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날
잠시나마 답답함을 잊었던 날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폭설이 내렸다. 일기예보를 봤던 터라 어느 정도 눈이 올 거라는 것은 예상했으나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올 줄이야.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눈이 안 왔는데, 고작 한 시간 사이에 눈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렸다.
온통 하얗다.눈 때문에 미끌거리는 길을 조심스레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온몸이 눈으로 뒤덮였다. 집에 빨리 가서 몸을 녹일 생각을 하며 집 근처 놀이터를 지나는데,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나와있는 듯 시끌벅적했다.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 아빠가 끌어주는 썰매를 타는 아이, 눈싸움을 하는 아이. 모두가 신나서 뒹굴며 놀고 있었다. 눈에서 굴러다니면서 깔깔대는 아이들을 보니 슬프기도 하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학교도 못 가는 요즘 아이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렇게 재밌게 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과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내릴 때 아무 걱정 없이 눈싸움하고 놀았던 때가 언제가 마지막이지? 눈 사람 만든지도 꽤 된 것 같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런 순수했던 때를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눈 오는 기분 좋은 밤신나게 노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는 나와 아내도 기분이 좋아졌다. 추워서 덜덜 떨면서 집에 가는 길이었지만 이 기분 좋음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이미 옷과 신발은 젖었고, 눈으로 뒤덮여 있을 내 차 걱정은 됐지만 기분 좋은 밤이었다.
언제 치우지?푹 자고 일어나 보니 역시나 내 차는 눈으로 덮여있었다. 어제 오전에 세차는 왜 했는지. 급하게 빗자루를 가지고 차를 덮은 눈을 치워냈다. 눈 치우기에 열중한 사이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분이 나처럼 차에 뒤덮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군대에서 제설하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얼마나 웃기던지 혼자 피식하고 웃었다.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돌다 보니 많은 눈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 밖에 못 나가는 한을 모두 눈사람 만드는 거에 푼 건지, 눈사람이라기보다 아트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았다. 가오나시부터 토토로까지.. 혼을 담은 작품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까르르 대며 눈사람과 사진을 찍었고 그 모습에 또 한 번 피식했다.
오전부터 차에 덮인 눈과 사투를 하느라 힘을 쫙 뺐지만, 오랜만에 온 폭설 덕분에 잠시나마 코로나를 잊었던 것 같다. 어제 놀이터에서 뒹굴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오늘 곳곳에 만들어져 있던 귀여운 눈사람. 별거 아닌 것들에 기분이 좋고 감사하다. 다음 눈이 오는 날엔 아내와 같이 마음껏 걱정 없이 뒹굴러 보려 한다. 포대 자루 하나 구해놔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