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빵집이 사라졌다. 오래전 일이다. ‘박주호 베이커리’라는 동네 빵집은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자주 들르던 곳이었다. 마요네즈를 버무린 샐러드가 끼워진 샌드위치부터 수제 쿠키, 크림빵 등. 가까운 곳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었지만 적절한 비율로 두 빵집을 번갈아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폐업 처리를 하듯 많은 빵들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단골손님 중 한 사람으로 보이는 아줌마와 나눈 대화를 엿들을 걸로는 빵집이 문을 닫고 부동산이 새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속이 상했다. 내가 가면 언제나 친절하게 맞아주던 아주머니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며칠 안 가 ‘박주호 베이커리’라고 적힌 간판은 ‘88 부동산’이라고 적힌 간판으로 바뀌었다.
집 바로 코 앞에 괜찮은 분위기의 카페가 오픈을 했다. 카페 주인은 나이 든 아주머니였다. 연령층이 높은 분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가면 대부분 커피 맛이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카페는 달랐다. 기대 이상으로 커피 맛이 괜찮았고, 무엇보다 유리컵에 음료를 가져다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카페 내부가 넓지는 않았지만 시험 당일에 시험공부를 하러 간다든가, 소중한 사람에게 줄 편지를 쓰러 간다든가, 방과 후 느긋한 여유를 즐기러 간다든가 하면서 나는 그 카페를 줄곧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한 녹색 천막 위의 간판이 다른 상호명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또 한 번 내가 즐겨 찾던 동네의 한 장소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 카페가 치킨집으로 바뀐 이후에 나는 더 이상 그곳을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그곳의 주인이 그대로인지, 바뀌었는지 하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종종 테라스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는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내가 애정 하던 그곳을 다른 이들에게 점령당한 기분. 아마 그것에 가까웠다. 몇 년 후, 치킨집이었던 그곳은 돈가스 전문점으로 새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 전, 엄마와 동생과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가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카페 중 두 곳이 후보에 올랐고, 두 후보 중 한 때 내가 줄기차게 가던 카페에 오랜만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카페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문 손잡이 위에 빼곡한 글자가 적힌 종이 하나가 붙어있었다. 그 종이엔 애석하게도 2013년부터 운영해온 카페가 결국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내게는 정말이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카페 이름은 레드 콩. 2014년부터 줄곧 즐겨 찾은 곳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 프랜차이즈 카페는 잘 가지 않기 때문에 중앙동에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는 날엔 종종 그곳으로 발길을 이끌곤 했다.
딸랑- 문 위에 달려있는 종소리가 울리면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는 언제나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네셨다. 칠판에 적힌 메뉴를 올려다보며 뭐 먹을지를 고르면 주인아저씨는 “일반 잔에 드릴까요? 테이크아웃 잔에 드릴까요?”라고 꼭 물어보셨고, 계산을 마친 후엔 “앉아 계시면 자리에 가져다 드릴게요.”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다 주시며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까지. 그것은 레드 콩의 체계화된 응용 프로그램과도 같았다.
나는 아저씨의 한결같은 친절함이 좋았다. 카페 인테리어는 우드풍으로, 조금은 올드하고 빈티지한 느낌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빈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완벽한 여름 피서지는 없다고 줄곧 생각하곤 했다. 차가운 아포가토, 느긋한 재즈음악, 열심히 읽을만한 책 한 권이면 쉽게 행복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아저씨가 아닌 처음 보는 아주머니께서 카운터에 있는 걸 보았다. 그 아주머니가 내오신 커피는 맛이 없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상냥한 인사말 따위도. 아주머니가 계실 때 레드 콩을 몇 번 간 이후로는 나는 예전처럼 그곳을 자주 찾지 않게 되었다.
지난겨울, 자투리 시간이 남아 레드 콩에 갔을 땐 주인아저씨의 익숙한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주인 바뀐 줄 알았어요.” 좀처럼 붙임성이 없는 나도 괜히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주인아저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며, 아주머니가 오후 파트타임에만 일하신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내 표정을 보신 아저씨는 “무슨 문제 있으세요?”라고 물으셨다. “아니요.” 나는 괜히 복잡한 문제에 얽히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만약 내가 그때 아주머니에 관한 얘기를 주인아저씨께 말씀드렸다면 레드 콩은 달라졌을까?
나의 시간이 녹아든 공간이 허물어진다는 건 나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이 허물어지는 느낌과도 매우 비슷하다.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며,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미소를 지으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낡은 시간 속에 바스러진다.
내가 애정 하는 공간이 사라지는 걸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잊히는 것. 그것이 몸서리치게 섭섭한 것이다. 내가 다니던 공간으로 하여금 새삼스럽게 밀려오는 지난 기억들을 다시금 곱씹고 싶은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흘러가는 시간들을 손아귀에 묶어놓고 언제든 꺼내볼 순 없는 법.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낡은 시간 속에만 존재하는 작은 집을 계속해서 지키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모든 일들도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