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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

by 최다은

DAY 9

연어와 함께 춤을

데이빗과 그렇게 헤어진 뒤 다음날 아침, 문자가 왔다. “오늘 계획은 어떻게 돼?” 뻔뻔한 그의 태도에 나는 매우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보내기로 했다. 나의 답장에 데이빗은 출국 전 또 한 번 얼굴을 보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나 내겐 어젯밤을 끝으로 다시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86 스트리트 스테이션에 내렸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터라 배가 고팠다. 길을 걸으며 괜찮은 식당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마침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나는 그곳에서 브런치를 해결하기로 했다.


식당 안으로 안내하는 종업원에게 테라스에 앉고 싶다고 말한 나는 테라스 끝에 있는 2인석에 앉게 됐다. 자리에 앉은 나는 메뉴판을 열어젖혀 이런저런 메뉴를 살펴보았다. 여러 메뉴 중 내 눈에 띈 것은 단연 ‘Salmon’이란 글자였다. 평소에도 연어 덮밥을 즐겨 먹는 나는 간단한 연어 요리를 주문하기로 했다. “커피도 시킬 건가요?”라고 묻는 종업원의 말에 나는 선뜻 “OK.”라고 답했다. 식사에 커피를 곁들이는 것이 이제는 익숙했고, 당연해진 것이다.


몇 분 뒤 내가 시킨 요리는 생각보다 성대하게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나무판자 위에 놓인 싱싱한 빛깔의 생연어들과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 그 옆에 정갈하게 모여 있는 올리브 조각들, 여러 갈래로 잘린 통 레몬, 새하얀 샤워크림, 마요네즈에 버무려진 참치, 그리고 새까만 모닝커피까지. 눈 깜짝할 새 펼쳐진 이 요리를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우선 다른 건 다 미뤄두고, 첫 입은 그저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나는 포크로 연어 한 조각을 집어 들어 앞 접시에 놓은 다음, 먹기 편하게끔 나이프로 반을 잘랐다. 그리고선 샤워크림을 살짝 떠 연어 위에 얹었다. 그렇게 나는 샤워크림이 발린 연어를 입안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연어는 이미 짭조름하게 간이 되어 더욱 맛있었다. 커피로 입을 헹구고, 이번엔 바삭한 토스트를 집어 들어 그 위에 연어를 올렸다. 연어 위로는 적양파, 올리브, 샤워크림을 적당히 얹었다. 한입에 먹긴 힘들었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좀 더 다채로운 맛이 느껴졌다.


남은 연어가 차츰 바닥이 날 때 즈음, 나는 남은 커피로 입가심을 하며 테라스 밖 사람들을 구경했다. 배가 부르니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나의 졸음을 파고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나도 이 성대한 연어 요리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나는 조막만 한 허전함이 바다가 되어 나를 덮치기 전에 계산을 마치고, 자리를 일어서기로 했다.


메트로폴리탄에 가는 길

메트로폴리탄까지 버스를 타고 가나 걸어가나 별 차이가 없길래 나는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사진도 찍고, 뉴욕의 풍경을 눈에 더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고 나온 곳에서 오 분 즘 걸었을까.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발을 멈췄다. 그건 다름 아닌 머리가 센 노인이 낯선 이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 장면이었다. 교회나 성당 안이 아닌 야외에서 1:1로 기도를 하는 장면은 내게 무척이나 새로웠다. 테이블에 달린 현수막을 보니 5센트만 내면 교회의 목사로 보이는 인물이 기도를 해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찬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5센트의 기도를 드려볼까 망설였다. 그러나 당장의 의사소통도 버거운 지금 내게 5센트의 기도는 사치였기에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가기로 했다. 다행히 아쉬움을 달래기에 남은 거리는 아직 충분했다.



메트로폴리탄으로 가는 길 곳곳엔 무수히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바닥에 쏟아져 있는 낙엽 부스러기들을 흘겨보며 군데군데 묻어있는 가을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이윽고 메트로 폴리탄 앞에 다다른 나는 건물의 웅장함에 금세 압도되었다. 길 한가운데 건물이 ‘버티고 서있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았다. 메트로폴리탄에 들어가기 전, 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곳에선 왠지 모를 자유로움과 경쾌함이 느껴졌다. 그중 내 눈길을 이끈 건 능숙한 솜씨로 색소폰을 연주하는 남자였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연주 실력은 나마저도 덩달아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게 할 정도였다. 그때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 그건 다름 아닌 우리나라 애국가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둥근 해가 떴습니다, 올챙이 송 등등 그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동요를 차례대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나는 2달러를 그의 악기 케이스에 투척했다. “감사합니다.” 한국어로 내뱉은 그의 감사 인사에 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삶과 예술

간단한 가방 검사를 마치고, 데스크에서 표를 구매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각 나라의 언어로 되어있는 안내 책자를 보니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저절로 체감이 되었다. 메트로폴리탄은 MoMA보다 넓기 때문에 한 번 길을 잃으면 정말 끝장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대부터 천천히 스텝을 밟아나갔다. 예술 작품은 정말 신기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을 상기시킬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시대의 흔적이 드리워진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그때의 생활상을 어렴풋이 떠올려보았다. 먹고사는 것이 전부이던 그 옛날에도 예술은 살아 숨 쉬었다. 지금 보면 도대체 무슨 저의로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것들도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확실한 존재를 가지고 탄생했다. 그런 사실을 되새기다 보니 세상의 작고 하찮은 모든 것들도 참으로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밖엔 없었다. Life is ART. 누군가가 뱉은 이 말이 더욱더 절실히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이집트 미술을 넘어 유럽 조각과 장식 미술 구간에 들어온 시점, 내 앞엔 조각상 앞에 앉아 열심히 스케치를 하는 소녀가 보였다. 여러 조각상들 가운데 열심히 꿈을 태우는 그 소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별안간 ‘뉴욕에 살면 내 삶은 예술로 더욱 충만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상을 보내다 무언가의 영감을 받고 싶을 때, 누군가의 명작을 보고 싶을 때, 예술을 가까이하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MoMA나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으로 달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고흐에 대하여

2017년 <러빙 빈 센트>라는 영화를 보고 나는 한동안 고흐에 대한 관심을 보였었다. 그런 내가 처음 한 일은 그의 일생을 인터넷에 검새해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나는 고흐 관련 서가를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전보다 그의 삶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고흐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여러 모로 비운의 인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살아생전에는 아무도 나를 몰라주다가 죽은 이후로 엄청나게 유명해진다면 그게 과연 정말 기뻐할 수 있는 일인 걸까? 나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절한지 잘 알고 있기에 나는 고흐에게 나 자신을 종종 투영하곤 했었다.


MoMA에서도 단연 고흐의 인기는 남달랐다. <별이 빛나는 밤에> 주위엔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여느 작품보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 모여 있었다. 그렇게 메트로폴리탄에서 다시 마주한 고흐의 작품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은 MoMA에서 봤던 <별이 빛나는 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이 기쁨, 환희, 빛의 느낌에 가까웠다면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은 슬픔, 탄식, 어둠의 느낌을 담담히 그려낸 것 같았다.


그의 자화상 뒷면엔 <감자 껍질 벗기는 사람>이라는 또 다른 작품이 그려져 있었다. 그 이유를 찾아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고흐의 가난 때문이었다. 풍족한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캔버스 살 돈도 넉넉지 않았던 고흐는 이처럼 한 캔버스에 앞뒤로 그림을 그릴 수밖엔 없던 것이다. 그 사실을 접하고 나서 다시 그의 자화상을 바라보니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예술을 쫓을 수밖엔 없었던 그의 설움이 보다 더 생생히 전해져 왔다. 그의 두 눈에 서린 슬픔을 엿볼 수 있었던 건 무릇 그를 향한 나의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작가의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나는 새삼 예술의 위대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각 작품마다 작가가 의도한 바는 다르겠지만 모든 작품에 한 가지 공통점은 분명했다. 그건 바로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백 마디 말을 구구절절 쏟아내지 않아도 예술은 그려진 것 그대로 사람마다 느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걸 얼마나 더 강렬하게 전할 수 있게 하느냐가 예술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속의 뜨거움을 선물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솟구쳐 올랐다.


센트럴 파크

한창 예술에 대한 열정을 태우다 보니 목이 탔다. 화장실 세면대에 흐르는 수돗물을 마시고 싶을 만큼의 갈증이 들었다. 나는 이쯤 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만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허나 아쉬운 마음에 느린 걸음으로 메트로폴리탄을 빠져나왔다. 밖에 있는 노점상에선 2달러에 물을 팔고 있었다. 생수 한 통 가격으로는 결코 싼 가격이 아니어서 조금 망설여졌지만, 나는 결국 2달러 가격의 생수 한 통을 손에 쥐게 되었다. 생수를 손에 쥔 나는 즉시 뻑뻑한 뚜껑을 열어 1/3을 단숨에 비워냈다. 묵혀있던 갈증이 그제야 해소가 되는 느낌이었다. 갈증을 해소하는 데 성공한 나는 더 지체할 것도 없이 센트럴 파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오래 걸어 납작해진 스니커즈 밑으로 축축한 가을 낙엽의 촉감이 느껴졌다. 입구 길목엔 BOSE 헤드셋을 걸치고 무언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는 청년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의 스웨이드 토트백을 사이에 두고 나는 남은 생수를 들이켰다. 그러고 나선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약 2시간 여 동안 전시에 시간을 쏟았더니 오래 걷는 게 점점 힘에 부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기 전에 꼭 센트럴 파크를 걷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벤치에 앉아 조금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가을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펼쳐진 들판은 싱그러운 연둣빛이었다. 날씨가 좀만 더 좋았다면 좋았을 텐데. 혼잣말을 조용히 속으로 삼켜냈다. 말동무 없이 드넓은 센트럴 파크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조금 외로웠다. 주머니에 숨어 있던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으니 조금 나았다. 센트럴 파크를 걷는 동안엔 영화에서 본 운동복 차림 그대로 열심히 러닝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호수가 나오고, 나는 한참이나 그곳에 머물렀다. 공원 한편엔 기합에 맞춰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청년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기합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걸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나는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감상에 빠졌다. 비가 온 지 얼마 안 되어 땅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그때 산책로 입구에서 살짝 눈인사를 하였던 민소매 차림의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뉴욕에선 길거리를 걷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일이 흔한 일이라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를 지나쳐 왔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어떤 용건이 있는 듯 자연스레 내 옆으로 와서 또 한 번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나는 별 거부감 없이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우리는 호수 옆 산책로를 거닐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콜롬비안 소년, 조슈아

그의 이름은 조슈아로 콜롬비아인이었다. “뉴욕에 온 지는 얼마 안 됐어. 앞으로 한 달간 이곳에 머물면서 여행을 할 계획이야.” 그는 나와 같이 여행자라는 점에서 지금껏 내가 뉴욕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렇구나. 나는 저번 주 월요일에 와서 내일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가. 얼마 안 남았지.” 우리의 대화는 뉴욕이라는 주제 하나만으로도 술술 흘러갔다.


“뉴욕엔 어쩌다 오게 된 거야?” 나는 그의 물음에 전에 만난 사람들에게 얘기했던 것과 같이 <섹스 앤 더 시티> 얘기를 꺼내었다. 뉴욕에 오게 된 명분으로서 얘기하기도 쉽고, 제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일은 내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섹스 앤 더 시티> 얘기를 꺼내는 즉시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 드라마는 Girls(여성적인) 드라마잖아.”라고 하거나 “거기에 나온 여자들은 허영심이 심한 것 같아.”라는 말을 하며, 내게 알만하다는 눈빛을 보내기 일수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의견 또한 <섹스 앤 더 시티>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 중 하나라는 생각에 나는 그들의 의견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무언의 씁쓸함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슈아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섹스 앤 더 시티> 얘기에 흥미를 보였다. 그는 내가 <섹스 앤 더 시티> 얘기를 꺼내자마자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었다. 그런 조슈아 덕분에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섹스 앤 더 시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섹스 앤 더 시티> 얘기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나는 대화가 늘어지지 않게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어쩐지 조슈아는 <섹스 앤 더 시티>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조슈아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앤 더 시티’를 뺀 얘기를 나와 나누고 싶어 했다. “섹스 좋아해?”라는 질문에 내가 대답을 자꾸 피하자 그는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캐묻기 시작했다. 그걸 시작으로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그는 내가 묻지도 않은 성적인 얘기를 거리낌 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슈아는 본인의 잠자리 경험까지 자랑삼아 떠들어대며, 본인의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고 과시하기 바빴다. 나는 연신 “I'm not interest.”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의 섹스 사랑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섹스 얘기를 꺼낸 이후부터 내 머릿속엔 오로지 그를 빨리 떼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가 걸은 산책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그와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올랐다. 조슈아는 나와 헤어지는 마지막까지 “내 얘기에 관심 있으면 아까 알려준 번호로 언제든지 연락해.”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등 떠밀듯 그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센트럴 파크를 빠져나왔다. 해맑게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이 기어이 수풀 속으로 멀어져 갔다.


나는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센트럴 파크로 돌아간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잠자리 제안을 할까? 그가 뉴욕에 온 이유는 과연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하기 위함일까? 좀 전에 내게 일어난 일이 나는 왠지 믿기지가 않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심어놓은 능글맞은 연기자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전화부에 등록되어 있는 그의 번호를 미뤄보아 이 모든 것을 연출된 상황으로 보기에는 퍽 힘이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맥 빠진 웃음과 함께 조슈아에 대한 기억을 이내 거두기로 했다. 내가 그에게 연락할 일은 영영 없을 테니까.


잠깐의 마실을 나온 참새처럼

조슈아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뉴욕 공립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은 뉴욕의 대표 관광지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줄곧 드나들어 시끄러울법한데도 불구하고 도서관에 있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련된 대리석 건물, 고급스러운 샹그리아 조명, 따듯하고 안락한 분위기. 나는 문득 이곳에 앉아 하루 종일 드나드는 사람들 구경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은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공부를 하지 않아도 오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나는 도서관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움직임 하나도 조심스러웠다. 무례한 관광객으로 비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짧은 구경을 마치고, 조용히 계단을 내려왔다. 밖으로 나오니 저 너머 도로까지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보였다. 잠깐의 해가 비추는 듯하더니 하늘은 다시 흐리멍덩했다. 나는 첫날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은 브라이언트에 가기로 했다. 뉴욕 공립 도서관 바로 옆이라 5분이면 충분했다. 나는 잠깐의 마실을 나온 참새처럼 브라이언트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말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동적인 에너지는 내 안에 포근히 스며들었다.


회전목마

그들의 에너지를 그대로 머금고서 나는 다음 장소를 가기 위해 공원 안을 천천히 걷기로 했다. 해가 저물 때가 다가오자 사람들도 좀 전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비에 젖은 말랑한 흙을 밟으며 혼자만의 사색을 묵묵히 이어나갔다. 때마침 공원 안엔 낡은 회전목마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회전목마 안에 있는 손님은 엄마와 아기, 딱 두 명뿐이었다. 엄마 품에 안긴 곱슬머리 아기는 왼팔을 흔들며 신나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의 입꼬리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회전목마 밖에 서있는 아빠는 스마트폰을 들고 그런 모녀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찍고 있었다. 이내 회전목마가 멈추고, 흩어졌던 세 가족이 단란하게 모였다. 엄마 품에 안겼던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딸의 다정한 손길에 아빠는 더할 나위 없이 환한 웃음을 보였다. 세상 어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얼굴을 한 세 가족은 그렇게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부디 그들의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들이 비록 지금 이 시간 처음 보는 사람들일지라도 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니지만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이자 수많은 인구의 삶의 터전인 뉴욕. 뉴욕은 ‘뉴욕’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무언가가 있다. 한 해 뉴욕을 찾는 관광객만 해도 무려 6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지표는 즉 뉴욕이라는 도시가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뉴욕 공립 도서관, MoMA, 메트로폴리탄, 센트럴파크, 소호, 월스트리트, 브루클린 등등. 뉴욕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이 근사한 곳들을 매일같이 경험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불과한 그 사실이 나는 한없이 부러워졌다. 만약 나도 뉴욕에서 나고 자랐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콜필드처럼 뉴욕을 지겨워할 수도 있었을까? 그러나 해가 저물 때쯤 코발트블루로 빛나는 하늘과 길거리에 빽빽이 우거진 빌딩을 보면서 나는 ‘역시, 뉴욕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만다. 아마 내가 뉴욕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나는 분명 이 도시를 좋아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뉴욕은 내게 그런 곳이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시간은 어느덧 오후 6시를 넘어 날이 점점 저물어가는 것이 보였다. 사방을 비추던 햇빛이 시들고, 도시의 빛이 차츰차츰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브라이언트에서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터미널’이란 단어에 걸맞게 터미널 안은 사람들의 어수선한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메그놀리아 컵케잌을 먹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터미널 지하는 여느 백화점 푸드 코트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날 것 그대로 누워있는 생선들로부터 비린내가 풍겨오는 것까지. 그렇게 한참을 신선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는 도저히 매장을 찾지 못해 어느 직원에게 메그놀리아 컵케잌 매장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직원도 어깨를 으쓱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게 다였다. 그때 지나가는 또 다른 직원이 메그놀리아 컵케잌 매장은 여기에 없고 옆으로 나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메그놀리아 컵케잌은 이곳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점 말고도 뉴욕의 다른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체인점이다. 원래 인기가 많은 건지 조그만 매장 안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도 줄을 서서 미리 계산할 돈을 꺼내어두었다. 내가 고른 컵케잌은 레드벨벳 컵케잌이었다. 풍성한 생크림, 달큰한 케이크 조각, 그리고 아이스커피. 나는 잠깐 동안 나를 녹이는 달콤함에 취할 수 있었다. 여분의 컵 케이크를 포장해서 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만족하기로 했다.


제리와의 약속은 아직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나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기로 했다. 한국 시간으론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컵 케이크를 다 먹고 나서 나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 친구는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한창 바빠 보였다. “지금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인데 여기서 시간 좀 보내다 제리 만나서 저녁 먹으려고.”라는 나의 말에 그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는 내가 제리를 만난다는 사실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무슨 문제 있어?”라고 그에게 물었다. “아니, 좀 그렇잖아. 어떻게 보면 제리도 남잔데.” “그럼 만나지 마?” 대답을 바라고 던진 물음은 아니었다. “응, 나는 안 만났으면 좋겠어.” 남자 친구는 나와 제리와의 만남에 쐐기를 박았다. “여기까지 와서 제리가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만나지 말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럼 마음대로 해. 나 회의 들어가야 돼. 끊어.”



꽁꽁 얼어붙은 통화를 마치고,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서운함과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내버린 실망감이 가득 밀려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행을 간 타국에서 현지인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더욱이 내일모레면 나는 뉴욕을 떠나는 입장이었다. 그런 걸 모두 고려했을 때 ‘제리를 만나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 불쾌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나는 자꾸만 들었고, 화가 났다. 여행에 와서까지 싸움에 에너지 소비를 하게 만드는 남자 친구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동안 의자에 앉아 분을 삭여야만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씩씩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감정을 끊어내고 1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저 그런 보통의 하루들을 지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이유 없는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나를 끌어내리는 시기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부러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찾곤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무언의 힘을 얻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광화문 광장, 조용하지만 활기가 넘치는 교보문고, 커피 내음이 매력적인 대형 카페, 그 외 기타 등등. 이번에도 물론 예외는 없었다. 나는 터미널 전경을 촬영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들과 함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전체를 그대로 내려다보았다. 푹 꺼져있던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나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시작과 끝

여행의 시작과 끝의 교차점. 눈부신 황금색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발 도장을 찍을까? 50개의 별이 수놓인 성조기는 마치 많은 사람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듯하다. 수많은 회귀의 장 속에 많은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시간을 들일 것이다.


여행. 누군가에겐 그저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것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이행해야만 하는 성가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우리는 같은 목적지라 할지라도 만질만질한 종이 티켓을 손에 쥐고 슬며시 부푼 기대를 하곤 한다. 카메라, 지갑, 얇은 책 한 권, 필름, 헤드셋, 옷가지, 충전기 등등…. 여러 잡동사니로 가득한 ㅡ무겁지만 만족스러운ㅡ 백팩을 메고 다시 한번 미지의 세계로 발을 옮긴다.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여행은 여름날에 맛보는 시원한 우유처럼 새하얀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반복되는 루트를 깨고, 낯선 곳 새로운 페이지에 앉아있는 나를 마주한 순간. 오롯이 나에 대한 생각으로 겹겹이 쌓인 시간을 보내는 순간. 나는 좀 더 고요하고 깊게 ‘나’를 탐구하게 된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기억은 머릿속에서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 강렬함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지친 나를 다독여주는 힘이 되어준다. 너덜너덜해진 신발 밑창을 끌고 낯선 곳을 헤집고 다니던 나. 그게 그리워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로운 여행을 결심하는지도 모르겠다.


세렌디피티

나는 시작도 시작이거니와 항상 시작과 같이 끝맺음 또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시작이 좋았다고 할지라도 끝을 망쳐버리면 결국에는 시작마저 오염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와 제리를 만나는 것으로 한바탕 말다툼을 하고 말았지만 나는 제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금 이른 시간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나왔다. 제리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나는 남자 친구에게 일말의 죄책감이 들어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내 선택을 강행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제리와의 약속은 며칠 전부터 이미 정해놓은 약속이었을뿐더러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 호의를 베풀어진 사람과 흐지부지 작별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 속에 나는 세렌디피티 앞 벤치에 앉아 제리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까진 아직 20분이나 남아있었다. 밤이 찾아와서 그런지 밖의 공기는 한층 더 쌀쌀해졌다. 제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엔 관광객인지 모를 무리가 한 차례 카페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가족으로 보였는데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폴짝폴짝 길거리를 뛰어다녔다. 그들은 앉아서 스마트폰을 하는 내 옆에 두 아이를 앉히고, 한참 동안이나 떠들다가 자리를 떴다. 그들이 내 옆에 머무는 동안엔 떠드는 소리가 꽤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거리에 나 혼자만 남고 보니 난데없는 쓸쓸함이 불쑥 밀려왔다. 아마도 남자 친구와의 다툼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어서 빨리 제리와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 상대가 꼭 제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얘기를 하다 보면 이 찜찜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듯싶었기 때문이다.



제리가 약속 시각보다 일찍 와서 저녁때에 맞춰 카페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영화에 나온 곳이니 조금 기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순조롭게 자리를 안내받았다. 제리도 나도 딱히 배는 고프지 않아서 (존 쿠삭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시킨) 프로즌 핫 초콜릿 하나와 치킨 수프 하나를 시켰다. 대화 주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영화 <세렌디피티>로 흘러갔다. “그 영화는 너무 뻔한 로맨스 영화라 나는 별로였어.”라고 말하자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제리 또한 내 말에 공감을 해주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카페 안의 전반적인 인테리어를 살펴보았다. 카페 안에선 영화에서 나오던 로맨틱한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이지 조금 업그레이드된 키즈 카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캐주얼한 카페에 불과했다. 나는 새삼 카메라로 비춘 세상이 얼마나 미화되어 나오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세상엔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은 곳들도 많다. 오늘 내가 다녀온 곳들만 해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와 반대인 곳들도 분명 존재한다. 세렌디피티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이내 주문한 프로즌 핫 초콜릿이 나왔다. 핫 초콜릿은 테이블에 옮겨질 때까지도 쉴 새 없이 흘러넘쳤고, 핫 초콜릿을 받치고 있는 그릇엔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딱히 배가 고프지 않은 탓에 간단히 먹으려고 시킨 수프도 나왔다. 비주얼은 썩 좋지 않았지만 따듯하고 담백했다. 오늘같이 쌀쌀한 날씨에 먹기 딱 좋았다.


사랑, 우연과 필연 그 사이에서

사랑. 어렸을 적부터 나는 줄곧 ‘사랑’이라 부르는 그것을 가슴속 깊이 품곤 했다. 아낌없이 주고 싶었고, 주는 만큼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서툴렀으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 미숙했고, 사랑에 정성을 들이는 데 어설프기만 했다. 그 까닭으로 수많은 인연이 수차례 빗나갔다. 그렇게 수차례의 빗나감 끝에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잘 가늠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것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누구보다 뜨겁게 해나가고 싶으면서도 뒤돌아서면 아리송한 그런 존재.


사랑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언제나 사랑이 우연처럼 다가왔으면 했다. 따스한 바람결에 실려 오는 네 잎 클로버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비롯해서 모든 것은 내게 필연처럼 맺어졌다. 그 모든 것이 우연과 필연 그 사이에서 꽃피고,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이었다.


타임스퀘어에서 우연히 만난 그와 어깨를 맞대고 마시는 핫 초콜릿에선 ‘우연’의 오묘한 맛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연 속에 사랑이 움트는 건 영화로도 충분하다는 생각. 현실 속에 마주치는 갖가지 우연에 굳이 ‘사랑’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결국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게 인생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연이라느니 운명이라느니 떠드는 시시한 로맨스와는 작별하고만 싶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작별의 순간

열흘 남짓한 기간은 그새 쏜살같이 흘러 나에겐 이제 겨우 하루라는 시간밖엔 남지 않게 되었다. 제리는 시간이 되면 내일 또 보자는 말을 하였다. 나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일단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늘 밤을 끝으로 제리와 작별을 하고 나면 우리는 또 언제 만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리와 앞전에 가졌던 만남과는 달리 순간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나누었던 싱거운 농담들, 서로의 눈을 멀거니 들여다본 시간들, 속절없이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던 일들 등. 여행 중 보통의 순간들이라 여기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여행의 끝에 다다라서 천천히 곱씹어 보니 사실 모든 순간들이 내겐 더없이 특별했고, 의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여행의 끝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오늘따라 내가 걸어온 길을 자꾸만 뒤돌아서서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러 가기 전, 우리는 출구 밖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작별이 담긴 포옹 또한 나누었다. 뺨을 맞대고 있는 우리를 보고 어떤 할아버지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나눈 포옹은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그 여운은 상당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꺼내어 흔들어 보였다. 언제라도 다시 볼 사람처럼. 제리는 내가 출구 밑으로 모습을 감출 때까지 내내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배웅하였다. 나는 다시 혼자로 돌아왔다. 남은 하루 동안은 씩씩하게 혼자만의 여행을 잘 마무리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씩씩하게.


마지막 인사

우리가 하는 이 작별 인사가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아주 일상적이고 가볍게 서로의 등을 쓰다듬어주었으면

종종 꺼내볼 수 있는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으면


마지막이기에 애틋한 포옹이 어두운 밤거리를 밝힌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안녕, 잘 가.

오늘따라 유독 그림자가 긴 작별 인사

멀어지는 등 뒤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안녕, 잘 가.

당신의 앞길을 응원하는 작은 목소리.

언젠가 또다시 마주할 그날을 고대하며


안녕, 잘 가.

Good bye,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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