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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by 최다은

무언가 울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기분 나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지금 당장 전화를 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기댈 이 하나 없는 이 황량한 삶 속에서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일까.


오래전에 사귄 남자 친구는 내게 차갑다, 시크하다, 단호하다와 같은 표현들을 자주 쓰곤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안 좋은 일을 겪어도 크게 마음 쓰지 않고, 이별을 할 때엔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평소에 눈물을 흘리는 일 같은 건 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대했던 태도를 생각해보면 그가 내게 그런 말을 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에겐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그에게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믿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그가 나를 여자 친구라는 존재를 넘어 동경의 대상 그 자체로 느끼고 있다는 걸 적지 않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나의 모습이 아닌 감춰둔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언제든지 실망하고, 떠나갈 것만 같다는 느낌에 나는 언제나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연인이란 내가 그에게 대한 것과는 정반대로 나의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금기 가득 묻은 얼굴로도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 나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다독여주는 사람. 나의 약한 모습을 품에 안아 부드럽게 녹여주는 사람.


그렇기에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기쁠 때는 물론이고 슬프고 힘들 때 나에게 기댈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의 슬픔을 부둥켜안아 엉엉 목놓아 울기도 하며, 턱 끝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며, 우리가 앞으로 걸을 날들에 그 모든 것들을 밑거름으로 삼기로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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