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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Real

by 최다은

열 편의 단편 영화과도 같은 나날이 끝이 났다. 매 하루의 주인공이었다곤 할 수 없겠지만 어느 날은 주인공으로, 어느 날은 엑스트라로 나는 나의 몫을 충분히 해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뉴욕에 그리운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기억의 틈새엔 그들의 웃음과 체취가 선명하게 섞여 있다.


열흘 동안의 일탈을 마치고 나는 다시 뻔한 일상의 굴레에 젖어 들어갔다. 어슴푸레한 기억들을 손으로 들추다 보면, 나는 그 거대한 것들이 손톱만 한 꿈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하나. 바닥에 떨어진 빵조각들을 따라가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사진 속에 존재하는 뉴욕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일이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을 글 속에 새겨두는 일이다.



여행을 떠나 온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여행은 어떠했느냐고. 뜻대로 일이 안 풀려도, 갑작스레 비가 쏟아져도 당신의 기억에 충분히 남는 여행이었느냐고. 당신 마음속에 기꺼이 남는 여행이었느냐고.


우리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를 토대로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행에 대한 정보가 희박하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정말이지 풍요로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해야만 하는 일들, 가야만 하는 곳들, 먹어야만 하는 것들이 넘쳐난다. 그 수많은 선택지 속에 과연 우리는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걷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이, 가는 곳이, 먹는 것이 정말 온전히 ‘나’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걸까?


사실은 당신도 헐거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심칩 따윈 챙기지 않는 여행을 꿈꾸진 않았는가? 꼬질꼬질한 런닝화 그거 하나면 충분한데 말이다. 족쇄처럼 따라붙는 리스트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진짜 삶. 진짜 ‘풍요’에 가까워지는 길. 내게 놓인 선택지는 하나면 충분하다. Everything by myself. 모든 것은 내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 제일 정확하다.



자, 이제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신발 끈을 바로 묶어보자. 내가 바라볼 세상은 단 하나. 당신이 꿈꾸는 세상에 제대로 발돋움을 할 차례. 맑은 날보단 우중충한 날이 이어질지라도, 나를 무섭게 삼키는 외로움에 몸서리를 칠지라도, 애매한 행복에 닿아있을지라도. 그것이 내가 꿈꾼 ‘진짜’ 세상이라면. 우리는 언제든 기꺼이 감수할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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