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건강 ep 23. 비워야 하나 남겨야 하나?
미국 유학 시절 많은 것들이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그중 하나가 영양학 수업 때였는데, 음식은 적당히 먹어야 하고, 혹시 많다 싶으면 과식을 피할 이유로 음식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말 같기도 했지만, 음식 남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듯해서 저는 놀랐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40년 전 미국에서의 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버릇이었던 듯
미국은 잘 사는 나라라 음식 남기는 것이 그리 흉이 안 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어릴 때부터 음식을 남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배웠고 그리해 왔기에, 저는 음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밥상을 비우는 버릇은 남아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는 것이 좋은 것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부득이 그럴 뿐이죠. 외식이니까 남기지, 집에서라면 아까워서라도, 음식물쓰레기 만들기 싫어서라도, 되도록 음식을 다 먹습니다. 대부분 그러실 것이라 믿고요.
몰라서가 아니라 알기에 남기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음식을 남기지 말라는, 너무도 온당한 말을 지키기 힘든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40년 전 제가 경험한 상황이 이제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죠. 이제 남겨야 하나, 다 먹어야 하나를 고민하는 지점에서 우리 대부분은 남기는 결정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음식을 남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먼저 밥상에 올려진 음식이 처음부터 많기 때문입니다. 끼니나 음식 말고 과자 봉지의 크기만 봐도 예전과 지금은 비교가 안 됩니다. 둘째로는 건강이나 선호도에 따라 특정한 유형의 음식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뭐 예를 들어 너무 짜거나 달거나 기름진 음식이라면 우리는 최소한의 분량만 섭취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정체 모를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의식적 거부감이 음식을 남기게 하기도 합니다.
다 먹어야 하나? 남겨야 하나?
밥그릇을 싹싹 비운다는 것은 여전히 가치 있는 행위일 것입니다. 음식을 아끼고 음식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니까요. 반대로 현대 음식과 주변의 식이 환경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도 합리적이고 정당하게 보입니다. 너무 많은 양의 고열량 가공 음식을 싸게 사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음식을 남기는 것은 건강 관리를 위한 정당 행위일 수 있으니까요.
식문화와 환경의 충돌 지점에서
음식과 식이 환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라면 건강한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어도 좋을, 그런 것이겠죠. 뭐 어디 쉽겠습니까.
그럼에도 지금의 딜레마, 그러니까 남기는 것에 대한 죄송함과 다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는 사회를 지속하고, 이 환경과 사회를 어린 친구들에게 넘겨서는 아니 되리라는 것에 저는 확고한 생각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충돌 지점에서 한 가지는 명확해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에 동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건강한 음식이라면, 좀 과식한들 우리의 건강에 그리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건강한 음식을 선택해서 먹어야 한다는 말과 교육과 홍보와 정책보다는, 그리고 그 과업을 개인에게 부담시키기보다는, 건강한 음식이 싸게 공급되고 통용되는 사회가 선결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