. 엄마 꿈도 배우였다는데 배우가 됐더라면 김혜자의 ‘국민 엄마’ 타이틀은 울 엄마 게 됐을 거다. 하지만 ‘국민 엄마'는 오간 데 없고 '내 엄마‘로 사느라 아직까지도 개고생 중이시다. ' 내 엄마'로 살지 않았다면 엄마 손은 예쁜 손이 됐을지도 모른다.    


참, 그렇다. 이제라도 엄마 꿈을 이루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도 없고...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많다. 그걸 팔자의 영역이라 해야 하나?

 

엄마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한 배앓이를 할 때도 내 배를 만져준 건 엄마 손이 아니라 소화제 '훼스탈'이었다. 가난했기에, 엄마는 항상 부재중이었고 그런 엄마에게 배 만져 달라고 말하는 게 죄스러웠다, 그래서 원망스럽기도 했다.


철딱서니 없는 소리지만, 난 지금도 힘들 때면 엄마가 내 손 좀 잡아줬으면 좋겠다. 조카에겐 할머니지만 내겐 영원한 엄마니까...

   

맘은 그렇지만 그래도 엄마 혼자 산에 갈 때는 행여 미끄러지진 않을까,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가끔 성당 주보 부고란에 엄마보다 나이가 적은 분의 이름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내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기는 아직은 싫다.


더 늦기 전에 엄마 손잡고 나들이라도 가야겠다. 물론 어색하고 낯간지럽겠지만 아파서 몸 져 누운 엄마 손을 잡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손도 그가 쓰러지고 난 후에 잡아드렸다. 엄마의 거친 손에 비해 그의 손은 평생을 반백수로 지낸 탓에 섬섬옥수(纖纖玉手) 그 자체였다.


올 겨울엔 내가 엄마의  손장갑이 되어드려야겠다...





  

      엄마 손     



울 엄마 손은 고생 손

눈 없는 인형에 눈 알 달아 눈뜨게 하고

벌어진 코트에 단추 달아 여며주고

칭얼대는 새끼 잠재우던 고달픈 손

 

울 엄마 손은  조막손

핏줄과 힘줄이 얽히고설켜

눈물조차 닦을 수 없던 구슬픈 손   

  

울 엄마 손은  망치손

속 썩이는 애새끼 등짝 후려칠까, 말까 망설이다

종내엔 가슴 치고 마는 애달픈 


울 엄마 손은 까막 손

외롭고 속상한 맘 알아주는 이 없어

손금마저 시커멓게 타들어 간 한 맺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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