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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III. 키 큰 여자와 SIZE

by 최다은

그렇게 2020년 현재, 지금은 키 큰 여자를 위한 쇼핑몰도 많이 생겼고, SPA 브랜드도 활성화되어 과거에 비해 이런저런 대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까지도 키 큰 여자를 위한 의류와 신발 등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골반이 넓고, 엉덩이가 크며, 다리가 긴 내게 바지(하의)를 사는 것은 언제나 ‘일’이다. 다행히, 근 몇 년 동안 나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이제는 어느 브랜드가 나에게 잘 맞고, 어느 쇼핑몰이 나의 취향에 맞게 나오는지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보통 키면 굳이 겪어도 되지 않을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내게 그것은 너무나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내가 원하는 디테일을 사이즈에 맞춰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변함없는 사실로 존재하고 있고, 나는 그 사실에 조금씩 순응하는 중이다.




출처 : 핀터레스트




내가 구할 수 있는 아이템만으로 나의 스타일을 적립해야 하는 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특히, 멋 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다. 나는 내가 구할 수 있는 사이즈에 맞춰 자연스레 루즈핏 또는 미니멀 룩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하나를 사려고 해도 내 눈에 예쁘고, 내 몸에 맞는 블라우스를 찾기 힘든 것이 바로 나의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플랫슈즈, 오픈 토, 싸이 부츠 같은 신발을 오프라인에서 사는 것 또한 내겐 당연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실이다. 오프라인에서 그런 신발들을 살 수 있는 곳은 두 배의 가격을 주고 사야 하는 수제화 숍뿐. 오프라인에서 그런 신발을 사려고 할 때마다 사이즈가 맞을지, 발볼에 걸리진 않을지 고민하는 것은 쇼핑하는 데 있어 큰 방해물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내가 스니커즈 혹은 운동화를 즐겨 신는 타입의 사람이 된 건 루즈핏 또는 미니멀 룩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흐름이었다. 고급스러운 여성 브랜드에서 샌들 하나를 사려고 해도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아닌 투박한 남성용 샌들을 골라야 하는 게 바로 내 SIZE였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뉴욕에서 정말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내 사이즈에 맞는 모든 신발들을 오프라인 편집숍에서 신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나이키 러닝화든, 납작한 스니커즈든, 요란한 장식의 구두든 간에 나는 내게 맞는 사이즈의 신발이 이렇게 즐비해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리고, 그것이 한 종류(Ex. 운동화)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에 포진해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이전엔 절대 시도할 수 없었던, 여러 신발들을 꺼내보고 신어보는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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