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다

소개팅의 다양한 군상

by 최다은

이 주 전 올해로 두 번째 소개팅을 마쳤다. 결과는 역시나 제로. 소개팅이라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어렸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몇 번 연락을 주고받은 기억이 다인 나에게 소개팅이라는 건 막무가내로 우는 갓난아기를 대해야 하는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라는 어색함 가득한 첫인사부터 각자의 이름 뒤에 붙이는 딱딱한 존칭,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존댓말까지. 물론 친해지고 나면 그런 시절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지만 나를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열정적인 사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인지. 외국인들에게 소개팅을 한다고 하면 아연실색하던 그 반응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가는 듯했다.


얼마만큼 나를 보여주고, 얼마만큼 나를 숨겨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의 연속. 내숭이나 가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인 지라 누군가는 나를 평범함에서 조금 비껴간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럴듯하게 속일 바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맞지 않으면 아쉽지만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나는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연인이 되기 전엔 상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상 나 또한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서로를 겉핥기 식으로 알아가다 끝이 나기도 했다.




나이를 먹고 나서 느낀 건 나도 제법 머리가 컸는지 재고 따지는 게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의 외모나 경제력을 따진다기보다는 취향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지, 대화는 잘 통하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남녀를 떠나서 사람이라는 건 한두 번 만나선 제대로 알 수 없기에 노력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해보자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혹 상대방의 단점이 거슬리더라도 그 사람의 장점에 좀 더 초점을 맞춰 눈여겨보는 타입인 것이다. 그런 내게 예외인 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눈감아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처음부터 무례하게 나오는 사람일 것이다.


반나절이 넘도록 연락이 되지 않던 상태에서 소개팅 당일, 숙취에 절어 나타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해 주고 용서해 줄 만큼의 관용과 끈기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그 상황에서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을까?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화를 냈어야 했을까? 그게 아니면 다른 날에 보자며 약속을 미뤘어야 했을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던 건 고작 피곤에 찌들어 보인 그를 집에 일찍 보낸 것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바보 같은 건 만나기 전 나눈 긴 통화와 연락에 기대 그게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닐 거란 희망을 품은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바랐던 건 대체 뭘까?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 그게 아니면 좀 더 만나보자는 간절한 제안? 그게 뭐가 됐든 말의 무게와 관계를 남들보다 더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관계에서든 항상 더 많은 상처를 받는 법이다. 괜찮은 사람이 이토록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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