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은 Sep 15. 2022

포기하면 편해지는 것들

아침: 닭 가슴살 100g, 현미밥 반 공기, 야채 조금
점심: 키위 하나, 고구마 또는 옥수수, 포도주스 반 컵
저녁: 맥반석 계란 두 개, 하루견과, 저지방 우유


 ​모델 준비를 하는 동안 하루 1000kcal에 맞춰 꼬박꼬박 지켰던 식단이다. 178cm 64kg에서 62kg, 62kg에서 58kg, 58kg에서 내 인생 최저 몸무게인 56kg을 찍기까지는 약 3개월이란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원인 모를 두드러기, 생리 중단, 폭식증이 찾아온 것은 그러니 전혀 이상하지 않을 문제였다. 압구정 일대를 다니며 혹시 모델이냐며 물어오는 사람도 어쩌면 그리 별난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어찌 그렇게 해왔는지 아득한 지난날이라지만, 돌아보면 나 자신도 내가 대단하다. 무척 힘이 들었던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의/식/주에서 식이 빠진 생활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면 지탱하기 힘든 생활일 테니 말이다. 그토록 힘들게 얻어낸 몸무게인데. 현재 내 몸무게는 약 56kg를 웃돌고 있다. 그때만큼 철저하게 식단을 조절하는 것도 아니고,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닌데 8년 전의 몸무게가 다시금 나를 찾아온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살이 찌는 것보다는 빠지는 게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살이 왜 이리 빠졌냐며, 잘 먹고 다니라는 얘기를 듣는 것은 기본, 저혈압으로 체력이 금방 고갈 나는 나 자신을 보면 빠진 몸무게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와 함께 나는 왠지 모르게 허무해진 것도 있다. 지금은 내가 그전만큼 바라지도 않고,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쉬이 가질 수 있게 되다니.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한 표 차이로 반장 선거에 당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표 차이는 압도적인 승리에 멀다며 한 번 더 선거를 치른 적이 있다. 두 번째의 반장 선거에선 우습게도 내가 한 표 차이로 졌고, 이번 선거의 결과에선 깔끔하게 결과를 인정하기로 합의하였기에 나는 그대로 한 표 차이의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다. 솔직히 너무 억울했다. 담임선생님과 얘기를 하던 도중 북받치는 억울함에 눈물이 찔끔 나올 뻔도 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금방 흐르고, 2학기가 찾아왔다. 2학기의 반장 선거에선 거진 2/3의 표가 나를 향하였기에 1학기에 반추했을 땐 아주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와 별개로 3학년 2학기 때엔 의도치 않게 부반장으로 뽑혔던 적도 있다.


 ​무언가를 기필코 얻겠다는 욕망, 누군가를 강렬히 원하는 마음. 열정이 삶의 동력인 나에게 그런 순간들은 빈번히 찾아오곤 하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내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원할 때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들보다 더 큰 좌절을 느끼고, 더 큰 절망에 빠지곤 하였다. 이내 나의 한계에 다다를 무렵엔 결국 ‘포기’를 선택하기 이르렀다. 포기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때엔 변명하지 않았다. 나의 나약함과 소강된 열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포기라는 선택지를 선택하고 난 이후엔 내가 그토록 바랐던 것들을 그제야 얻게 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문제는 나라는 사람은 뭐든지 쉽게 포기하진 않지만, 포기를 하고 나면 흥미가 금방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생경해지는. 내 손을 떠나보내기로 한 것들을 어찌어찌 결국 얻게 된다고 한들 전과 같은 기쁨을 느낄까? 그때만 한 행복을 느낄까? 아마 별 감흥이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열렬히 짝사랑하던 상대의 안부 문자를 받아도 전혀 설레지 않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사람들은 말한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포기하면 생각보다 쉽게 얻어낼 수 있다. 내 감정과 욕심을 한 움큼 내려놓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식은 열정과 낮아진 기대감을 가지고 무언가를 얻어낸다 한들 나는 그게 과연 제대로 된 소유(所有)일지는 모르겠다. 나는 가능한 한 내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원하고 갈망할 때 얻어내고, 함께하자는 주의다. 내가 끝내 포기하고 나서야 얻어낸 거라면, 얻어냈다 한들 별로 즐겁지도 소중하지도 않을 뿐이니.

매거진의 이전글 스텝 바이 스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