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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Jan 16. 2023

익숙해진다는 것

 앞머리를 자를 때가 왔다. 빗으로 머리를 빗어도 튀어나오는 머리카락이 눈을 찌를 때면 앞머리를 자를 때가 왔다는 신호다. 늘 가는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보니 어느덧 이 미용실에 다닌 지도 1년도 더 됐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에 변화를 주고 싶거나 파격적인 시도를 하려 할 때면 내 담당 미용사는 나를 말리기도, 어드바이스를 따로 주기도 한다. 그는 내 얼굴, 스타일에 어울리는 머리를 잘 알고 있다. 익숙해진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느낌이 든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느낌.



 ​

 거의 매일을 가다시피 하는 카페에 간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목이 타 늘 시키던 따듯한 바닐라라떼가 아닌 아이스를 시켰다. “오늘은 따듯한 거 안 시키시네요?”라고 사장님이 물었다. “아, 오늘은 목이 좀 말라서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짧은 대화는 종료되고, 곧이어 맛있는 아이스 바닐라라떼가 나왔다.

 몇 년을 봤지만 사장님은 나에게 딱히 친한 척을 하지도, 단골손님이면 떨 수 있는 너스레도 떨지 않는다. 내가 카페에 자주 가긴 하지만,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는 걸 알고 계신 거다.




 서울에 수많은 식당과 카페를 다녀봤지만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식당과 카페는 손에 꼽는다. 살아남은 곳들은 그렇게 나만의 보물 리스트가 된다. 한 번 애정을 준 곳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게 나의 원칙이다. 그날그날 내가 느끼는 기분에 따라 정해지는 나의 장소들.


 ​익숙해지는 것만큼 애정을 쏟는 게 또 있을까. 낯선 나라에 다녀와도 숙소 근처의 길목과 전경은 가슴에 더 깊게 남는 것처럼 익숙해진다는 건 그만큼의 애정을 쏟아야지 나오는 결과다. 비단 물건이나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난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공존하는 어색함과 불안함보단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생기는 포근함과 안정감을 더 사랑하는 편이다.




 또 다른 자아를 꾸며내지 않고 나의 본래의 것을 내놓아도 함부로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믿음. 나는 그런 믿음은 쉽게 생기지 않을뿐더러, 설사 생겼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지키는 건 꽤나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런 믿음을 공유하면서 사랑이 더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익숙해지면서 생기는 권태에 집중하는 사람보단 익숙해지면서 생기는 편안함과 특별함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좋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이 말은 어쩌면 만고 진리의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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