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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Mar 29. 2022

죄책감

 시간이 지나도 몸에 깊게 패인 흉터처럼 잘 없어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 반복적으로 꾸는 끔찍한 악몽처럼 나를 미치게 하는 감정. 그건 바로 죄책감이다.


 ​상처를 받은 기억도 기억이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런 부수적인 기억들조차 모두 지우고 맘 편히 살아갈 수 있다지만, 나는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내가 명백하게 상처를 준 사람이 나오는 꿈을 주기적으로 꿈다.


 ​그 사람과 나는 꿈속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항상 행복한 상태다. 티끌만 한 얼룩조차 없는 새하얀 티셔츠처럼. 그 꿈엔 오로지 웃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만이 가득 차있다. 그게 날 더 지옥으로 몰아내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그래서 그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이미 한참의 시간이 흐른 현실로 복귀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 왜냐하면 꿈속의 나는 어렸고, 순수했고, 무엇보다 무지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못 견디겠는 건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른 그때의 나만을 평생 기억하고 살 거라는 거다. 나는 그때완 많이 달라졌고, 잘못도 뉘우쳤고, 또 많이 성숙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인연의 끈이 끊어진 이상 그걸 증명하거나 설명할 방법 따윈 없다. 그건 나를 퍽 슬프게 만든다. 그리고, 그때의 죄책감에서 더욱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다시 한번 그 사람이 나오는 꿈에 시달렸다. 너무 생생해서 그 꿈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언제쯤이면 지난날의 죄책감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그 경험으로 하여금 지금도,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죄책감을 느낄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이럴 땐 갈수록 노쇠해가는 기억에 뜻밖의 반가움을 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은 것, 감정을 남들보다 오래 간직하는 것은 이런 면에선 별로 좋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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