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그때그때 코디에 맞는 신발을 사는 게 그저 좋았다. 20대 초반엔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가볍고 발도 작아 보여 컨버스나 반스 같은 스니커즈 위주의 신발을 주로 신었다. 그러다 어글리 슈즈가 유행하고 통이 넓은 팬츠를 즐겨 입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다소 무겁고 스포티한 신발을 신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세어보니 지금까지 총 스무 켤레가 조금 안 되는 신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옷 입는 걸 좋아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평균적이거나 적은 수일 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수준으로는 많은 편일 것이다.
어떤 신발이 눈에 띄면 옷보다도 더 그 신발을 사고 싶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도 내가 사고 싶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만 눈에 보인다. 두 번, 세 번 갈 것도 없다. 일단 한 번 내 눈에 들어오면 머릿속엔 온통 그 신발 생각만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값을 치러 신발을 사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 돌리던 그 신발을 내 품에 안게 되면 정말 그 순간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그토록 손에 넣고 싶었던 신발이었는데. 많이 셀 것도 없이 두세 번 정도 신고 나면 신발을 손에 넣기 전의 마음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만다. 원래 가지고 있던 신발과 같이 집에 돌아오면 신발장 아무 데나 널브려두게 된다.
우리 집은 신발장을 네 가족이 함께 쓰기 때문에 자칫 그냥 내버려 뒀다간 신발이 이리저리 치이거나 눌릴 위험이 높다. 그런 위험이 있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신발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은 그 신발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는 걸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비단 신발뿐일까.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머릿속엔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고, 관계가 진전이 되면서부터는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마음이 맞아 마침내 서로 연인이 되기로 한 날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흐르고, 당신이 내 옆에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부터는 관계의 고삐도 느슨하게 쥐게 되는데. 어째 내가 앞서 열거해 놓은 신발 프로세스와 퍽 닮아있지 않은가.
신발장에 놓여 있는 신발들을 정리하면서 떠올린 관계에 대한 고찰. 그 끝엔 결국 신발이든 누군가와의 관계든 오래 신고, 오래 함께 하고 싶다면 제일 중요한 건 함부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는 순간, 그 순간부터는 흠집이 나고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걸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또는 우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그리고 그런 사랑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