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3년 11월 말, 같은 학교의 선배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총학생회에 속해 있던 나는 웬만한 학교 간부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내가 소개받기로 한 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평소 인사성이 밝은 그를 좋게 보던 나는 그 선배랑 친하다고 하는 다른 과의 친구에게 소개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나는 그와 어렵지 않게 연락이 닿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 미성년자 딱지도 채 떼지 못한 나이의 나에게 그 선배는 어른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영화 등에 대한 취향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계획도 제법 그럴듯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내가 그에게 빠진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그에게 매료되었고, 어느새 내 마음은 가볍게 알고 지내는 사이를 뛰어넘어 내가 감히 손도 못 댈 정도로 부풀어있었다.
한두 번 만난 사이에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면 뭔가 이상하다는 건 뭣도 모르는 나이에도 어렴풋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도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또,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때였으니 그에게 있어 나라는 사람은 그리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하고,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그때의 내가 가지고 있던 건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고작 그뿐이었다.
한 번의 만남 이후로 급격하게 줄어든 연락의 빈도수는 어떤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표면적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내가 가진 마음은 함부로 끝을 낼 수 없는 마음이었기에 그와의 채팅방을 얼마나 많이 들락날락했는지 모르겠다. 야속하게 안 없어지는 숫자 1. 미워 죽을 것 같은 숫자 1. 제발 한 번만이라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의 숫자 1.
그놈의 숫자 1은 어둑한 밤거리를 환히 비추는 노란 가로등 불빛처럼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대화방에서 눈에 거슬리도록 노란 불을 밝혔다. 지금이었으면 그가 내게 관심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나 혼자 척척 마음 정리를 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게 내가 원하던 끝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는지 바보같이 지루한 대화를 질질 끌기만 했다.
결국 더럽게 추운 크리스마스이브 날, 술을 진탕 마시고 쓴 나의 장문 카톡으로 그와 나의 관계는 다소 뜨뜻미지근하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의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한 번 좋아지면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고 끝나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선배도 관계를 정리하는 데 있어선 꽤 어른스럽지 못 한 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뭐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어떤 관계든 간에 마침표가 확실한 관계가 좋다. 어영부영 흐지부지한 마무리는 딱 질색이다. 그런 의미에서 며칠이고 메시지를 읽지 않는 안 읽씹보다는 차라리 메시지를 읽되 답장은 하지 않는 읽씹이 더 좋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숫자 1을 보며 마음 좀 졸여본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더 잘 알 것이다.
불현듯 ‘뭐해?’라는 문자를 보내고 답장이 없으면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던 문자 시절이 그립다.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 또 읽었으면 언제 읽었는지 알려주는 부가적인 기능들은 사랑에 유난히 약한 나 같은 사람들을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걸 알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