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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언제든 떠날 생각을 하면

by 최다은

언제든 떠날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가뿐해진다.


쳇바퀴 돌듯 굴러가는 일상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짜증 나는 감정과 우울함도

이제는 눈을 감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익숙한 풍경도

제 집 드나들듯 자주 가는 카페도

매일 마주하는 회사 모니터도

굉음을 내며 달리는 6호선도


그 언젠가는 작별을 고하고 떠날 생각을 하면 괜히 애틋해지고

그런 마음을 품는 순간,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내 눈길이 머문 것들, 손길이 닿은 것들에는 유독 쉽게 애정을 거두기가 힘들어서


사소한 것들에도 끙끙 앓고 슬퍼하는 사람이라서




그런데 정말이지 내가 걸어온 삶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한때는 매일을 붙어 다니며 우정을 나눴던 친구와는 지금은 잘 사는지 뭐하는지 그 흔한 안부조차 모르는 사이가 되었고


한때는 내 일상의 전부였던 모든 공간들이 이제는 시간을 들여야만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캐나다에 가있고


주 5일 출석 도장을 찍으며 드나들던 카페는 바뀌거나 없어져 굳이 가지 않게 되었다.


하물며 한때는 평생을 함께할 거라 믿었던 사람조차 이별과 동시에 철저한 타인이 되었다.




그렇게 흘러온 시간 속에서 나는 혼자서도 제법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면서도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대로

쓸쓸한 미소를 지을지언정 조금은 담담하게 보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렇기에 머무르길 애써 바라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나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일상을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려 애쓴다.




본격적으로 찾아온 여름의 무더위도

퍼런 형광등 아래 잿빛으로 가라앉은 사무실도

좋아하는 카페의 아이스커피도

해가 질 때쯤 노을이 번지는 동네 길목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시기에 나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모든 사람들도


한때의 순간이며 찰나일 거라는 걸 알면 더욱 소중해질 수밖에 없다.


언제든 떠날 거란 마음가짐


그 담대함과 용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간절히 붙들고 싶은 삶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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