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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Oct 23. 2022

과거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현재 내가 쓰고 있는 폰은 아이폰 XR 모델로 64GB 저장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의 폰엔 53GB가 웃도는 기록물들이 쌓였고, 하여 지금은 10GB 정도의 여유 공간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나는 새 폰으로 폰을 바꿀 때마다 유심을 따로 바꿔 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나의 일상 속에 제일 가까이 닿아있는 물건인 만큼 새로운 폰엔 그만큼 새로운 기록물을 쌓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메모 제외) 언젠가 보려고 모아둔 캡처나 수많은 문자 메시지, 카톡 채팅방을 비롯한 그 외의 모든 부수적인 것들. 그것들은 사실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의미가 크지 않다. 그래서 막상 폰을 바꾸고 나면 그게 다 쓸데없는 소유욕에 불과하지 않았구나를 이내 깨닫기도 한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갑자기 네이버 MYBOX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빠른 시일 안에 폰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갑자기 이 조그만 기기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을 비우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2016년부터 거슬러 올라가 1시간의 시간을 들여 쓸데없는 사진들을 지워나갔다. 그러다 문득 그런 질문이 머릿속에 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대답부터 말하자면 나는 무조건 No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다 가지고 돌아간다 해도 미처 저장을 하지 못 한 게임을 다시 하는 것처럼, 난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다시 걷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소실하고 돌아간다 해도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난 내가 지금껏 고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고 깨달은 것들을 함부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물여덟의 내가 가지게 된 이 단단함을 얻기 위해 나는 그동안 얼마나 흔들리고, 무너졌으며, 주저앉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는가. 아직도 나는 이따금씩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 힘든 순간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동안의 모진 순간들이 내게 굳은살로 박혀 흔들리더라도 전보다 더 쉽고 빠르게 중심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 과거에 겪었던 경험들, 과거에 했던 사랑과 이별들, 과거에 내렸던 선택과 판단들. 그것들은 모두 다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꼭 거쳐야만 했던 튜토리얼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내가, 또 현재의 내가 만드는 미래의 내가 더욱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세상을 잘 둘러보면 온 천지가 감사할 것투성이다. 매사에 모든 것들에 감사하다 보면 금세 행복해지고 또, 그게 나에게 다 행운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나는 요즘 그런 쉬운 행복과 행운을 위해 꽤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나여서 좋은 날들. 오늘만큼은 그 누구보다 내가 나임에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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