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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택 Nov 18. 2019

015 우리 북한도 IOC 가입을 원합니다

북한올림픽위원회의 IOC 인준 요청과 KOC의 반대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로부터 인준받은 대한올림픽위원회 KOC는 1948년 런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참가합니다. 남북의 개별 정부 수립과 연이은 한국전쟁은 올림픽 참가 권한마저 둘로 쪼갭니다. 남한은 여전히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었던 반면, 북은 그렇지 못했죠.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졌던 북쪽 선수들도 올림픽 무대에서 훨훨 날고 싶었지만 참가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북쪽 선수가 참가하려면 한반도에서 이미 인준된 KOC를 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죠. 북한은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고 그 유일한 방도는 IOC로부터 독립적인 국가올림픽위원회 NOC인준을 받는 것이었죠. 



북한 선수들은 남한과 한 팀으로만 올림픽에 출전 가능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북한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하고자 했습니다. 북한은 그해 3월 15일 IOC에 인준을 요청합니다. 신청서는 6월 14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의에서 안건으로 다루어집니다. 스톡홀름 회의록 20번 안건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15-1). 


‘북한에서 새로 조직된 NOC의 신청서가 언급되고, 한 국가에서 두 NOC 인준이 불가함을 알리도록 사무총장에 일임됨. 사무총장은 두 독일의 경우와 같이 두 한국도 유사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알리게 요청되었음.’


이 집행위원회의 후에 IOC 사무총장인 오토 마이어(Otto Mayer)는 북한올림픽위원회에게 6월 28일 다음과 같이 알립니다(15-2). 


‘6월 14일에 스톡홀름에서 집행위가 있었음. 3월 15일 귀 단체의 요청이 다루어졌음. 우리 규정은 한 국가에서 두 단체를 허용하지 않음. 남한에 인준된 단체가 있음으로 귀 단체의 요구를 고려하기 어려움. 독일은 두 단체이지만 한 팀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여 출전하니 사례로 삼기 바람. 한국도 유사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임. 이 경우 제안을 다시 고려하겠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한반도는 하나의 국가이고, 비록 나뉘었으나 두 국가가 아님으로, 그리고 이미 남한에 KOC가 인준되었으니, 북한에 따로 올림픽 단체를 인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독일의 경우는 동서독으로 나뉘었지만, 한 팀을 구성해서 독일을 대표하여 출전하니 이를 참고하여 남북도 하나의 팀을 구성해서 나올 수 있다면, 그 경우 북한에게 필요한 단체를 인준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한반도에서는 한 조직과 팀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북한은 남한과 다릅니다!


IOC 집행위원회 결과를 받은 북한 측은 당연히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브런디지 IOC 회장과 IOC 사무국에 편지합니다. 7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올림픽위원회 (Olympic Committee of DPRK) 의장 궁선홍의 명의로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15-3).


‘모든 북한체육회 체육인이 올림픽에 참여하기 희망하나, 올림픽 참여 기회가 없음. 북한체육회 3-4명의 위원이 16회 올림픽에 참관 관람할 수 있도록 허가 요청함. 우리가 올림픽 경기의 목적과 결과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람.’


이 편지에 대해 브런디지는 간략하고 명확하게 답신합니다(15-4). 답신은 스톡홀름 집행위원회의 결과를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멜버른 올림픽 참관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북한과 한 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어떠세요?


IOC 사무총장 오토 마이어는 9월 1일 같은 날, 북한올림픽위원회(15-5)와 남한의 IOC 위원 이기붕에게 편지합니다(15-6). 마이어의 두 편지의 내용은 첫인사만 다를 뿐 거의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에게는 7월 21일 자 편지를 잘 받았지만, 북한이 설명하려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남한에게는 북한으로부터 IOC 인준 신청서를 받은 상태이니 남한의 입장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올림픽헌장에 근거하여, 독일과 같은 방식을 택하고, 단순히 올림픽 규정과 정신만을 지킨다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이나 상황으로 보면 정말로 마이어는 이 일이 쉽게 풀릴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북한올림픽위원회 궁선홍 의장은 마이어에게 10월 15일 장문의 편지를 합니다(15-7). 이 편지에서 궁선홍은 북한과 남한의 단체가 서로 소통하고 있지 못하며, 독일과 사정이 달라 독일과 같은 단일팀 구성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한의 KOC가 한반도 전체를 관할하면서도 북한 선수가 참가할 수 없는 것은 부당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북한의 독립적인 올림픽위원회 인준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궁선홍의 편지에 대해 마이어는 11월 3일 답신하여, 멜버른 총회에서 북한의 신청이 안건에 오를 것이라 말합니다(15-8). 


마이어의 편지를 받은 이기붕 또한 장문의 편지를 10월 8일에 보냅니다(15-9). 이기붕도 한국과 독일이 서로 다른 상황이며, 전쟁과 더불어 양측의 교류가 차단되고, 올림픽헌장을 준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단일팀의 구성이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역사적으로 한 국가이기에 KOC가 남북을 모두 대표하는 유일한 올림픽위원회로 있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마이어에게 편지를 보낸 같은 날 이기붕은 브런디지에게도 편지합니다(15-10). 이기붕은 비공식적인 편지임을 전제하면서 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설명하고 한반도에서는 하나의 위원회만이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건이 다시 불거지면 남한에 대해 우선적으로 생각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한국에서 올림픽위원회는 KOC가 유일해야 합니다!


멜버른 올림픽은 1956년 11월에 열렸습니다. 이기붕은 국내 일정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상백이 대표단장으로 선수단과 함께 참가합니다. 이미 북한의 IOC 인준 신청서가 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상태이고, 사전에 북한과 남한의 편지에서 보였듯이 서로의 주장이 존재했습니다. 이상백과 KOC는 이를 저지해야 했습니다. 


멜버른에 도착한 이상백은 선수촌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브런디지에게 편지합니다(15-11, 사진 15-1). 


‘이 짧은 메모는 16일 당신이 도착하기 전에 당신이 머물 호텔로 보냄. 이기붕은 IOC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여 우리가 급히 총회 전에 개인적으로 만나야 할 것 같음. 편할 때 시간을 내주기 바람. 월터정과 나는 스콧 호텔(Scotts Hotel) 202호에 머물고 있음. 여기 선수촌에서 이미 몇몇 미국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을 만났음.’


기록은 없지만 이상백과 월터정은 총회 전에 브런디지를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사정과 북한 가입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브런디지의 입장을 재차 확인했을 것입니다. 브런디지가 도착했을 16일, 이상백은 IOC 위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음과 같이 작성합니다(15-12). 한국의 입장을 다시 확인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사진 15-2). 


‘한국 위원장이며 IOC 위원인 이기붕이 IOC 회의에 참석하지 못함을 이해 바람. 이 글은 한국팀 단장인 이상백이 작성함. 이기붕을 대신하여, 북한에서 IOC 가입 지원서를 제출한 것에 대한 남한의 편지에 주목해주기 바람. 이미 편지에서 이기붕이 언급했듯이, 지역적 이유로 이 문제는 한 동안 다루어지지 말아야 함. 한국전쟁으로 남북의 즉각적인 협력이 어려움. 우리는 독일과 다름. 이전부터 올림픽에 참가하던 KOC였으며, 현 상황으로 인해 북한에 유사한 조직이 허용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음. 앞으로 몇 년 내에 북과 남은 통일 할 것이라 굳게 믿음. 그 경우, 한 조직이 사라져야 한다면 우습게 될 것임. 북한의 인준 신청은 중단되어야 함. 세계가 정치적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멜버른 올림픽의 색이 바래지 않기 바람.’



우리는 단일팀을 만들 수 없습니다!


11월 17일 열린 IOC 집행위원회의 회의록에는 북한의 인준 신청과 관련한 기록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15-13). 


‘회장이 북한 위원회의 인준 신청 건을 상정함. 독일의 상황이 설명되고, 독일에서와 같이 KOC와 협조하길 제안됨. KOC에게도 제안됨. 두 위원회 모두 답하였으나, 현 상황에서 불가하다 함.’



[사진 15-1]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메모 (브런디지 컬렉션)



11월 19일부터 3일간 열린 총회 기록은 다음과 같이 북한의 인준 안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5-14). 


‘북한 신청 건이 회장에 의해 상정되고, 독일 사례가 설명되고, 한국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해법이 제안됨. 시페르코 씨(Mr. Siperco)는 북한의 상황을 안다며 그는 남북 간의 협조가 불가하다고 의견을 냄. 회장은 같은 견해를 표한 남한에 대해 말함. 위원회는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남북이 협조하길 재차 요청하기로 결정함.’



[사진 15-2]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상백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낸 편지 (브런디지 컬렉션)



북한올림픽위원회의 IOC 인준은 여러 국면에서 쉽지 않았습니다. 상황도 그러하거니와 한반도에서의 절대적 지위를 가진 남한을 설득하거나 협조를 구할 수 없었으며, 더욱이 IOC 회장의 KOC에 대한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56년 멜버른 총회에서와 같이 브런디지 회장과의 사전 조율과 활동은 KOC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를 시작으로 북한의 IOC 가입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요하게 됩니다. 지루한 게임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인용자료


(15-1) 스톡홀름 IOC 집행위원회의 회의록 (1956. 6. 14.) Comité International Olympique-Commission exécutive 1921-1984, 02-Procès-verbal-eng.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2) 오토 마이어가 북한올림픽위원회에게 보낸 편지 (1956. 6. 28.)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3) 궁선홍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56. 7. 16.)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4) 브런디지가 궁선홍에 보낸 편지. (1956. 8. 7.)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5) 오토 마이어가 북한올림픽위원회에 보낸 편지 (1956. 9. 1.)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6) 오토 마이어가 이기붕에게 보낸 편지 (1956. 9. 1.) Brundage Collection, Lee Ki Poong 1955-60,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7) 궁선홍이 오토 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1956. 10. 15.) 브런디지 컬렉션,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8) 오토 마이어가 궁선홍에 보낸 편지 (1956. 11. 3.)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9) 이기붕이 오토 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1956. 10. 8.) Brundage Collection, Lee Ki Poong 1955-60,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10) 이기붕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56. 10. 8.) Brundage Collection, Lee Ki Poong 1955-60,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11)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56. 11. 14.)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12) 이상백이 IOC 위원들에게 보낸 편지 (1956. 11. 16.)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5-13) 멜버른 IOC 집행위원회의 회의록 (1956. 11. 17.) Comité International Olympique-Commission exécutive 1921-1984, 02-Procès-verbal-eng.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Tho President reported that an NOC from North Korea had applied for recognition It was informed about the situation in Germany and the suggestion was made that it should work with the Korean Olympic Committee as the Germans had done. The Korean Olympic Committee was also informed. Both Committees answered, however, that this was impossible under present conditions.’


(15-14) 멜버른 IOC 총회 회의록 (1956. 11. 19-21.) Comité International Olympique-Session 1894-2013, 02-Procès-verbal-eng.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The President reported that in answer to the application from North Korea the Chancellor had written, calling attention to the arrangements made in Germany and suggested that similar arrangements be made in Korea. Mr. Siperco stated that he knew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and that in his opinion it would be impossible to make such an arrangement. The President reported that the South Koreans, whom he had expressed the same view. The Committee decided to appeal again to the Koreans to cooperate as the Germans did.’ 


(사진 15-1)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메모 (브런디지 컬렉션)


(사진 15-2)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상백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낸 편지 (브런디지 컬렉션)


[사진설명]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엠블램 (출처: IO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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