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다

나는 내가 좋아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까지의 과정

by 최다은

내 나이 스물 하나. 그러니까 억지로 먹은 한 살을 빼고 계산했을 때 미성년자 딱지를 갓 뗀 스무 살 즈음. 그 나이 또래가 으레 그렇듯 새해가 찾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처음으로 클럽이란 곳을 찾았다.

교통카드를 찍으면 나는 소리는 삑-이 아닌 삐빅-인데 나는 미성년자와 성인 그 어디 즈음 어중간한 나이로 1년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한창 노는 것을 좋아할 나이. 하지만 나는 미성년자 출입이 금지된 곳을 찾으면 꼴깍 마른침을 삼키기 일쑤였고, 불안한 눈동자를 감추기 위해 바닥 밑으로 얼른 눈을 내리깔곤 했었다. 드디어 내게 찾아온 진정한 성인의 나이, 스무 살. 나는 그동안 나의 법적 나이로 하지 못 했던 것들을 법의 제재 없이 할 날을 기대해왔고, 고대해왔다.

새해가 찾아온 지 세 번째 되는 날, 나의 계획은 보다 빠르게 실행으로 옮겨졌다. 무료입장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던 나이. 나는 나름의 거금으로 생각하던 2만 원을 내고, 겉옷과 가방을 맡긴 다음, 축축하고 컴컴한 지하세계에 마침내 첫 발을 디뎠다.

고막이 터질 듯한 음악 소리에 토끼 눈을 뜨던 것도 잠시. 일정 시간이 흐르자 이내 그 큰 소음도 금세 적응이 되었고, 나는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반동에 슬며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친구의 귀를 대고 가족오락관을 찍은 것도 몇 번. 짧게 깎은 머리를 모자 아래로 숨긴 군인과 친구가 짝을 이루자 나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더 이상 주저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짝을 이룬 친구를 두고, 나 혼자 무대 뒤쪽에서 중간까지 씩씩하게 헤엄쳐가기로 결심했다. 무대 중간은 뒤쪽에 비하면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드는 많은 남, 여들 사이에서 나 또한 자연스레 어우러져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교통카드를 찍으면 나는 소리는 삑-이 아닌 삐빅-인데 나는 미성년자와 성인 그 어디 즈음 어중간한 나이로 1년을 살 수밖에 없었다.



처음 클럽에 발을 들인 날이 하나의 신호탄이 되어 술과 유흥은 어느새 나의 주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추운 겨울날 다량의 알코올은 차디찬 몸을 빠른 시간 안에 데워 주었다. 까만 밤은 탐스러운 안주들과 시답잖은 농담,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지나갔다. 부옇게 바깥세상이 밝아오면 하루를 여는 출근길의 바쁜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참새의 지저귐 소리를 들으며 귀가했다. 그제야 나의 긴 하루가 마무리되곤 했다.

‘피 끓는 청춘’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그런 나날이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이랍시고 털어놓은 고민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같잖은 투정이나 어리광에 불과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고민거리는 되지 못했다. 어쭙잖게 어른 흉내를 내는 것쯤에 그쳤다.

나는 그 시기에 S라는 친구와 거의 붙어살다시피 했다. S는 초등학교 6학년, 그러니까 열세 살 때 집 앞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로 중학교는 같은 곳을 나왔지만 고등학교는 각자 인문계, 실업계로 갈라져 사이가 잠시 소원해지기도 한. 알고 지낸 역사가 긴 그런 친구였다. 어렸을 때 사귄 친구는 성인이 되고 맺은 여느 인연과는 다르게 별 다른 이유로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집안 사정까지 모조리 다 아는, 하물며 S는 우리 집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까지 나누는 그런 사이였다.


S는 나보다 이성을 사귄 횟수가 훨씬 많았으며, 그만큼 자기 스타일에 대한 확고함이 있었다. 대학을 들어가서까지 아이라인 하나 제대로 못 그리는 나와는 달리 S는 옷이며, 화장이며 나보다 항상 더 많은 걸 알고 있었고 앞서있는 친구였다.

2013년 12월, 좋아하는 선배에게 대차게 차인 후 나는 외모에 상당히 신경을 쓰게 되었다. S는 그런 나를 보고 쌍꺼풀 수술을 권하였고, 눈썹을 다듬어주고 그려주는 등 일종의 내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해주었다.

S랑 붙어있는 시기에 우리는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종종 닮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곤 했다. 서로가 닮았다는 사실이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S와 나의 생김새나 이목구비는 비슷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S와 붙어 다니며, S가 알려준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다닌 건 생각도 안 하고 말이다.

그 당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단연 성별의 비중은 남성이 월등했다. 내가 이성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S는 나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었다. 머리는 어떻게 하고, 화장은 어떻게 하며, 옷은 어떻게 입으라는지 등등. 나는 그런 S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의지 또한 많이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나는 나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따로 없었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이성에게 관심이 많은 시기였기 때문에 단연 이성에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는 S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수밖엔 없었던 것이다.


‘피 끓는 청춘’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그런 나날이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이랍시고 털어놓은 고민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같잖은 투정이나 어리광에 불과했다.


철없고 파란만장한 겨울을 보내고 봄을 알리는 개강이 찾아왔다. 더 이상 입김이 나오지 않는 온화한 봄 날씨 때문인지, 빈번한 술자리로 인해 나온 무지막지한 술값 때문인지. 우리는 뭐에 홀린 듯이 방탕한 겨울을 보내고 나서는 지난겨울에 대한 각성을 마친 사람처럼 서로의 일상에서 점점 멀어졌다. 더군다나 2014년은 각자가 간절히 열망하는 꿈을 향해 힘차게 발 구름을 하던 해라 연초에 매일이 축제 같은 날을 보낸 기억도 가물가물 해질 정도로 우리는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갔다.

그 해 여름, 모델 학원을 다닌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나의 스타일을 하나둘씩 적립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추구하는 스타일의 접점을 찾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나고, S와 만날 때면 나는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S는 내가 쓰고 있는 비니, 내가 입고 있는 와이드 팬츠, 내가 들고 있는 에코백을 웃음 속에 감춰 조롱하기 일쑤였다. 그렇다. 나는 그녀가 추구하는 ‘여성스러운’ 스타일에 벗어나 있던 것이었다. 쓴소리를 잘 못 하는 성격인 데다 친구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그때마다 웃고 넘기곤 했다. S와 자주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S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통뼈라서 다른 사람보다 근력 운동을 더 빡세게 해야겠다.’, ‘쌍수를 했는데 왜 이렇게 티가 안 나지?’, ‘키 큰 여자는 키 작은 여자보다 나이 들수록 볼품이 없는 것 같아’ 등등. 만날 때마다 나의 얼굴, 몸매에 대한 지적을 조언이랍시고 쏟아내기 일쑤였다.


나의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먹는 그녀와의 관계에 나는 휴전선을 긋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녀와 만남을 지속하는 기간 그녀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이미 한 번 쌍꺼풀 수술을 한 내 눈에 만족을 못 하고 다시 한번 더 칼을 대었다. 뿐만 아니라 180cm을 웃도는 내 키에도 심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풍요롭게 내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S와의 만남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찝찝한 뒷맛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약 2년 동안,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와 S는 2016년을 마지막으로 통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작년 5월, 오랜만에 온 S의 연락에 우리는 긴 공백기를 깨고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근 2년 만에 본 S는 영락없는 직장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변함없이 목에 헤드셋을 걸치고 지하철 출구를 나오는 나를 보자 조롱 섞인 웃음을 흘려냈다. 예전 같았으면 S의 그런 태도에 잔뜩 기가 눌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과 달리 나는 그런 S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 일뿐이고, 나는 이런 내가 좋고,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S가 흘린 기분 나쁜 웃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존감은 쉽게 흠집 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S의 그런 태도에 잔뜩 기가 눌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과 달리 나는 그런 S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 일뿐이고, 나는 이런 내가 좋고,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안다. 내 목에 걸치고 있는 이 헤드셋이 그녀의 스타일에 부합하지 않는 물건일지라도 그것은 그녀가 정의한 ‘스타일’ 일뿐. 그녀의 스타일에 벗어난다는 사실이 내 스타일이 ‘틀렸다’는 사실이 되진 않는다는걸. 내겐 내가 정의한 스타일이 정답일 뿐이다. 이것은 머리 아픈 수학 문제가 아니다. 더없이 간단하고 명쾌하다.

나는 178cm의 큰 키를 가진 내가, 층을 쳐 삐죽빼죽 뻗친 헤어스타일을 가진 내가, 튀어나온 광대를 가진 내가, 각진 턱을 가진 내가, 굵은 뼈대를 가진 내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내가 마음에 든다. 아니, 사랑스럽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내가 S를 미워하냐고? 편협한 시각을 가진 S가 측은하게 느껴지지는 않느냐고? 아니다. 나는 S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 둘은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다른 부류의 사람일 뿐. 나는 S가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마음은 위험하다. 어떤 이의 눈엔 빛나지 않는 당신도, 어떤 이의 눈엔 반짝반짝 빛날 당신이기에. 함부로 자기 자신을 재단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과거엔 나 자신을 함부로 속단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의 가치를 스스로 절하시켰지만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나를 빛나게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녀의 스타일에 벗어난다는 사실이 내 스타일이 ‘틀렸다’는 사실이 되진 않는다는걸. 내겐 내가 정의한 스타일이 정답일 뿐이다. 이것은 머리 아픈 수학 문제가 아니다. 더없이 간단하고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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