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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Mar 26. 2023

내 손을 잡아

 롯데에서 피츠(Fitz)라는 이름의 맥주가 새로 론칭되어 막 떠오르고 있던 시기였다. 그날은 맥주 행사 알바에 나간 첫날이었다. 냉장 코너에서 냉기를 쐬며 멀거니 서있는데 근처에서 시식 행사 알바를 하던 동생이 먼저 곰 살스럽게 말을 걸며, 제법 친한 척을 하였다. 나도 그게 마냥 싫지만은 않아서 마트 운영 구조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누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인가 두 살 정도 어린 나이였고, 나는 오늘 첫날인데 그 친구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내 기억으로 그 친구는 동그랑땡 같은 음식을 파는 알바였는데 그래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요지를 행사 매대에 올려놓고 가는 모양이었다.


 ​초봄 평일의 한낮에 맥주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드물었고, 나는 맥주 매대 앞에 서서 한가로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까 봤던 동생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지 물으니 동생이 설명한 전말은 이러했다.


 ​사람들이 요지를 매대 위에 너무 많이 두고 가서 그걸 보고 근처 시식을 진행하는 다른 아주머니가 비닐이 있는 아주머니의 비닐을 하나 쓰라고 했고, 동생은 그 말을 듣고, 근처 매대의 비닐을 하나 뜯어갔다. 그런데 동생이 비닐을 뜯어간 매대의 아주머니가 자기 비닐을 왜 뜯어가냐고 동생에게 화를 내며 따졌고, 동생을 그 자리에서 졸지에 버릇없는 애 취급을 하였다는 것이다.


 ​울먹이며 상황을 전하던 동생은 이내 내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일 만큼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었으리라.​




 나이가 어릴 때엔 사회라는 정글에 그다지 익숙지 않아 마음이 그저 말랑말랑하기만 하다. 그만큼 순수하고, 연약하며, 어리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린 영혼들은 조그만 가시가 돋친 말에도 이처럼 왈칵 눈물을 쏟을 수밖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며, 크고 작은 풍파를 겪어내며 성장하는 거라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비난’과 ‘비판’은 다르며, ‘멸시’와 ‘훈계’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언제 한 번은 일본 여행에 가기 전, 조금의 여유 자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반포에서 새로 오픈한 올리브 영에서 전단지 알바를 한 적이 있다. 하필 그날은 이상 기후로 인하여 봄인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날이었다. 불행히도 스타디움 자켓 한 장만 걸친 나는 덜덜 떨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본 어떤 할머니는 “어휴, 추운데 아가씨가 고생하네”라는 말을 하시기도 하였다.


 ​문제는 다름 아닌 매장 사람들이었다. 나를 일개 하루짜리 노동자라고 생각하는지 처음 볼 때부터 쌀쌀맞게 대하더니 일을 하는 하루 종일 왠지 모르게 나를 탐탁지 않아 했다. 그쪽이 나보다 조금 위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그날 알 수 없는 업신여김을 당한 기분에 무언의 비참하고 씁쓸한 기분을 좀처럼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제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거나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 예전과 같이 금세 눈물이 차오른다거나 하루 종일 분에 차 씩씩거리진 않는다. 그동안의 고맙다고 해야 할까, 고마운 데이터 베이스 덕분에 좀 더 쉽게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라는 정글에서 겪은 경험들로 인해 베긴 마음의 굳은살이 한몫한 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 있겠냐지만. 적어도 나는 내게 먼지가 있나 안 있나 살펴보는 사람 정도는 되고 싶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살리고 죽인다. 당신이 건넨 말 한마디에 따뜻한 힘을 얻어 그에 보답하고 싶게 만드는 반면, 당신이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에 피가 차갑게 식고 무작정 엇나가고 싶게 만든다는 걸 아는지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 말 한마디의 힘을 부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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