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깎고도 모자라단 말입니까? [ep.01]
지난 5월 2일 강원도 정선군에서는 가리왕산 케이블카 개장 기념식을 진행했다.
행사는 ‘올림픽 국가정원 유치’ 기원을 겸했다.
이번 기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0년 전으로 이야기를 돌려야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성공한 후 스키경기를 진행할 장소가 물색되었다.
기존의 스키장 시설들은 다양한 이유로 선택되지 못했다. 사실, 하지 않았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최종적으로 가리왕산을 점찍었다.
문제는 가리왕산이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이며, 조선시대부터 보존되던 산이었다.
단 5일간의 대회를 위해 500년 산림을 깎아 버린다고?
환경부와 산림청은 동의하고 강원도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원상 복구한다는 약속을 받고서였다.
시민단체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한번 깎은 산은 복구가 불가하며, 이후 다른 용도로 전용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체지가 부재한 것도 아니었으며, 잘 보존된 산을 깎는 것은 허용될 사안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조직위는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와 약속이라 주장했다. 물론 거짓이었다.
2014년 12월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올림픽아젠다2020’을 발표한다.
'올림픽아젠다2020'은 고전적으로 한 도시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던 것을
이제는 주최 도시의 근접지에도 분산하여 개최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시민단체들은 다시 제안했다.
IOC도 분산 개최를 허용하니, 제발 가리왕산은 놔두라고.
그러나 조직위와 강원도는 결정을 재고하지 않았다.
당시 강원도 재정자립도는 전국 꼴찌에서 두 번째였고
강원도의 재정은 올림픽 때문에 더 악화 일로에 있었다.
환경보호는 물론 도 재정 부담을 줄이기에도 분산 개최가 옳았지만, 이들은 무시했다.
2015년 3월 12일,
환경단체와 체육단체 등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분산 개최를 다시 주장했다.
기자회견은 가리왕산에 스키 슬로프 건설을 중단하라는 것도 포함되었다.
바로 다음날인 3월 13일,
박근혜 정부는 최종적으로 분산 개최는 없음을 확인했다.
이로써 가리왕산은 깎였다.
올림픽이 끝난 후,
가리왕산은 복원되지 못했다.
원래의 약속대로 원상 복구하라는 산림청의 요구에,
강원도는 지역주민과 지역경제를 빌미로 삼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 사이 5년간, 비만 오면 가리왕산의 스키장 경사면은 깎여 내렸다.
환경단체는 빠르고 완전한 복원을 촉구했다.
교착상태였던 복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설악산 케이블카 공약과
(지난 2월 환경부는 조건부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동의한다),
올림픽 후 가리왕산에서 철거하지 않은 곤돌라로 전환점을 맞는다.
지난 5월 2일 케이블카 개장 행사에서 강원 정선군 최승준 군수가
“가리왕산 케이블카가 철거 위기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되기까지
희생과 헌신을 하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한 것을 보면,
철거하지 않은 곤돌라가 이번 결정의 첨병이었다.
지난 약 10년간 가리왕산에서 벌어진 일들은 우리 사회의 몰상식을 대변한다.
흔히 사람들은 국립공원, 또는 그에 준하는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보호의 대상이자 활용의 대상으로 잘 못 이해한다.
그렇지 않다. 보호 지정은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
보호가 완전히 확보된 상황에서 활용의 여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보호를 이기는 활용은 존재하지 못한다.
미국의 국립공원시스템을 보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to ‘assist in conserving the nation's natural and cultural heritage
for the benefit of current and future generations’
‘현재와 미래 세대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자연 및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하기 위해’
그래서, 혹시 누군가 자연환경을 우리의 이익을 위해 잘 가꾸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아주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케이블카는 허용되지 못해야 한다.
가리왕산 보호의 책임은 환경부였다.
환경부는 올림픽이라는 명분 앞에서 개발을 허용하고 말았다.
물론 원상 복구라는 약속이었지만,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했을까?
당시만 해도 환경부는 강원도와 올림픽조직위원회으로부터 약조를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산은 그렇게 잘려 나갔다.
올림픽이 끝나고, 조직위는 사라졌다. 사실 도망간 것이다.
올림픽도 끝났고, 조직도 해체되었는데 뭘 더 책임질 것인가?
그렇다고 대한체육회가 책임질 것인가?
아니면 IOC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다면 선수가? 아니면 체육인이?
벗겨진 산은 이렇게 홀로 남았다.
고민의 시간은 다른 주체로 넘어간다.
체육인과 강원도는 올림픽 유산을 들먹거리게 된다.
애초 깎이면 안 되는 산이었거늘,
이것도 기억이고 유산이라고 남기고,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지역경제도 가세한다.
정치인도 피하지 못한다.
개발업자와 자본 또한 냄새를 맡는다.
어떻게든 산이 복구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력만이 관심을 둔다.
그리고 슬로프를 오르던 곤돌라를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정선군수가 곤돌라를 지켜낸 사람들에게 감사한 이유다.
이어 윤석열 후보자 시절 설악산 케이블카 공약 이행과 함께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힘을 받는다.
이로써 복구되지 못한 가리왕산의 운명을 가를 주체는 온전히 강원도와 지역주민으로 옮겨갔고,
담론은 지역경제로 넘어갔다.
원상 복구라는 말은 사라지고, 케이블카와 더불어,
이제 한 걸음 더 나가 ‘국가정원’이라는 또 다른 개발 호재를 요청한다.
가리왕산은 국가 자연 유산에서,
올림픽 유치와 유산으로,
다시 지역경제의 대상으로 바뀐다.
관련자와 이해자가 바뀌면서 운명도 바뀌는 경우다.
이러한 표류는 가리왕산의 정체성을 변질시킨다.
발생해선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케이블카는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던, 올림픽이던, 그 무엇도 자연과 환경보호를 이기면 안 된다.
사회가 공연히 합의한 자연 보존은 그렇게 중히 여겨져야 한다.
가리왕산은, 10년 전, 처음으로 개발이 허용된 것으로부터 지금이 예견되었을 수도 있다.
가리왕산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한번 깎인 산은, 자체로도 복구가 불가능에 가깝지만,
한번 틈을 보이는 순간, 다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리왕산을 둘러싼 연쇄적인 사건들로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지고,
과정은 복잡하게 얽혀 결국 권력과 자본이 승기를 잡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가리왕산이 우리에게 교훈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가리왕산의 케이블카는 환경부의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올림픽 역사에도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언젠가는 가리왕산을 깎은 우리 세대 모두가 지탄을 받고 말 것이다.
[링크]
가리왕산 케이블카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050314223617075
가리왕산 원상복구 촉구 :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572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