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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Oct 21. 2022

누군가의 이해도 인정도 바라지 않아

 그날은 유독 추웠다. 기모 청바지를 입었는데도 나를 흔들어놓는 찬바람 때문에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겨우 겨우 뚫고 간 겨울 속에서 본 알바 면접은 다행히도 합격이었다. 홈플러스 안에 있는 고급 중식당이었다.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여유가 있으면 점심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에 같이 밥을 먹었는데 주방장이 솜씨가 좋아서 정말 맛있었다. 그때쯤 나는 원래 다니고 있던 대학교에 한 번 더 휴학을 하고, 5월쯤 유럽여행에 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사실 휴학 신청을 하긴 했지만 학교에 다시 돌아갈지는 미지수였다. 틈틈이 알바를 한 덕분에 300이 조금 안 되는 묵 돈이 있었고 거기서 좀 더 벌어 500만 원을 들고 한 달 동안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휴학을 한 번 더 하는 것도, 여자 혼자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에 다녀오는 것도 여간 못 마땅해했다. 내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대학교 학사지원과에 전화해서 최다은 엄만데, 혹시 휴학 신청을 철회할 수 있냐 물었고, 엄마 마음대로 복학 신청을 해버렸다. 나는 그때쯤 이미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표도 끊어놨고,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내를 이동하는 라이언 에어 비행기표, 에어비앤비도 다 결제를 해놓은 상태였다.


 ​엄마는 위약금이 얼마가 되든 엄마가 물어줄 테니 우선 다 취소하라고 했다. 사실상 권유가 아닌 명령이었다. 그때쯤의 나는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였기도 했고, 나만의 자아가 아직 무른 상태라 여행을 그대로 강행하는 것은 불효(不孝)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철이 들지 않은 아이가 부리는 치기라 여겼다. 그렇게 다닌 학교는 전혀 즐겁지 않았고, 학점은 엉망이었다. 어찌저찌 졸업을 하긴 했지만 특별한 감흥이 없는 것은 물론 나는 아직까지 그때 떠밀려 학교에 다닌 건 시간 낭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따금씩 그때 유럽 여행을 강행했으면, 자퇴를 하고 다른 학과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고 뒤돌아보게 되었다.


 ​웃긴 건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그런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한테 미안한 감정은커녕 남들보다 일찍 졸업하지 못 한 나를 나무라고 책망하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아무리 가족이라도 남에게 내 인생을 맡기면 안 되는구나’ 어떤 선택이든 그게 온전히 내가 내린 선택이면 스스로 후회를 하면 했지, 적어도 누군가의 탓을 할 순 없다. 그리고 남이 아닌 내가 내린 선택은 오히려 후회도 덜 남는 편이다. 하지만 남이 내린 선택에 나의 몫을 넘겨버리면 후회는 물론 남 탓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심지어는 “그러니까 그때 누가 내 말 들으래?”라는 말을 안 듣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겨야 할지 모른다.



 어린 나의 지난날들을 곱씹어보면 나는 언제나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고파했다. 그냥 내가 여자든, 딸이든, 장녀든,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하는 별난 아이일지라도 그저 당신들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일 말이다.


 ​여행을 포기한 것도 사실 그런 이유가 강했다. 엄마를 걱정시키면서까지 불편한 마음으로 한 달 동안 떨어져 있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나는 물이 마른 화초처럼 바싹 말라져 갔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뭘 원하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분명한 사람인데 그걸 억누르고 다른 걸 하라고 강요를 하니 몸이든 마음이든 그늘이 질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는 패션디자인과가 있는 동네 상고에 가고 싶어 했지만 그때도 엄마가 지원 마감 하루 전날에 와서 마음대로 인문계 고등학교로 원서를 바꾸고, 고등학교 때는 미술 학원에 다니고 싶어 했지만 미술 공부시켜줄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나를 회유했다. 그렇게 대학교 때까지 나는 ‘엄마가 원한다는 이유’로 나의 자아를 죽이고 결국 졸업을 했다.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잃어버린 나의 자아를 겨우 찾아낸 건 2018년 10월에 떠난 뉴욕 여행에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학과랑 관련도 없는 디자인을 배우고, 나의 그림을 꾸준히 그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누가 나의 자아를 공격하고 침범하려 들면 그걸 지켜낼 힘은 가지게 됐다.



 앞서 열거한 이야기 때문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이해시켜야 하고, 인정받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거북하고 싫다. 문제는 연애를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이 전개가 된다는 것이다. 이해는 한다. 애초에 처음부터 딱 맞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일정 부분 맞춰가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니 말이다. 하지만, 숱한 타협과 약속, 애원에도 달라지는 게 없으면 나는 뭘 더 어찌해야 하나 싶은 거다.​


영화 <Frankie And Johnny>


 어제 본 프랭키와 쟈니에선 쟈니가 프랭키에게 “어떤 남자를 원하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프랭키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날 사랑해 줄 남자요”라고 답한다. 그 대답에 쟈니는 “여기 있잖아요, 내가 그럴게요”라며 그녀의 대답에 마저 답한다. 나는 프랭키의 대답이 꽤나 이기적이고 꿈같은 대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천천히 다시 곱씹어보니 프랭키의 대답과 나의 원하는 바가 일치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남에게 특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싶지도, 납득시키고 싶지도 않다.


 ​서로를 제단 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이해시키고, 감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게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이라면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이라는 것에 자신이 없는 것 같다. 남에게 이해시키고, 인정받으려고 발버둥 치던 인생은 십 년이면 족하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내가 정당하다고 설명하고 싶지도, 증명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나고, 그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건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 단 한 명뿐일지라도 앞으로의 인생은 그에 만족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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